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넌 우울한 시 따위를 보느라 밝은 눈을 흐리게 해선 안 돼! 어리석은 꿈에 잠겨서도 안 돼!” 가파른 파도를 타고 배가 흔들렸다. 구름이 무서운 속도로 달을 스쳐 지나갔다.
“왜 안 되지? 죽음을 맛보고도 그만두지 못하는 그 달콤한 일을 왜 하지 말라는 거지?”
“인식의 저주와 창작이 주는 고통 때문이야.”
나는 심한 구역질을 느꼈다. 바다는 두 팔을 휘둘러 미친 듯 날뛰며 물거품을 사방으로 내동댕이쳤다. 내 목소리가 물거품과 함께 부서져 차가운 대기 속으로, 포말의 혼돈 속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올바르고 즐겁고 소박하게, 규칙과 질서에 맞게, 신과 세상 사람들의 동의를 받으며 자라나 아무런 악의가 없는 사랑을 받기엔 나도 이미 늦어버렸어.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그 저주에서 벗어나 사람을 사랑하고 또다시 인생을 찬미할 수 있을까.”
“다시 시작한다고? 또다시? 그래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되고 말 것이고, 모든 것이 지금과 똑같이 되고 말 테니까.”
《어떤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잘못된 길을 걷는 까닭은 이들에겐 올바른 길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야.》
가장 많이 사랑하는 자는 패배자이다
그는 외로웠고, 정상적이고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따돌림을 받고 있었다. 열네 살, 토니어 크뢰거는 겨울 해가 애처로운 빛으로 떨어지지는 오후, 싸라기눈이 내리는 교정을 지나가고 있었다. 교문을 나와 차도에 한참 서 있던 토니어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건너편에 강철빛 푸른 눈동자를 지닌 헌헌장부(軒軒丈夫), 한스 한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한스는 리본이 달린 덴마크식 선원모자를 쓰고, 넓고 푸른 칼라가 양 어깨와 등 뒤에 펼쳐져 있는 고급스런 해군복 상의를 입고 있었다.
한스와 토니오의 아버지는 각기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큰 사업을 하는 도시의 유력 인사들이었다. 한젠 집안은 이미 여러 세대 전부터 강변에 매우 널찍한 목재 적재장을 소유하고 있었다. 토니오의 아버지는 영사였다. 매일같이 크뢰거 영사가 경영하는 상회에서는 곡물자루를 실은 마차가 빠져나와 거리로 흘러갔다.
토니오는 약속을 지키지 않은 한스로 인해 마음의 고통을 느꼈다. 그러나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말에 그 고통은 거품처럼 사라졌다. 토니오는 알고 있었다. 그 정도의 고통은 혼자 사랑하는 자가 마땅히 감수해야 할 운명이라는 것을. 토니오는 예민했다. 자신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 이를테면 집의 정원에 있는 분수와 오래된 호두나무, 자신의 손때 묻은 바이올린과 멀리 있는 발트해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것들을 다시 정교한 활자로 조각해 공책에 옮겨 놓았다. 그러다 어느 날, 실수로 시를 적어 놓은 공책을 들키는 바람에 친구들과 선생님으로부터 눈총을 받게 되었다. 아무도 토니오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은 토니오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그는 누구와도 어울리지 못하고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날이 많아졌다. 크뢰거 영사는 아들의 한심한 성적표를 받아들고 불같이 화를 냈다. 반면 이국적인 외모의 어머니 콘수엘로는 크게 염려하지 않았다. 토니오는 그런 어머니가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랜드 피아노와 만돌린을 기막히게 연주하는 어머니 콘수엘로를 깊이 사랑했으나 한편으론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무책임함이 있음을 알고 서운해했다.
그런 토니오와 달리 한스 한젠은 완벽한 사랑을 받았다. 한스는 승마와 체조, 수영 등 못하는 운동이 없었고 학업성적까지 뛰어나 뭇사람들의 관심 속에 성장했다. 토니오는 한스에게 질투심 섞인 동경을 느꼈다. 한스의 사랑을 얻기 위해 토니오는 더 많이 노력해야 했다.
