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한 영화 <프로포즈데이>의 매튜 구드는 겉보기에는 마초적이지만 속내는 따뜻한 아일랜드 남자를 연기해 끊임없이 새로운 훈남을 찾아 헤매는 여자들에게 제대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프로포즈데이> 이전에도 다양한 작품에서 활동해온 매튜 구드는 <프로포즈데이>의 까칠한 아일랜드 남자 데클랜을 통해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매력적인 영국 남자 배우 중 한 사람으로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매력만점의 미남들로 가득한 할리우드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새겨 넣으며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영국 남자 배우들의 매력은 무엇일까.
중후하면서도 귀족적인 매력의 노익장들

숀 코네리와 안소니 홉킨스는 영국 출신으로 할리우드에 정착한 최고의 남자 배우 중 한 명이다. 숀 코네리가 훤칠한 키와 잘 생긴 얼굴을 자랑하며 젊은 시절부터 일찌감치 여심을 사로잡아 왔다면 안소니 홉킨스는 인기보다는 작품을 통해 소름끼치도록 완벽한 명품 연기를 차근차근 관객을 압도했다.
어느 순간부터 숀 코네리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할아버지’ 캐릭터를 주로 연기하고 있지만 올해 여든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위풍당당한 모습을 자랑한다. 머리숱이 풍부했던 젊은 시절 숀 코네리는 007 시리즈의 히어로인 제임스 본드로써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제임스 본드는 작전에서나 연애에서나 냉정과 열정을 교묘하게 오가며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노련함을 선보이며 유유히 임무를 완수하는 만화 같은 캐릭터였다. 그러나 숀 코네리를 통해 완벽한 설득력을 부여받은 덕분에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살아남는 질긴 생명력을 가질 수 있었다. 제임스 본드는 숀 코네리 이후로 많은 남자배우들이 계승했지만 원조의 아성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숀 코네리가 타고난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은 시대를 초월한 미남이라는 것이다. 덕분에 그는 백발이 성성한 머리칼을 한 후에도 그는 여전히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앤트랩먼트>에서 그는 거의 마흔 살 가까이 나이 차이가 나는 최고의 섹시 스타인 캐서린 제타 존스와 밀고 당기는 감정싸움을 하기도 하고 진한 키스를 나누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가는 수많은 남자 배우들이 본받아야 할 바람직한 전례를 일찌감치 남긴 것이다.

반면 영국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을 정도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안소니 홉킨스는 그다지 크지 않은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관객을 휘어잡는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 힘의 팔 할쯤이 어마어마한 내공을 자랑하는 연기력이라면 나머지 이 할은 그 자신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빼어난 연기파 배우인 안소니 홉킨스가 <양들의 침묵>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 것은 그의 나이 오십이 훨씬 넘어서인 1991년이었다. 안소니 홉킨스는 뛰어난 두뇌를 지닌 인육을 먹는 것도 서슴지 않는 잔혹한 살인 행각으로 격리 수용된 채 살아가는 악마 같은 인물인 한니발 박사를 연기하며 관객의 오감을 사로잡았다.
안소니 홉킨스는 숀 코네리처럼 멜로나 로맨스에서는 별다른 매력을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재미있게도 당대 최고의 남자 섹시 스타들과 함께 연기를 하곤 했다. <가을의 전설>과 <조 블랙의 사랑>에서는 전형적인 미국 남자의 매력을 갖춘 브래드 피트와 함께 호흡을 맞췄고 전형적인 라틴 계 남자의 매력을 갖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는 <마스크 오브 조로>에서 불꽃 튀는 액션 연기 대결을 펼쳤다. 이 작품들 속에서 안소니 홉킨스는 설정상 브래드 피트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로맨스에서는 라이벌이 될 수 없는 캐릭터를 연기했지만 오히려 남자 주인공들과 함께 등장할 때마다 특유의 정확하면서도 귀족적인 영국식 영어 발음과 까칠한 듯 카랑카랑한 목소리는 물론 깊이 있는 눈빛만으로도 그들을 압도하는 힘 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앞으로도 그는 아마 그 어떤 젊고 단단한 근육을 지닌 꽃미남 배우와 함께 작품을 하더라도 자신만의 빛을 잃지 않을 것이다. 올해 나이가 벌써 일흔 셋이니 세월이 지날수록 품격을 더해가는 '할아버지‘ 배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황금기를 이룩한 중년 라인

