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난 성인 남자의 몸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물론 컴퓨터 상에서 갑자기 뜨는 팝업 창에서 외국 남자의 알몸을 잠깐 본 적이 있긴 하다. 그런데 그 사진은 성기부분만 발기되어 너무도 괴상한 남자의 몸만 강렬하게 각인시켰다. 그 결과 남자와의 스킨쉽은 두려움이 배가 되어 거부감을 남겼다.
내 나이도 꽉 찬 30세, 제대로 연예다운 연예도 못 해보고 청춘은 지나가고 있다. 주위에선 어서 빨리 결혼하라고 재촉을 하지만 난 '결혼'이라는 말에 두려움만 앞선다. '결혼'이라는 말에서 야릇한 신혼 이미지보단 무서운 남자와의 신체적 접촉이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남자와 손도 못 잡아 보거나 키스도 한번 못 해본 쑥맥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나 역시 몇 번의 연예를 하면서 키스와 가벼운 신체적 접촉은 해 본 적이 있다. 그런데 더 이상의 진도는 나가지 못했다. 좀 더 깊은 접촉을 요구해오면 괜찮아 보이던 남자친구가 갑자기 성기만 커다랗게 발기된 괴물로 연상이 되어 진도도 나가지 못했을 뿐 아니라 흐지부지 연예도 끝나고 말았다.

이런 관계를 몇 번 반복하다보니, 연예를 하면 으레 거치게 되는 단계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로만 여겨졌다. 연예가 뭐고 그냥 이대로 혼자 살고 싶어질 정도이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남자의 나신을 당당히 바라보았으니 말이다. 무대에서 실제로 옷을 하나도 입지 않고 등장할까? 하고 우려감을 가졌던 것도 사실. 연극<논쟁>에선 남녀 배우 2쌍이 모두 알몸으로 나와 연기를 펼쳤다. 다른 여성의 알몸은 목욕탕에서도 본 적이 있으니 별로 신기할 건 없었다. 이름도 모르는 발기된 외국인 남자가 아닌 평범한 성인 남자의 알몸을 직접 눈 앞에서 만나게 된 건 분명 대단한 일이다.
2명의 남자 배우가 알몸으로 무대에 나타났다. 시선이 위에서 아래로 쑤욱 내려가는 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속성이었을까? 한 명은 꽃미남 스타일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남성미가 흐르는 스타일이었다. 남자의 알몸을 바로 눈 앞에서 보았지만 '괴물같다거나''무섭다'거나 하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들도 여자와 똑같은 아름다운 신체를 가진 사람이었다. 봉긋한 젖가슴은 없지만 탄탄한 배 근육과 종아리 근육을 가진 그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무대를 누빈다. 의상을 걸치지 않은 그들의 모습은 너무도 자유롭게 보인다. 상대를 바라보고, 냄새를 맡고, 상대의 손을 빨기도 한다. 그 순간 연극이 주는 줄거리에 집중하기 보단 배우들의 몸과 움직임에 관심을 쏟게 되었다. 상상하기 좋아하는 난, 연극 속의 여자 '나' 혹은 '너'가 되어 남자 배우들과 접촉을 시도했다. 남자와의 접촉에 그토록 거부감을 보이던 내가 자발적으로 남자의 몸을 당당히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가장 큰 괴물로 다가왔던 남자의 성기는 팝업창에서 보던 성기의 모습과는 확연히 달랐다. 거대하게 발기된 모습으로만 남자의 성기를 인식한 탓에 그렇게 거부감이 생겼었던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본 성인 남자의 성기는 하등 이상할 게 없었다. 나만의 머릿 속에서 별 이상한 상상을 하며 남자의 이미지를 이상하게 그린 채 제대로 연예를 하지 못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동안의 내 모습이 조금씩 우스워지기 시작했다.

연극이 끝 난 후 극장을 나오면서 자꾸 피식거리며 웃자, 같이 간 언니가 "그렇게 재미있었느냐?"면서 물어본다. 물론, 연극은 상당히 재미있었다. 연극을 통해 남녀배우들이 극중 보여주는 누가 더 먼저 변심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옷 뒤에 감추어진 진짜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나 역시 옷 뒤에 감추어진 남자의 신체에 가식의 화면을 덧씌어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지 못했다. 막연한 불안감, 거부감이 날 이성과의 연예에 있어 발목을 잡고 있었는데, 내 문제를 확실히 알게 되어 너무도 속 시원하다. 내 마음을 가리고 있던 옷을 벗어던지고 순수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사랑에 빠지고 싶은 날이었다.
정다훈 (otrcoolpe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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