잉에보르크 홀름! 금발의 푸른 눈, 잉에는 토니오의 첫사랑이었다. 잉에 홀름은 의사 홀름의 딸로 토니오와 한스가 속해 있는 최상류층 그룹의 일원이기도 했다. 열여섯 살 때 잉에가 한스의 눈 앞에 나타났다. 춤과 예절을 배우는 교습시간이었다. 따스한 여운이 울리는 목소리와 웃고 있는 두 눈, 주근깨가 있는 부드러운 윤곽의 콧마루를 지닌 잉에의 얼굴은 그날 영원히 토니오의 가슴에 새겨졌다. 그는 잉에, 금발의 잉에, 오직 사랑스러운 잉에만을 응시했다.
그러나 토니오는 그녀에게 너무 열중한 나머지 여학생들만 추는 ‘숙녀들의 풍차’에 나서서 망신을 당하고 만다. 다시 음악이 흐르고 춤이 시작되자 토니오는 홀로 블라인드가 내려져 있는 창가로 갔다. 무엇 때문에 자신이 오래된 호두나무가 보이는 창가를 떠나 이곳에 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너, 잉에 홀름은 춤추는 것을 멈추고 나, 토니오 크뢰거를 향해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다가 토니오의 심장은 다시 고동쳤다. ‘변치 않는 마음! 내가 살아 있는 한 변치 않고 너, 잉에보르크를 사랑할 거야!’ 그는 속으로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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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화=장길재 |
그러나 얼마 안 가 토니오는 사랑의 불꽃이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어떻게든 사그라드는 불씨를 살려보려고 가슴속의 불탄 자리를 휘저었지만 불씨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생은 토니오가 열정을 바쳐 사랑한 것을 선물로 주었다. 그로부터 앗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앗아가 버린 후였다. 그는 여러 대도시에서 살았다. 그리고 태양이 자신의 예술을 좀 더 풍요롭게 성숙시켜 줄 것이라 기대하며 남쪽나라에 정착했다. 토니오를 그쪽으로 끌어당긴 것은 어쩌면 어머니의 피였는지도 모른다. 콘수엘로는 크뢰거 영사가 죽고 난 후 남쪽나라 출신의 예술가와 함께 하늘이 푸른 먼 남쪽나라로 떠나버렸다. 토니오는 양극단 사이, 얼음장 같은 정신성과 관능의 화염 사이를 불안하게 오가며 피로한 삶을 이어갔다. 지성은 자신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토니오를 남쪽으로, 크뢰거를 북쪽을 향하게 했다. 몸이 쇠약해짐에 따라 예술적 재능은 더 날카로워지고 더욱 섬세하며 극도로 예민해졌다. 남쪽에 대한 질투심과 북쪽에 대한 환멸, 양 극단을 향한 동경과 회한을 동시에 느낄 때마다 그의 심장은 다시 격렬하게 고동쳤다. 특유의 근면함으로 그는 온전히 열정을 쏟아부어 완성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리하여 토니오 크뢰거, 그 아이러니한 이름은 당당히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어느 날 토니오는 격의 없이 지내는 또래의 친구,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를 방문했다. 천창(天窓)으로 금빛 햇살이 쏟아지는 그곳은 정착액이며 물감 냄새가 진동하는 화가의 아틀리에였다. “리자베타, 우리 예술가들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되거나 비인간적으로 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되어 느끼기 시작하자마자 그것으로 끝장입니다.”
《인간적인 것에 동참하지 않으면서 인간적인 것을 서술하느라 나는 가끔 죽도록 피곤합니다.》
토니오는 자의식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다. 소심함과 불안감 속에서 그는 비탄에 잠겨 있었다. “햄릿은 알도록 태어나지 않았으면서 알도록 소명을 받는다는 것이 무언지 알고 있었습니다. 눈물에 젖은 감정의 베일을 뚫고 통찰해야 하고, 인식하고 주의 깊게 살피며 관찰해야 합니다. 감정에 눈이 멀어 인간의 시선이 흐려지는 순간에도 관찰을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울화가 치미는 일입니다.” 토니오는 격렬한 감정에 사로잡혀 저주하고 분노하며 고백했다. “문학을 통해 구원을 받았지만 삶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계속 죄를 저지릅니다. 정신의 눈으로 볼 때는 모든 행동이 죄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리자베타,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리자베타는 차분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토니오, 나도 해답을 알려드리지요. 당신은 누가 뭐래도 한 사람의 시민이라는 사실입니다. 당신은 ‘길을 잘못 든 시민’입니다.”
