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촌스럽고… 소박하고… ‘이발소 그림’의 추억

입력 : 2010-10-04 17:31:37 수정 : 2010-10-04 17:31:37

인쇄 메일 url 공유 - +

아련한 향수 선사하는 ‘삼각지 미술에 보내는 오마쥬’展 지난 시절 이발소에 걸려 있었던 그림들을 기억하는 세대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하지만 서울 용산의 삼각지 그림가게들에선 여전히 이런 그림들이 팔리고 있다. 이른바 ‘이발소 그림’ 또는 ‘삼각지 미술’이다. 새끼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돼지, 나무가 울창한 숲, 정자와 작은 연못이 있는 풍경, 주전자와 사과·모과가 있는 정물화, 망망대해에 떠있는 범선, 파란 보리가 익어가는 시골 풍경,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어느 동네,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있는 부부 등 소시민의 소망이 담긴 그림들이다. 그러기에 꾸준한 수요가 있다. 이 시대의 진정한 민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준복의 ‘패턴’.                                                   ◇최석운의 ‘돼지가 나를 본다’.
흔히 유치하고 촌스럽다고 생각하는 ‘이발소 그림’을 재조명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근래 들어 활발해 지고 있다. 재개발로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는 서울 성북동 ‘오래된 집’에서 21일까지 열리는 ‘삼각지 미술에 보내는 오마쥬’전도 ‘이발소 그림’의 미적 가치와 의미를 찾아보는 자리다. 기성작가들의 작품에서 키치적인 ‘이발소 그림’의 미학을 발견해 보는 것이다.

한때는 삼각지에 작업실이 있었던 민정기는 오래전부터 대중적이고 건강한 미술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작업을 해 온 작가다. 그는 주로 1980년대 초중반 서울의 도시 풍광과 도시생활의 일면을 그렸고, 실제 관광지나 산수를 실경 그대로 보여주고자 했다. 지금도 제주도의 일출봉이나 시골 마을 밭을 현실적으로 표현한다. 그는 삶에 굳건히 뿌리박은 민속예술의 전통에서 ‘이발소 그림’을 바라본다. 

◇민정기의 ‘검은 오름에서’.
이준복은 화려하고 연속적인 무늬가 가득한 아줌마들 옷의 패턴에 주목한다. 흔한 모습이지만 그동안 예술로 다뤄지지 않았던 키치적인 것을 드러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발소 그림’을 과연 누가 살까 의문을 갖게 마련이지만 정작 우리나라 미술소비시장을 이발소 그림이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촌스러운 무늬의 옷을 누가 입을까 의문을 던지겠지만 아마 의류 소비시장의 대부분을 화려하고 어떻게 보면 촌스러운 무늬의 옷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이준복의 작품 속 아줌마들을 보고 관객은 그 화려한 무늬에 거부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이내 그 속의 아줌마들을 보고는 늘 우리 주위에서 만나는 동네 아줌마, 혹은 우리 엄마를 생각하면서 어떤 그리움을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가 이발소 그림에서 느끼는 정서처럼 말이다.

류해윤은 ‘이발소 그림’의 소재를 차용하여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변형하여 그만의 개성적인 조형언어로 표현한다. 자신이 본 이미지 위에 자신의 기억과 소망을 중첩하고 있다. ‘미술’이라 통용되는 아름답고 멋있는 장면을 재구성해서 그리는 것이다. 그의 그림에서 향수와 위안의 미덕이 읽혀지는 이유다.

◇황지윤의 ‘달빛 그림자’.
최석운은 익살스러운 포즈를 잡고 곁눈질을 하는 사람이나 냉소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개, 웃고 있는 돼지, 그리고 까치를 즐겨 그린다. 사람과 동물을 통해 이 시대의 단면을 가능하면 쉽고 재미있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 ‘견월도’는 꼭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켜 실소를 자아낸다. 작품 속 인물, 동물들은 누구에게나 웃음을 살 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 있는 것들이어서 서민의 정서에 가깝다.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황지윤의 작품은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의 옛 병풍 속 그림들, 문인화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그의 그림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으면 숨은그림찾기처럼 여러 가지 또 다른 그림들을 찾을 수 있다. 흔히 이발소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젖을 물리고 있는 어미 돼지라든지 그네를 타는 사람들이라든지 쏟아지는 폭포수 등 익히 보아왔던 친숙한 그림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작가가 단순한 풍경 속에 이질적인 요소들을 하나하나 숨겨놓은 것으로 관객과 소통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그의 그림이 낯설면서도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유는 옛 민화, 산수화, 유럽의 풍경화를 차용했기 때문이다.

전시기획을 맡은 황하연씨(예술학)는 “우리는 겉으로는 이발소 그림을 멸시하고 배척하고 있으면서도 은연중 갈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며 “비록 그동안 관심권에서 벗어나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삼각지 미술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02)766-7660

편완식 기자 wansik@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유스피어 다온 '완벽한 비율'
  • 유스피어 다온 '완벽한 비율'
  • 조이현 '인형 미모 뽐내'
  • 키키 지유 '매력적인 손하트'
  • 아이브 레이 '깜찍한 볼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