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국가대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초연을 했던 국립발레단의 ‘왕자호동’이 2010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폐막작(10월 29일 오후 8시~30일 오후 3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으로 선정되어 수정·보완된 모습을 선보인다.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라는 우리나라 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발레 작품이라는 점에서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 참여하는 여러 국내외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전할 것이라 예상된다.
지난해의 초연 버전에서 가장 많이 변화된 점은 연출과 안무, 그리고 음악이다. 2막의 시작을 장식하며 낙랑공주와 호동왕자의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을 보여주었던 결혼식 장면이 1막의 끝으로 자리를 옮겼고, 1막의 고구려 전쟁장면과 2막에서 낙랑공주가 자명고를 찢기 전에 내면의 갈등을 겪는 장면에서는 화려한 북춤이 추가되어 그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서양에 셰익스피어가 있어 비극적인 사랑을 탁월하게 묘사했다면, 동양에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라는 설화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설화는 셰익스피어 시대보다 훨씬 오래전인 고구려 시대에 있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며, 낙랑공주라는 가장 한국적인 여인상이 등장하여 인류의 가장 보편적인 주제인 ‘사랑’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발레 ‘왕자호동’의 줄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보다도 더 비극적이고 더 오래된 러브스토리로서 남녀 사이의 사랑을 넘어서 우리 한국인 특유의 인간애를 세계에 보여줄 수 있는 탁월한 소재다.
대본 및 연출을 담당한 국수호는 “사랑 때문에 부모와 조국을 단념한 낙랑공주를 따라서 자결하는 호동왕자를 통해서 고결한 죽음에 대한 현대인들의 가치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관객들에게 주고 싶었다”고 말하며 “작품이 끝난 후에도 비극적인 여운이 길게 남아 관객들의 가슴을 울리게 하고 싶다”는 연출 의도를 밝혔다.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를 향한 발레 ‘왕자호동’
반세기 국립발레단의 역사 속에 많은 우리의 작품들이 있었다. ‘고려애가’ ‘춘향의 사랑’ ‘처용’ ‘지귀의 꿈’ ‘배비장’ 등. 하지만 서양에 비해 늦었던 발레의 도입으로 상대적으로 테크닉이 뒤쳐져 있을 당시에 우리의 이야기를 서양에 알리는 것은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이제 세계 유수의 발레 콩쿠르와 해외공연에서 당당히 그 실력을 인정 받는 국립발레단이 한국을 대표하는 우리만의 작품을 당당히 세계에 선보인다.
단순히 한국무용 춤사위를 변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세계가 잘 이해할 수 있는 클래식한 움직임에 우리 문화적 요소들을 덧입혀 우리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편하고 자연스럽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이해하게 만들어진 작품이 다름 아닌 ‘왕자호동’이다.
‘왕자호동’ 설화는 극적인 구성으로 되어 있어, 그것 자체가 훌륭한 문학작품이다. 특히 낙랑으로 대표되는 한족과 호동으로 대표되는 고구려족 간의 갈등을 신화와 전설에서 볼 수 있는 신기 쟁탈의 화소(話素)의 원형에 넣어 형상화하였다는 것은 그 자체로 하나의 작품으로서도 빈틈없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발레 ‘왕자호동’은 이런 우리만의 문학적 텍스트에 바탕을 두고 있다. 국가, 전쟁, 사랑, 배신, 죽음, 윤회, 주술을 테마로 하여 고전적 감성에 현대적인 테크닉을 세심하게 반영해 2막 12장의 화려하고 웅장한 작품으로 탄생되었다.
낙랑공주 역엔 국립무용단 주역무용수 김주원과 김지영이, 호동왕자 역엔 김현웅과 이동훈이 캐스팅됐다.