창 너머 호두나무는
가을 무렵, 토니오 크뢰거는 13년 만에 북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비웃음을 품고 떠나왔던 도시, 뾰족한 첨탑들이 회색 하늘을 향해 우뚝 솟아 있는 중세풍의 그림 같은 도시였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난 뒤 그는 거리로 나섰다. 정답고도 쓰라린 향내를 실은 세찬 바람이 얼굴에 부딪쳐 왔다. 그는 회한에 찬 시선으로 슬픈 꿈길 같은 거리를 걸었다. 어느덧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 고향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가슴이 불안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공공도서관’이라고 쓰여진 문 앞에 멈춰 섰다. 천장에 닿을 듯한 높이로 어두컴컴한 서가에 책이 줄지어 꽂혀 있었다. 각 방마다 행색이 초라한 사람이 한 명씩 앉아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토니오는 책을 한 권 뽑아 보는 시늉을 하며 창가에 가서 섰다. ‘여기는 아침 식사를 하는 방이었다.’ 속으로 생각하며 그 방에서 함께 식사를 했던 가족들을 한 사람씩 떠올렸다. 자기 방이었던 공간 역시 어떤 사람이 앉아 지키고 있었다. 그가 최초로 쓴 시를 보관해 두었던 책상, 창 너머 호두나무. 찡한 애수가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정원의 호두나무는 바람에 힘겹게 우두둑거리고 솨솨 소리를 내며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발소리가 굉굉 울리는 마루를 지나 자신이 살던 집을 떠났다.
덴마크의 한적한 해변, 바다가 보이는 호텔에 머물며 토니오는 깊디깊은 망각의 상태에 빠져들었다. 가끔씩 어떤 유래를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오곤 했으나 그는 여러 날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 사건은 태양이 중천에 떠 있던 날, 느닷없이 일어났다.
난 자고 싶은데, 넌 춤을 추겠다는구나
한스 한젠과 잉에보르크 홀름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가 식당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있을 때였다. 화사한 옷차림을 한 금발의 잉에와 금단추가 달린 반코트를 걸친 한스가 토니오의 시야 안으로 들어왔다. 오전 열한시 반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토니오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호텔에 무도회가 열리던 날, 토니오는 다시 두 사람을 만났다. 강철빛 푸른 눈과 금발의 머리칼을 한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있었다. 토니오는 고통 속에서 얼굴이 비틀리는 것을 느끼며 어둠 속으로 숨었다. ‘내가 너희들을 잊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 한 번도 없었어! 한스, 너도, 금발의 잉에, 너도 결코 잊은 적이 없었어!’
토니오는 자신이 간절히 짝사랑했던 두 사람을 바라보며 심장이 찢기는 고통을 느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속삭였다. “그들 앞에 나가서 당당하게 인사를 하는 거야.”
토니오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홀을 바라보며 말했다.
“용기가 나지 않아. 저들은 내게 대답하지 않을 거야. 미소로나마 대답을 해준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네가 글을 쓰게 된 건 바로 저들 때문이잖아.”
“그래, 그랬지. 잉에를 아내로 삼고 한스 같은 아들을 두고 싶었어. 하지만 이제 그 모두가 불가능한 일이란 걸 알지.”
새로 춤이 시작될 모양이었다. 토니오는 끔찍했던 옛 기억을 떠올리고 얼굴을 붉혔다. 그 옛날처럼 카드리유가 시작될 것이다. 토니오의 몸은 더 작게 움츠러들었다.
“금발의 잉에, 넌 나를 비웃었지. 넌 나를 보고 마구 비웃었어. 지금도 그렇겠지. 너희들은 너희들의 생각이 영원히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기억에 떠올린 적 없었던 시구를 읊조렸다.
“난 자고 싶은데, 넌 춤을 추겠다는구나.”
한 차례 춤이 끝나자 토니오는 눈물 젖은 눈으로 그들을 응시했다. 기쁨에 들떠 만발한 꽃처럼 타오르고 있는 그들의 생기 넘치는 모습을. 토니오 크뢰거는 어둠 속에서 말했다.
