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베 미유키라는 일본 작가가 있다. 일본에선 상업적인 면에서나 작품적인 측면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버금가는 위치를 차지하는 작가이다. 살인사건을 주된 소재로 삼기에 추리작가의 범주에 들지만 그녀의 소설 세계는 훨씬 넓은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그 남학생은 우연히 접하게 된 끔찍한 연쇄살인 사건을 계기로 수많은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게 된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이들을 겪고 나서야 남학생은 비로소 잊혀지지 않는 과거와 한발짝 거리를 둘 수 있게 된다.
그저 오락거리로 ‘러블리 본즈’를 선택한 관객이라면 분명 영화 초반부터 당황할 것이다. 영화는 14세 소녀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내 이름은 수지 새먼이에요. 내가 살해당했을 때 나는 14살이었죠.” 주인공 소녀가 죽는다는 것도 밝혀졌고 누가 범인인지도 초반부터 드러난다. 감독은 범인을 밝혀내서 복수하는 과정에는 별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다. 서스펜스나 스릴 같은 오락적인 요소 역시 그다지 기대할 것이 없어 보인다. 감독이 방점을 찍는 것은 억울하게 살해된 소녀의 감정 추이와 무참히 살해된 딸을 둔 부모의 심리이다.
‘러블리 본즈’는 오락을 위한 영화가 아니라 치유를 위한 영화이다. 영화를 지배하는 가장 큰 정서는 안타까움이다. 소녀가 사이코패스 아저씨를 따라가게 되는 것도, 이미 죽은 소녀가 예정된 천상의 세계로 가지 못하고 지상 세계를 떠도는 것도 안타깝다. 범인찾기에 집착할 수밖에 없을 아버지의 심정도 안타깝고 홀로 외딴 농장으로 떠나버릴 수밖에 없는 어머니의 절망도 그러하다.
하지만 새먼의 마지막 대사처럼 고난과 역경을 견디긴 힘들지만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인간관계는 훨씬 더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위기를 극복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새먼 가족의 모습은 현실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영화의 해피엔딩은 조그마한 위로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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