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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발발 60돌] "北에 남은 전우들 생각하면 가슴 먹먹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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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0-06-15 17:47:50 수정 : 2010-06-15 17:4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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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복 국군포로가족회 명예회장 “국군포로들은 60년째 북한에 억류된 채 평생을 비참하게 살고 있는데, 그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너무도 부족한 실정입니다. 그들은 하루도 조국을 잊은 적이 없는데, 조국은 국군포로들을 점점 잊어가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국군포로로 50년을 북한에 억류돼 있다 2000년 중국을 거쳐 입국한 유영복 6·25국군포로가족회 명예회장(81·사진)은 “남한에 온 지 1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북한에 남아 있는 전우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말했다.

유 회장은 국민들이 국군포로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50년 약속 지키고 돌아온 용사’(가제)를 6월 말 출간할 예정이다. 이 책에는 6·25전쟁에서부터 국군포로로서 살아온 50년, 탈북 과정, 남한에서의 생활 등이 생생하게 담긴다.

“1994년 조창호 소위가 탈북하면서 국군포로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돼 16년이 흘렀지만 뭐 하나 달라진 게 없어요. 북한은 여전히 국군포로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우리 정부는 소극적이죠. 솔직히 이젠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지도 않게 됐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국군포로를 잊어서는 안 되겠기에 뭐라도 남겨야겠다 싶어서 이 책을 쓰게 됐어요. 이 책은 북한에 남아 있는 전우에 대한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억류 내내 아오지 탄광에서 보낸 유 회장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후 탈북했다. 그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젠 돌아갈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상회담 후 며칠이 지나도 국군포로 송환은 얘기조차 나오지 않았다. ‘이러다가 고향 땅도 못 밟아보고 죽겠구나’ 하는 생각에 유 회장은 무작정 중국 보따리상을 따라나섰다.

“남북정상회담 후 남한에 있던 미전향장기수들을 북한으로 보냈잖아요. 그때 국군포로를 한 명이라도 데려왔어야 했어요.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다 포로로 잡혀 있는 사람들을 국가가 이렇게 방치하면서 어떻게 애국심, 나라사랑을 말할 수 있겠어요.” 유 회장은 국가에 서운한 감정을 격정적으로 토로했다.

우여곡절 끝에 2000년 7월 남한에 온 유 회장은 50년간 헤어졌던 아버지와 여동생을 만났다. 당시 93세이던 유 회장의 아버지는 백발이 성성한 아들을 만난 후 6개월 뒤에 눈을 감았다.

현재 고향인 경기도 이천에 정착해 북한에 남아 있는 국군포로의 생사 확인과 귀환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유 회장은 “북한에 있는 국군포로들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라며 “얼마나 고향이 그리우면 ‘유골이라도 남한 땅에 묻어 달라’고 말하겠느냐”며 눈시울을 붉혔다.

6·25전쟁 60주년 기획팀= 신진호·안용성·조민중·조현일·장원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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