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트로이를 지원하는 외국군대에게 여러 번 치명상을 입었다. 그 바람에 트로이와 전면전을 치루지 못한 채 많은 시간들을 흘려보냈다. 트로이와 전쟁을 벌인지 벌써 10년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리스군도 점차 지쳐가고 있었다. 트로이군은 성 밖에 진을 치고 있다가 불리해지면 재빨리 성안으로 후퇴하는 식으로 그리스군을 괴롭히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견고한 트로이 성을 함락할 수가 없었다. 헥토르를 잃은 이후 트로이의 선봉은 그의 동생 파리스가 맡고 있었다. 이 전쟁을 일으키게 한 장본인이기도 한 그는 헥토르에 비하면 용기도 부족하고 전쟁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활을 쏘는 것이 거의 전부였다.
트로이의 약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군은 두려울 것 없이 내처 트로이 진을 뚫고 들어오곤 했다.
헥토르가 죽자, 아킬레우스는 트로이와의 전쟁에서 승승장구했다. 가끔 트로이를 돕는 주변 국가들의 기습에 피해를 입기도 했지만 이제는 트로이 성을 넘어 트로이를 멸망시킬 일만 남아있었다. 그러면서 그는 어머니가 그에게 이야기했던 대로 자기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고 있었다.
이미 그리스군은 곤궁에 빠졌다. 늙은 네스토르의 아들 발 빠른 안틸로코스를 포함하여 많은 용사들을 잃었다. 멤논의 죽음과 함께 트로이는 더 이상 싸울 기력도 없을 것 같았다. 아킬레우스는 이제 자신도 최후가 다가왔음을 느끼며 마지막 결전을 준비했다. 이제까지 전쟁은 트로이 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졌지만 그리스군은 기세를 올리면 트로이 성을 향해 트로이군을 밀어붙이고 있었다. 아킬레우스의 기세에 눌린 트로이군은 점차 트로이 성 쪽으로 밀려났다. 파리스는 앞에서 고래고래 외치긴 하면서도 두려움에 떨며 마지못해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하지만 아킬레우스 일당은 점점 거리를 좁히며 트로이군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여기서 밀리면 이제 트로이군은 다시 성 안으로 후퇴할 수도 없었다. 그만큼 그리스군은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성문을 열면 그리스군이 함께 휩쓸려 들어갈 판이었다. 이제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아킬레우스는 파리스를 향해 그리스군을 이끌고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파리스는 이제 자신에게도 최후가 오고 있다고 느꼈다. '이 모두가 나에게서 비롯된 일이라니, 만일 내가 그대 아프로디테를 여신들 중 최고의 미의 여신으로 뽑지 않고 헤라를 선택했다면, 아니면 아테나를 선택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제는 모두 부질없는 일이 되었구나. 어쨌든 나는 트로이의 왕자다.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것, 죽기로 싸우자. 이대로 패하여 생명이나 부지한들 어떻게 아버지를 뵐 것이며, 트로이의 원로들을 볼 것인가.' 여기에 생각이 머문 그는 다시 한 번 트로이군을 향해 외쳤다.
"자 죽기로 싸우자. 우리는 트로이의 자랑스러운 아들들이다. 저 성안에는 우리의 딸들과 아들들,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들이 있다. 여기서 패하면 우리 트로이의 미래는 없다. 자 죽기로 싸우자. 자 모두 무기를 들라."
그렇게 말하고 파리스는 활에 화살을 재었다. 파리스는 활시위를 힘차게 당겼다. 힘을 준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파리스는 아킬레우스를 향해 화살을 쏘았다. 하지만 그의 화살이 아킬레우스의 몸에 맞은들 아킬레우스를 죽게 할 수는 없었다. 아킬레우스의 몸은 보통 사람의 몸이 아니었다. 파리스도 그 사실을 알고 두려웠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화살을 날린 것이었다. 파리스의 화살은 쇳소리를 내며 아킬레우스를 향해 날아갔다. 아킬레우스는 본능적으로 화살을 피하려 몸을 틀었다. 그런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아폴론 신이 그 화살을 인도하여 그가 상처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 그의 발뒤꿈치를 명중시켰다.