▲오직 ‘왕자호동’을 위한 드림팀
1977년 당시 국립발레단의 초대 예술감독이던 고(故) 임성남은 아리아 고로가 안무한 ‘호두까기인형’을 국내에 소개했다. 국내 최초의 외국인 안무 작품이었다. 이후 국립발레단은 줄곧 정통 클래식발레의 정수를 체득하는 데에 힘을 기울여왔으며, 따라서 주로 무대에 올려지는 작품 역시 서양의 것들이었다.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생각과 ‘발레가 서양에서 시작했지만 우리 안무가가 우리의 소재로 한국적인 발레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지는 80년대에 들어와서야 생긴 것이었다.
한국의 80년대는 문화사적으로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우리문화의 세계화와 선진공연예술에 대한 관심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였기 때문에 국립발레단도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의 대국민적 정서를 반영하여 제작된 것이 1988년 임성남이 안무한 ‘왕자호동’이다.
▲그녀가 없었다면 드림팀도 없다. 국립발레단 예술감독 최태지=1998년 겨울, 국립발레단의 세 번째 단장으로 재임한 최태지는 제91회 정기공연으로 ‘환타지발레 바리’를 안무해 무대에 올렸다. 그녀는 당시 고조선의 무속신화에서 소재를 빌렸지만 오늘을 사는 현대인의 공감을 받지 못하면 재현이 무의미하다는 이유로 한국적인 것에 비중을 두기보다 발레적인 것에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2009년, 그녀가 다시 국립발레단의 수장으로 돌아와 대한민국을 대표할 창작작품을 기획한다. 첫 번째 전막 발레를 완성한 이후 10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완성될 이번 작품은 이제 한국적인 것도 발레적인 것도 아닌 세계를 대상으로 한 세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적인 작품을 위해 최태지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대한민국 최고의 예술가들이 모였다.
▲웅장한 무대연출의 대가 국수호=하늘의 뜻을 안다는 쉰을 지나 이순을 넘긴 대한민국 무대연출의 살아있는 역사, 국수호. 1988년 서울올림픽 문화예술축전의 예술총감독을 맡아 국내는 물론 동구권 예술계에 우리문화의 우수성은 물론 그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킨 지 2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 무용계의 최고 연출가로 정평이 나있다. 무용평론가 심정림은 '우리 무용계에서 스펙터클한 연출력을 논할 때 국수호란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넘치도록 풍부한 볼거리를 내놓으면서도 그 과도함을 다룰 줄 아는 힘을 보여왔다'고 말했다.
▲뼈 속부터 길들여진 디자이너 신선희=2006년 여성 최초로 국립중앙극장 극장장으로 임용되면서 대중에게까지 알려진 신선희는 서양음악을 하는 어머니와 전통음악을 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예술을 가까이 할 수 있었다. 그녀가 문학, 미술, 음악 등 기타 모든 예술분야를 아우르는 무대미술의 일인자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집안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한국무대예술가협회 부회장, 서울예술단 이사장 겸 총감독을 역임하며 보여준 행정가적 능력에 견줄 그녀의 예술가적 진가가 ‘왕자호동’에서 다시 나타난다.
▲천재적 영감, 떠오르는 마에스트로 조석연=독일 로스토크 국립음악대학 작곡가 최고학위과정을 마치고 에스토니아 탈린 국립음악아카데미 전자음악스튜디오에서 전자음악을 연구한 조석연은 클래식과 현대음악 두 음악장르에 모두 정통하여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어떤 장르의 언저리에 가져다 놓아도 완벽하고 아름답게 들린다. 국립무용단의 ‘그 새벽의 땅’을 비롯, 서울예술단의 뮤지컬 ‘바리’ 등 수많은 작품을 통해 동양의 정적인 미와 서양의 동적인 미를 응축해내는 떠오르는 마에스트로 조석연의 새 음악은 그것만으로도 ‘왕자호동’의 이슈가 된다.
