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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의전 신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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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11-09 19:44:07 수정 : 2010-11-09 19: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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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 외교전략가 서희와 거란 적장 소손녕의 외교담판은 본회담에 앞선 상견례에서 이미 고려의 승리로 결판났다. 동아시아 최강자로 부상한 거란의 소손녕은 993년 고려를 침공했을 때 “나는 대국 귀인이니 고려 사신은 마땅히 뜰에서 절을 하라”고 요구했다. 강대국에 걸맞은 의전을 갖추라는 주문이었다. 서희는 고려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지만 “양국 대신이 서로 만나는 자리인데 어찌 그럴 수 있겠는가”라고 맞섰다고 ‘고려사’는 전한다.

소손녕은 서희의 인품이 비범해 보이는 데다 주장이 논리적이어서 결국 그의 주장에 동의하게 된다. 이후 두 사람은 서로 대등한 예를 갖춘 뒤 담판에 들어가 80만 거란군이 철수하고 고려는 압록강 유역 강동 6주를 차지하게 된다. 의전을 둘러싼 신경전에서 서희의 초반 기선 제압이 주효했던 것이다. 국제관계에서 의전이 결정적 변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17세기 유럽 강대국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교 단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스웨덴 신임대사가 영국에 부임하게 되자 각국 대사관은 관례대로 그를 영접하기 위해 런던항으로 대표를 파견했다. 환영행사 이후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 프랑스 대표가 행렬 선두에 서자 스페인의 무장 호위병들이 프랑스 마차를 행렬에서 끌어내리는 난투극이 벌어졌다. 이에 격노한 프랑스 루이 14세는 스페인과 외교관계를 단절하기에 이른다. 이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잇따르자 1961년 ‘외교관계에 관한 빈 협약’이 채택돼 오늘의 의전관행으로 자리 잡게 됐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서울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의 테이블 좌석 배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통상 의장국 정상이 정중앙에 앉고 의전 서열에 따라 테이블 좌우로 번갈아가며 한 사람씩 메우게 된다. 의장국 재량으로 일부 조정도 가능하다. 지난 6월 토론토 회의에서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옆에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앉았다. 양국의 긴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장국 캐나다의 판단에 따른 조치였다. 그러나 서울 회의에서는 오바마 대통령과 후 주석의 좌석이 상당히 떨어지게 배치됐다고 한다. 환율 문제 등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불편한 관계를 염두에 뒀다는 것이다. 혹여 의전 소홀로 이번 회의를 그르치는 일은 없는지 마지막 점검을 할 때다.

안경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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