아킬레우스의 어머니 테티스는 아킬레우스가 태어났을 때 아킬레우스를 불사신으로 만들기 위해 하데스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로 흐르고 있는 스틱스 강가로 내려갔다. 이 강에 몸을 담그면 그 몸은 상처를 입어도 금세 아물고 영원히 늙지 않고 유지될 수 있었다. 테티스는 아기의 다리를 손으로 잡고 스틱스 강에 담갔다가 꺼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손으로 잡고 있던 부위가 물에 젖지 않은 것을 미처 몰랐다. 그 바람에 아킬레우스의 몸 중 발 뒤꿈치 부분은 인간의 피부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그 비밀을 나중에 알고 테티스는 후회했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테티스는 그가 전쟁터에 나가는 것을 극구 반대했었다. 결국 아킬레우스가 전쟁에 나가는 것을 안 테티스는 그가 트로이를 완전히 패배시키기 전에 죽을 것임을 예고했었다.
아폴론 신도 그 비밀을 알고 있었다. 트로이를 지원하던 아폴론 신은 파리스의 화살을 인도하여 바로 아킬레우스의 뒤꿈치를 관통하게 유도했다. 그 바람에 아킬레우스가 화살을 피한다고 몸을 돌릴 때 하필 그곳에 정확하게 맞고 말았다.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전혀 맥 못 추고 거목이 쓰러지듯 큰소리를 내며 맥없이 쓰러졌다. 그렇게 아킬레우스는 목숨을 잃었고, 이후 발 뒤꿈치 부분을 아킬레스건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아킬레우스가 쓰러지자 파리스는 활을 높이 쳐들며 외쳤다.
"죽였다. 아킬레우스를 내가 죽였다. 자 그리스의 가장 두려운 자가 죽었다. 힘을 내서 싸우라. 그리스군은 당황하여 주춤거리며 뒤로 몰러서기 시작했다. 자칫하면 아킬레우스의 시체마저 트로이군에게 빼앗길 위험에 처했다. 이때 오디세우는 친구가 쓰러지는 것을 보고 그를 대신하여 앞으로 나와 트로이군과 맞섰다.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를 상대하여 죽을힘을 다해 싸우는 동안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가 아킬레우스의 시신을 전쟁터에서 운반해서 그리스진영으로 빠져나왔다.
트로이군은 사기가 오를 대로 올랐고, 그리스군은 사기가 떨어져 진을 굳게 치고 방어에만 최선을 다했다. 트로이군도 굳이 더 이상 전진하지 않았다. 전쟁을 오래 끌면 끌수록 그리스군은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아킬레우스의 장례절차가 진행되었다. 장작더미에 올려진 불사신과 같았던 그리스 최고의 용장 아킬레우스의 몸은 연기가 되어 하늘로 피어올랐다. 그리스군은 17일간에 걸쳐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테티스와 네레우스의 딸들이 와서 애도의 노래를 불렀을 때는 그리스 전군은 두려움에 떨며 배로 도망쳤다. 뮤즈들도 와서 만가를 읊었다. 18일째 되던 날 아킬레우스의 시체는 화장되고, 그 유골은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황금의 가마에 넣어져 파트로클로스의 유골과 혼합되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무덤에 안장되었다. 나중에 아킬레우스와 파트로클로스의 망령은 위대한 영웅들을 모시는 레우케(‘흰 섬’)에 이주했다.