범죄자나 걸인을 연기할 때나 사랑에 번민하는 나약한 귀족 집안의 장남을 연기할 때나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지만 슬럼프에 빠져 정신없이 방황하는 감독을 연기할 때나 변함없이 슬림한 몸매와 조각 같은 얼굴로 스타일을 잃지 않는 다니엘 데이 루이스, 웃을 때면 눈가에 굵게 잡히는 주름이 바람둥이 기질을 여실히 보여주지만 다정다감한 매너가 몸에 배어있는 휴 그랜트, 냉정하고 무뚝뚝한 얼굴 속에 내 여자에게만큼은 뜨거운 열정을 감추고 있는 ‘로맨스 소설 속 왕자님’ 같은 콜린 퍼스 이들의 공통점은 올해로 모두 50세를 넘겼다는 것이다. 쉰 세 살의 다니엘 데이 루이스가 맏형이고 휴 그랜트와 콜린 퍼스는 쉰 살 동갑내기로 이제는 완연히 중년에 접어들었지만 이들은 영국 남자의 다양한 매력을 알린 일등 공신들이다.
먼저 다니엘 데이 루이스는 <라스트 모히칸> 같은 시대극에서든 <나인> 같은 뮤지컬에서든 언제 어디서나 수컷의 진한 향기를 온 몸으로 풍기며 여심을 흔들었다. 그가 연기한 남자들은 대개 ‘자신감이 넘치는 강한 남자’ 그 자체임에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가 결여되어 있는 고독을 간직하고 있어 여자들은 그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노팅힐>의 줄리아 로버츠, <투 윅스 노티스>의 산드라 블록, <그 남자 작곡 그 여자 작사>의 드류 베리모어 등 내노라 하는 여배우들과 함께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을 도맡아 한 휴 그랜트는 농담은 썰렁하기 그지없고 주먹조차 말랑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연약한 외형을 지닌 매번 비슷해 보이는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매번 여자들의 마음에 달콤함을 한 가득 안겨주곤 했다. 수많은 아류작을 낳은 히트작 <러브 액츄얼리>에서 그는 마침내 현실에서는 도무지 존재할 수 없지만 여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영국 수상을 연기했다. 그가 연기한 수상 캐릭터는 <굿모닝 프레지던트>의 장동건만큼이나 만화적이었지만 한없이 사랑스러웠다.
콜린 퍼스가 여심을 파고든 것은 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에서 미스터 다아시를 연기한 이후이다. 비록 고전이긴 하지만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는 오늘날로 치면 <꽃보다 남자>의 도묘지만큼이나 여자들의 로망이 담긴 불멸의 인기 캐릭터로써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팬을 거느린 인물이다. <오만과 편견>의 주인공인 완벽남 다이시를 품위 있게 연기한 콜린 퍼스를 제대로 알린 것은 현대판 <오만과 편견>이라고 할 수 있는 <브리짓 존스의 일기>이다. 불혹의 나이인 마흔 즈음에 출연한 이 작품에서 그는 여자 주인공의 이상형으로 끊임없이 거론되는 TV판 <오만과 편견>의 다아시와 동명이인인 다이시 캐릭터를 연기했다. 콜린 퍼스를 통해 <오만과 편견>의 다이시처럼 콧대 높은 엄친아였지만 허술하지만 귀엽고 평범한 여자 주인공과 사랑을 하며 여러 모로 변해가는 현대판 다아시를 본 고전의 팬들과 영화의 팬들은 노소를 가리지 않고 그의 팬이 되어 버렸다.
숀 코네리에서 콜린 퍼스에 이르기까지 영국 출신 남자 배우들의 또 다른 공통점 중 하나는 비록 초콜릿 모양의 복근 같은 것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획일화된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차근차근 개척하며 영국 출신의 후배들이 등장하기에 앞서 촘촘하고 튼튼한 멍석을 펴는데 성공했다.
꽃미남 애호 칼럼니스트 조민기 gorah9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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