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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60돌] ④ 남겨진 가족의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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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북자 대부분 ‘월북’ 낙인… 가족들은 연좌제로 고통
#1. 제2대 국회의원 박성우씨는 6·25전쟁 당시 인천에 있었다. 전쟁 소식을 듣자마자 곧장 서울로 달려왔지만 국회는 열리지 않았다. 한강 다리가 무너져 서울에 남아있던 박씨는 7월쯤 집으로 찾아 온 3명의 북한 조직원들의 “잠깐 물어볼 말이 있으니 동행합시다”라는 말을 듣고 따라나선 뒤 연락이 두절됐다. 55년 뒤인 2005년 7월27일 언론을 통해 평양에 있는 62기 묘지에 ‘1954년 2월4일자 서거’라고 쓰인 박씨의 묘비가 발견됐다.

#2. 1950년 경기도 평택에서 의원을 운영하던 최용준씨는 전쟁이 발발하자 인근 산 속으로 가족과 함께 피신했다. 7월말쯤 평소 안면이 있던 지방 좌익들이 찾아와 협조를 요청했고, 의사로서 환자 치료를 위해 따라나선 후 연락이 끊겼다. 전쟁이 끝난 뒤 납북이 아닌 월북으로 오해받아 최씨의 가족들은 중앙정보부의 관리를 받아야 했다. 특히 납북자 자녀는 유학이나 해외출장 등에 불이익을 받는 연좌제를 겪었다.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끌려간 남한 인사는 무려 9만여명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 이들에 대한 생사확인이나 송환을 위한 추진 방안을 갖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게다가 많은 납북자가 ‘월북’이라는 오해를 받아 남은 가족들이 연좌제를 겪는 등 또 다른 상처를 받아야 했다.

◆납북 대상은 20·30대 전문직 종사자=6·25전쟁 당시 납북자 관련 정보는 50년이 넘도록 구체적인 증거자료가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남한에 남은 가족들은 정부에 납북자 송환 요청은커녕 생사확인을 요구할 기초적인 자료가 없는 상황이었다.

납북자 실태가 구체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민간의 연구였다. 2006년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와 김명호 강릉대 교수는 3년간 공동연구한 끝에 ‘6.25전쟁 납북자 실태의 실증적 분석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6·25전쟁 납북자는 9만6013명. 이중 88.2%인 8만4659명이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부터 3개월 동안 납치됐다. 특히 서울 등 수도권에서 20·30대 전문직 종사자와 기술자가 주 납치대상이었다. 이 기간 전국에서 공무원 2919명과 기술자 2836명, 교수와 교사 863명, 의료인 572명, 판검사 등 법조인 190명, 국회의원 등 정치인 169명이 납치됐다. 납북 인사 가운데 80% 이상이 자신의 집이나 집 근처에서 납치됐는데, 이는 북한이 납치할 사람의 명단을 미리 선정하고 집 주소를 확보했음을 의미한다.

김 교수는 “북한이 부족한 지식인을 보충하기 위해 남한의 ‘인텔리(지식층)’를 계획적으로 납치했다”며 “전체 납북 인사 가운데 20·30대가 70%에 이른다는 점도 북한이 사회 재건에 남한 지식인을 활용하려 했다는 점을 뒷받침해준다”고 말했다.

◇납북자가족모임 회원들이 2009년 8월 서울 종로구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납북자 송환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진실 규명을 위한 한걸음, 특별법=
납북자 가족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 연좌제로 커다란 고통을 겪었다. 그러나 정부는 최근까지도 이들에 대한 어떠한 보상은 물론이고 납북자에 대한 명예회복을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납북자 진실규명을 위한 첫발은 정부가 아닌 국회에서 이뤄졌다. 지난 3월 ‘6·25전쟁 납북피해 진상규명 및 납북피해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은 2003년부터 제정이 추진됐지만 17대 국회까지 2번이나 회기를 넘겨 자동 폐기됐다. 이후 국회의원 89명이 2008년 새롭게 발의했고, 미디어법 공방과 세종시 등에 밀려 1년여 동안 상임위조차 통과하지 못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열매를 맺었다.

법안은 납북 피해자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에 따라 국무총리실 소속으로 ‘6·25전쟁 납북피해자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위원회’를 두고 희생자 추모 등 기념사업이 추진된다.

또 납북자 가족으로 구성된 단체에 대한 예산도 지원하지만 납북피해자와 가족에 대한 개별 보상은 제외됐다.

가족협의회 한 관계자는 “명예회복과 보상은 진상규명이 먼저 이뤄져야 가능한데 그동안 정부는 ‘법이 없어서 실태조사도 못한다’는 입장이었다”며 “이번에 전시납북자법이 통과됐기 때문에 앞으로 시행령 제정 등에 힘을 쏟으면 잊혀진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6·25전쟁 60주년 기획팀=신진호·안용성·조민중·조현일·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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