아킬레우스의 장례절차가 모두 끝나자 아킬레우스가 남긴 갑옷을 서로 탐내고 있었다. 그의 갑옷은 인간이 만든 갑옷이 아니라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가 만든 갑옷이었기 때문이었다. 누구보다도 아킬레우스와 가장 친한 친구로 자부하는 오디세우스가 자기가 그 갑옷을 차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아이아스는 자신이 차지하는 것이 맞는다고 주장했다.
"그리스의 족장들이시어 죽음을 무릅쓰고 아킬레우스의 시체를 트로이군으로부터 탈취해 온 사람은 바로 나란 말이오. 그러니 내가 그의 갑옷을 차지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의 말을 받아 오디세우스가 다시 주장했다.
"아이아스, 그건 당치도 않네. 만일 내가 사기충천하여 몰려나오는 트로이군을 막아서서 싸우지 않았더라면 아킬레우스의 시체를 가져나오는 것은 물론 우리 그리스는 이미 패배하여 뭍에서 발을 떼었을 것이네. 그러니 누구보다도 갑옷의 주인은 마땅히 나일세."
두 사람은 좀체 갑옷을 양보하려 하지 않았다. 결국 전체 족장회의를 열어 전체 회의에서 그 갑주를 가장 받을 만한 영웅은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라는 데 의견이 일치되었다. 둘 중 하나를 뽑는 비밀투표가 치러졌고, 오디세우스가 갑주의 주인으로 인정되었다. 비록 투표결과에 따라 갑옷의 주인이 결정되었지만 아이아스에겐 치명적인 자존심을 잃게 된 일이었다. 갑옷의 주인으로 인정된 사람은 명예를 얻게 되는 일이었고, 거론되었다가 갑옷을 얻지 못한 사람은 그만큼 인기가 없다는 이야기일 뿐 아니라 체면상으로도 크나큰 모욕이었다. 아이아스는 자신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껴 격분하였다.
아이아스는 누가 뭐래도 자신이 아킬레우스를 제외하고는 그리스의 최고의 용장이라고 자처하고 있었다. 그는 살라미스로부터 12척의 배를 이끌고 전쟁에 참가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아킬레우스가 전쟁터에서 떠나있을 때에는 그리스군의 선봉에서 트로이와 맞섰다. 그 당시에 그는 헥토르와 맞붙어 맞 승부를 겨뤘었다. 그 싸움에서 두 사람은 결국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서로 상대의 무예에 감탄하며 해가 넘어갈 무렵 더 이상 어두워져서 싸울 수 없게 되었을 때, 서로를 칭찬하며 서로 선물을 교환했다. 헥토르는 그에게 검을 아이아스에게 선물했고, 아이아스는 헥토르에게 보라색 칼집을 선물한 일도 있었다.
그리스가 위기에 몰려 트로이군이 배에 와서 불을 지를 때에도 선봉에 서서 그들을 막았던 것도 그였다. 또한 아킬레우스를 다시 전쟁터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러 갈 때도 오디세우스와 함께 갔었다. 물론 설득을 오디세우스가 맡고 그는 따라가기만 했지만 그에게도 아킬레우스는 친한 친구였다. 그는 그리스의 장수 메네스테우스를 죽을 위기에서 구해주기도 했고, 아킬레우스로 변장하고 전쟁에 나섰다가 죽임을 당한 파트로클로스의 시체를 무사히 빼돌려 가져온 것도 그였다. 그 후 파트로클로스의 장례를 치르며 거기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레슬링에서는 오디세우스와 무승부로 승부를 짓지 못했고, 창던지기에서는 디오메데스에게 패했었다. 그는 말수가 적고 말을 천천히 하는 등 침착한 성격의 소유자이면서도 다정한 성격에다 용기가 뛰어난 장수였다. 그런데 그가 전체회의에서 갑옷의 주인공이 되지 못한 것이 좀체 이해가 되지 않았고, 억울해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다음 주에 계속….
필자의 신간 <하루 30분, 행복 찾기> 바로가기
% 필자의 블로그 바로가기 http://blog.daum.net/artofloving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