“아, 옛날과 똑같구나. 난 너희들 행복한 생활인들의 환심을 사려고 괴로워하다가 결국 그 자리를 떠났지. 금발의 잉에, 너는 내가 가버린 것을 알아채고 뒤쫓아 나와, 내 어깨를 붙잡고 ‘이리 들어와, 힘내. 너를 사랑해’라고 말해야 했다. 그러나 너는 결코 오지 않았다. 그런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지.”
실내에는 삶의 달콤하고 통속적인 4분의 3박자가 물결치듯 흐르고 있었다. 나는 토니오 크뢰거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괜찮아. 너는 충분히 사랑했어. 삶 전체를 사랑했지.”
《내가 남모르게 깊이 사랑하는 사람들은 금발에 푸른 눈을 지닌 사람들, 밝고 생기에 넘치며 행복한 사람들, 사랑스럽고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소설가·blog.naver.com/sgmoonhack
■ 작가와 작품 소개
토마스 만은 1875년 북독일 뤼베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은 곡물상이자 시의회 의원이고, 어머니 율리아는 반은 포르투갈계이고 반은 크레올계인 남부 출신으로, 그는 아버지로부터 북독일적인 이성과 엄격한 도덕관을,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남국인의 정열과 예술적인 재능을 물려받았다. 유년 시절은 부유하고 행복했으나 아버지가 죽고 회사가 정리되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1983년 자신이 발간한 ‘봄의 폭풍우’지에 처음으로 글을 실었으며 뮌헨 공과대학에서 미학, 예술 문학, 경제 및 역사 강의를 들었다. 1901년 첫 장편소설 ‘부르덴브르크 가의 사람들’을 발표하면서 국내외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단편집 ‘토니오 크뢰거’(1903)를 출간하였다. 1905년 뮌헨대 교수의 딸과 결혼하여 3남3녀를 낳았으나 행복한 삶을 누리지 못했다. 두 여동생이 자살하고, 아들 클라우스 만이 자살했으며 막내 미하엘 만도 신경안정제 과용으로 의문사했다. 1912년 폐병 증세가 있었던 부인이 다보스 요양원에 입원했는데 이후 그곳의 체험을 바탕으로 12년 만에 ‘마(魔)의 산’을 완성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창작을 중단하고 정치 평론을 발표했다. 전쟁 초기 사상적인 이유로 형 하인리히 만과 불화를 겪다가 평론 ‘독일 공화국’(1922)을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계급에 대한 옹호 입장을 표명했다. 1929년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나치 정권의 박해,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쓰고 미국과 스위스로 이주지를 옮겨가며 지내다 1955년 취리히에서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1910년부터 쓰기 시작한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은 1954년 ‘회상록 제1부’라는 제목이 덧붙여져 출간되었으나 결국 미완성으로 남았다.
옮긴이 홍성광은 1959년 삼척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논문으로는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 ‘하이네 시의 이로니 연구’, ‘토마스 만과 하이네 비교 연구’, ‘토마스 만의 괴테 수용’, ‘토마스 만과 김승옥 비교 연구’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토마스 만의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미카엘 엔데의 ‘마법의 술’, 하이네의 ‘독일. 겨울 동화’, 프리더 라욱스만의 ‘철학의 정원’, 에리히 레마르크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등이 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토니오 크뢰거’는 평생 작품 활동에 전념하면서 인류에 대한 사랑과 인간적 삶을 추구해 온 작가, 토마스 만의 간절한 열망이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평범하고 행복한 생활들에 대한 동경과 사랑, 환멸의 아이러니가 에로틱하게 그려진 이 작품은 예술과 시민이라고 하는 양 극단의 사이에서 방황하며 존재하는 인간, 토니오 크뢰거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실존에 대한 통찰을 가능케 한다. 또한 그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가와 시민 사이의 갈등을 정신과 삶의 갈등으로 한 단계 승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작품의 주인공 토니오처럼 작가 토마스 만은 양극적인 정체성을 띤 작가였다. 시민적 윤리의 표본인 아버지와 예술적 소양을 갖고 있었던 이국 혈통의 어머니에게 영향을 받았던 그는 정신과 관능의 대립 양상을 통해 극단성이 지닌 위험요소와 예술가로서의 불안 심리를 ‘토니오 크뢰거’를 통해 탁월하게 펼쳐 보인다. 또한 예술성이 시민적 사랑에 의해 보다 성숙해지는 결말을 암시함으로써 인간은 예술을 통해 결속할 수 있다는 괴테의 세계관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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