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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꿈꾸는 '원나잇', 그 속에 담긴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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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1-18 08:56:22 수정 : 2010-11-18 08:5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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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평생을 함께 할 남자를 꿈꾸고, 남자는 하룻밤 함께 할 여자를 꿈꾼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극단 연우무대 연극 [극적인 하룻밤](작 황윤정/연출 이재준)에선 통념을 깨고 여자가 먼저 하룻밤(one night)을 제안한다. 그렇다고 그녀가 거리의 창녀? NO. 성의식이 개방적이다 못해 일명 '걸레'라고 불리우는 여자? NO.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여자이다. 도발적인 제안을 한 여주인공은 믿었던 남자친구에게 마음주고, 몸주고, 게다가 돈까지 준 후 단물 빠진 껌처럼 가차없이 버려졌다. 실연녀란 꼬리표만 붙여준채 말이다.

연극 [극적인 하룻밤]의 두 주인공인 정훈(민준호, 성두섭 분)과 시후(윤정선, 손수정분)는 각자의 애인을 빼았겼다. 즉, 정훈의 여자친구와 시후의 남자친구가 눈이 맞아 결혼에 골인하고 정훈과 시후는 패자가 되어 한 없는 배신감에 치를 떨고 있다. 두 남녀 모두 실연남, 실연녀가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정은 연극의 핵심으로 들어가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극적인 하룻밤]은 몸으로부터 시작된 사랑도 있음을 짜릿하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한다. 또한 남자들끼리는 자랑하듯 떠벌리고 여자들 앞에선 쉬쉬했던 남자들의 숨겨진 성적취향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어 연극보는 재미는 2배가 된다.

시후는 사랑을 잘 모른다. 아니 그녀는 자신의 경험담대로 섹스 후엔 사랑이 변한다고 믿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해 남자들은 섹스 전과 섹스 후에 180도 달라진다고 결론내리고 있다. 그래서 옛 남자친구의 후배인 정훈과 충동적으로 섹스를 하려고 한다. 남자들이 다 똑같은지 아닌지 확인차 하는 섹스이다. 두번째 이유는 자신의 첫 남자인 옛 애인의 흔적을 몸에서 씻어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정훈씨는 '여자가 나 잡아 잡수쇼'들이미니 처음엔 기가막히다는 반응을 보인 후 '삐쭘삐쭘'하더니 곧 수컷의 속성을 슬그머니 드러내며 자신의 자취방에서 그녀와의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물론 술기운을 빌리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연극 [극적인 하룻밤]은 남녀간에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방법은 '섹스'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정훈과 시후는 흔히 말하는 '속궁합'이 좋다. 그런데  내내 뭔가가 꺼림직하다. 육체적 사랑으로 시작된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 '원나잇 스탠드'일 뿐이라고 세상의 모든 연애교과서에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후는 예전 남자친구와의 첫 섹스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남자친구가 좋아하고 원하니 거기에 따라가준 것 뿐이다. 그런데 두번째 남자인 정훈과의 섹스는 왠지 모르게 느낌이 참 좋다. 그녀의 표정은 더 이상 실연당해 자살 하기로 마음먹은 여자의 얼굴이 아니다. 이렇게 실연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되어 가는 듯 했다.

반면 정훈은 자신의 애인지 다른 남자의 애인지 알 수 없는 '씨가 불분명한 애'를 뱃 속에 넣고 결혼을 한 옛애인에게 상처를 받아 여자를 못 믿는 병에 걸려있다. 그렇다고 정훈을 한 여자에게 목숨거는 지고지순한 남자로 보기도 힘들다. 정훈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남자들이라면 거침없이 써내려갈 수 있는 '성생활 이력서'를 지녔기 때문이다. 정훈은 시후와 하룻밤을 보내고 난 후 자신이 그녀를 만족시켰음을 은근히 뿌듯해하며, 다음 섹스에서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한 채 빨리 싸버리자 원래 자신은 그런 남자가 아님을 거듭 밝힌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형이랑 뒤로도 해봤냐?'라는 정훈의 멘트로 남자들이 흔히 저지르는 질문이자 실수 역시 꼬집어 내고 있다.

