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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역사는 현재의 역사"

입력 : 2010-04-10 01:58:43 수정 : 2010-04-10 01:5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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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 머리 위에는 언제나 검이 매달려 있다네. 군주는 자신의 근위병들마저 두려워하며, 동료도 믿지 못한다네. 움직이거나 쉬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더 이상 군주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네.” 무소불위의 권세를 휘두른 로마 황제가 후배 황제들에게 전해주는 일종의 격언이다. 인류 최고 유산의 하나로 일컫는 대제국 로마. 그러나 그 찬란한 제국의 밀실 안에서는 권력을 좇는 별의별 전략과 음모 술수가 꾸며지고는 사라진다. 1400여년에 걸쳐 지구촌 문명을 이끌었던 로마는 그 대단한 권위만큼이나 황제의 자리도 위험천만한 권좌였다. 그럼에도 인류 문명사 특히 서구 문명 역사에서 로마 황제들만큼 족적을 남긴 인물들도 찾기가 쉽지 않다.

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지음/윤수인·김희용 옮김/민음사/전 6권 16만원

에드워드 기번 지음/윤수인·김희용 옮김/민음사/전 6권 16만원
18세기 영국의 대표적 문장가이자 역사가였던 에드워드 기번(1737∼1794)은 로마의 장구한 세월을 150만자의 단어와 6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로마제국 쇠망사’란 이 저서는 로마사의 기본 입문서로 지금도 현대 사학자들의 대접을 받는다. 전 15권의 ‘로마인 이야기’를 써서 세계적인 역사가 반열에 오른 일본의 시오노 나나미조차도 사실상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참고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현대적 시각과는 200여년의 차이가 있지만 저자의 깊이 있는 통찰과 방대한 분량의 상세한 기술, 그리고 해박한 역사적 고증 등은 과연 로마사의 기본서라 할 만하다. 저자는 자료 수집과 저술에 무려 20여년을 쏟아부었다.

기번은 시간상으로 2세기부터 15세기까지, 공간적으로는 그리스, 로마, 소아시아, 인도, 중국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의 발걸음을 옮겨놓는다. 저자는 책을 쓰면서 한 가지 명제에 천착한다. 입수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철저히 검토하고 상세한 고증작업을 통해 보다 정확한 사실을 후대에 전달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인들에게 가장 훌륭한 정치가로 기억되는 윈스턴 처칠과 인도의 네루 같은 세계사적 인물들은 기번의 책을 달달 외울 정도였다고 한다. 나아가 이들이 인류의 평화 발전에 기여하는 국가 정책을 펴는 밑거름을 제공했다는 평가도 아울러 받는다. 처칠은 회고록에서 “기번이 묘사한 로마 황제들의 에피소드가 나중에 국가를 운영할 때 큰 힘이 됐으며 등불 역할을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1400여년간 세계를 호령한 로마제국은 지금도 현대인의 삶 속에 살아 숨쉬고 있다.
기번은 총 6권의 책 가운데 1권에서부터 4권까지의 전편은 서기 2세기부터 서기 641년까지 존속한 서로마제국의 약 500년간을 다루었다. 이어 후편 5, 6권은 비잔틴제국으로 불리는 동로마제국을 기술했다. 기번이 생존했던 당대에 동로마제국을 개관 서술한다는 것 자체는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지금도 유럽 사학계에선 그 용기와 재능에 더없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흔히들 로마제국은 서로마제국의 몰락으로 그 생명을 다했다고 본다. 하지만 서구 학계는 이를 로마의 몰락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신 고대 로마에서 중세 로마로의 이행은 수세기에 걸쳐 점진적으로 이뤄진 것이며, 동로마제국의 존속에 더 의미를 둔다. 어느 순간 흥하고 망하는 단절의 역사가 아니라 연속된 로마제국의 의미가 중요하다는 점이다.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훌륭한 기술은 그리스도교에 대한 분야로 꼽힌다. 기번은 기존 학자들과 달리 그리스도교 등장을 신학자적인 입장이 아니라 역사적인 시각으로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등장을 처음으로 역사적으로 다룬 사가가 됐고 아울러 그리스도교의 성장과 발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려 애썼다. 이는 최초 그리스도교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황제를 설명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자칫 객관성을 잃기 쉬운 기독교적 관점보다는 역사적 흐름에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묘사한 점이다.

기번은 18세기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문학 작가 중의 한 명이었다. 물 흐르는 듯한 유려한 문장과 위트 넘치는 신랄한 풍자로 당대 대표 문장가였다.

‘역사의 연구’로 현대 사학계를 이끌었던 아널드 토인비 박사는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는 동안 에드워드 기번은 언제나 나에게 북극상 같은 길잡이였다. 기번의 정신은 모든 서구의 역사가들 중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하고 눈부시다”고 극찬했다. ‘역사를 아는 자는 인생을 두 배로 사는 것’이라고 어느 성현은 갈파했다.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대제국의 흥망사는 큰 교훈을 줄 수 있다. 현재의 흐름과 미래의 운명을 생각하는 데 더없는 등불이 될 수 있다.

유난히 역사를 좋아하고 진지한 우리나라의 독자들은 ‘포스트모던’ 시대 계몽주의 역사가의 책이 무슨 의미를 갖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기번은 과거는 살아 있으며 항상 현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로마제국의 역사는 과거의 역사만이 아니라 현재의 역사라고 기번은 설파했다. 소통 부재라고 일컫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 기번이 던진 로마제국의 흥망성쇠라는 화두를 한번 음미해 볼 만하다. 도서출판 민음사에서도 2년여에 걸친 번역작업 끝에 이번에 국내 최초로 완역본을 출간했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 @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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