▲스승 없는 제자는 없다. 국립발레단원들의 영원한 멘토 문병남=문병남이 단원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단지 현란한 동작을 구사하기 위한 기술이 아니다. 그가 끊임없이 무용수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발레리나·발레리노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본인만의 철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발레에 대한 그의 철학은 온고지신이다. 스승 없는 제자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는 본인의 스승에게서 본인의 존재를 깨우쳤고 그 스승이 당신의 스승에게서 어떠한 가르침을 받았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한다. 그에게 있어 거슬러온 가르침은 작은 역사이고, 그 역사는 지키고픈 가치이며 끊임없이 정진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그에게 고구려의 역사를 파헤쳐 새 ‘왕자호동’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는 마치 어린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의 태생을 묻는 것처럼 당연한 의문이고 이치이다. 이같이 준비된 선생에게서 어찌 철학 없는 안무와 무용수들의 완성되지 않은 동작이 나올 수 있겠는가?
▲폭발하는 상상력, 신예 안무가 차진엽=2003년 이미 한국문화예술진흥원에서 신진 예술가로 선정된 차진엽의 이력을 보면 그야말로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발레를 전공한 사람이 현대무용을 안무하기는 해도 현대무용을 전공한 사람이 발레를 안무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비슷한 연령대의 예술가들과 함께 안무를 하는 경우는 잦아도 세대를 넘나들며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장르를 뛰어넘는 춤 동작을 만들어 내는 그녀, 세대를 아우르는 예술성, 그녀는 진정한 아웃라이어다. ▲Synopsis=‘왕자호동’의 캐릭터
호동왕자:얼굴이 잘생긴 호남으로 천성이 총명하며 문(文)과 무(武)를 겸비했다. 효성이 깊고 조국에 대한 충성심이 깊다. 하지만 사랑과 조국 사이에서 번민하는 비운의 왕자.
낙랑공주:나라를 버리고 사랑을 선택한 지고지순한 인물. 더없이 순수하고 여성스러운 낙랑국의 공주.
대무신왕:고구려의 호전적이고 비정한 왕. 호동의 아버지.
원비:대무신왕의 정비. 팔색조 같은 인물. 여성이지만 권력욕이 강하다. 친자식은 아니지만 아들인 호동에게 남성을 느껴 대무신왕과의 묘한 삼각관계를 이룬다.
최리왕:백성과 나라를 가장 중요시 하는 유약하지만 책임감 강한 낙랑국의 왕. 낙랑공주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낙랑의 왕. 자명고를 찢어 나라를 빼앗기게 한 딸을 죽여야만 하는 비운의 인물.
필대장군: 고구려에 호동이 있다면 낙랑에는 필대장군이 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문무에 뛰어나다. 하지만 권력에 대한 집착과 욕심이 많은 인물.
1막=고구려군이 수만 대군을 몰고 낙랑국에 침입하지만 전설적인 북, 자명고 덕에 낙랑은 승리하게 된다. 전투에서 패한 고구려의 왕 대무신왕은 제천의식을 행하고 하늘의 계시를 받아 호동왕자에게 낙랑국을 쳐부수라는 명을 내린다.
대무신왕의 부인 원비는 자식인 호동에게 모성애 이상의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하지만 호동은 원비의 애정을 거부하고 그의 호위무사들과 함께 옥저를 유람하기 위해 떠난다. 유람하는 도중 옥저에서 열린 사냥대회에 출전한 호동과 호위무사 일행은 길조인 흰 사슴을 잡아 최리왕의 눈에 든다. 최리왕은 이들 일행을 낙랑국으로 초대하고 여기서 호동과 낙랑공주는 처음 만나게 된다. 첫 눈에 반한 호동과 낙랑은 사랑의 서약을 맺고, 최리왕의 초대로 낙랑궁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린다
2막=호동과 낙랑은 처음이자 마지막인 것처럼 아름답고 격정적인 첫날밤을 보낸다. 이들의 결혼 소식을 전해들은 대무신왕과 원비는 크게 진노하여 호동을 고구려로 불러들인다. 곧 호동은 고구려로 떠나고, 낙랑은 그리움에 눈물을 흘린다. 낙랑의 빈자리를 노리는 필대장군의 간절한 구애 따위는 낙랑에게 들리지 않는다. 한편 호동은 낙랑국을 쳐부술 계획을 세우며, 낙랑에게 북을 찢으라는 밀지를 보낸다. 낙랑은 호동의 밀지대로 자명고를 찢는데….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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