정훈은 여자가 먼저 제안한 섹스에 응하긴 했지만 마치 '강간'당한 기분이다. 여기서 섹스든 뭐든 먼저 리드해 주도권을 잡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속성 역시 드러난다. 정훈은 '처녀 먹어서 오래 살겠다'라는 남자들이 자주 쓰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남자들이 목숨보다 아끼는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 역시 연극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남자들이 여자보다 더 실연에 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다 자존심 때문에 말을 안하는 것이란다. 자존심 때문에 손해 많이 본 남자들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듯 해서 다소 뜨끔할 것이다.

 

연극 속에선 '섹스'라는 목표로 가기 위해 거치는 신음소리, 두 남녀가 포개지고 신체를 애무하는 장면을 상당히 리얼하게 연출한다. 더더욱 웃긴 건 암전을 한 채 신음소리를 들려주는 장면에서 '빵' 터진다. 어둠 속에서 관객들의 상상력은 극대화된다. 조금 뒤 희미하게 불이 들어오면 그들이 어떻게 신음소리를 들려주고 있는지가 공개된다. '연극은 이런 맛으로 보는 거다' 하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극적인 하룻밤]은 정훈의 첫사랑이자 첫섹스 상대 여자와의 에피소드를 들려주며 남자의 2중적인 섹스관을 까발린다. 정훈이 시후에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것처럼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는 식으로 장면을 연출했다. 정훈은 6년을 해바라기 한 여자와 사귀게 되고 바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그런데 이 여자의 섹스테크닉이 너무도 뛰어나자 갑자기 그 여자가 싫어진거다. 섹스 할 건 다 하고, 게다가 섹스 기술 전수까지 다 받고 난 후 여자를 헌신짝처럼 차버린다. 물론 이때 멋있는 척 '너에게 상처주기 싫어 헤어지는 거다'라는 말은 필수이다. 상대 여자는 배신감과 시련에 자살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시후처럼 말이다.

시후는 정훈의 몸이 그립고, 정훈 역시 시후의 몸이 그립지만 이게 그저 성적 유희인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서로가 그저 섹스 파트너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쿨한 섹스 파트너는 섹스가 끝나고 나면 나도 안녕. 너도 안녕이라 말하며 발걸음도 가볍게 뒤돌아서야 한다. 하지만 정훈과 시후는 그럴 수가 없다. 쿨하게 안녕하기엔 둘 사이에 몸으로 시작된 정이 남아 있어 기분 한번 야릇하다.

정훈은 시후와의 하룻밤이 우연인지 인연인지 알고 싶다. 정훈이 제시한 실험의 결과를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을 보지 않더라도 두 남녀의 사랑은 어떻게 될 건지 예감할 수 있다. 정훈과 시후가 '트위스터 게임'에서 서로 포개지고 엉키면서 목표를 향해 나아갔기 때문이다. 처음에 상대의 신체가 닿을 땐 다소 찌릿하고 어색하지만 점차 자연스럽게 게임에 몰두한다. 마치 정훈과 시후의 사랑과 같다. 사랑에 정해진 공식이 없는 것처럼 정훈과 시후의 하룻밤 역시 사랑이었다. 그것도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사랑 말이다. 실연이라는 사건이 겹쳐 마음보다 몸이 조금 더 빨리 도착한 것 뿐이다.

어느 쉬운 여자의 원나잇 제안으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끌어당긴 연극 [극적인 하룻밤]은 실연 남녀의 극복기-남자들의 2중적인 섹스관 폭로-쿨하게 몸으로 시작된 사랑이든 고결하게 마음으로 시작된 사랑이든 어느 게 사랑의 정석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음을 90분 안에 압축적으로 전달하며 유쾌한 가을밤을 선사했다. 여자가 꿈꾸는 '원나잇', 그 속에 담긴 사연이 궁금하다면 대학로 상상화이트 소극장으로 가보길.

 공연전문기자 정다훈(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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