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은 유럽을 떠받치는 양대 정신적 전통이다. 헤브라이즘은 기독교적 전통을 말하며, 헬레니즘은 인간 중심적인 사상·문화의 맥을 뜻한다.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신까지 인간을 빼닮았다. 천둥과 번개를 주무른 제우스, 전쟁과 지혜의 여신 아테나,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 그들은 화를 내며 시기 질투를 하고 모략도 서슴지 않았다. ‘일리아스’에는 신들의 이런 모습이 그려져 있다. 너무 인간적이어서인지 지금 그리스 신의 이름은 술집에 붙어 있기도 하다. 그런 신과 함께했던 고대 도시국가 아테네에는 약 2500년전 철학이 만개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류의 지성을 더 높인 스승들이다. 로마가 천년 이상 지중해를 지배했지만 그리스에는 굽히고 들어간 이유는 이처럼 많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정치의 뿌리도 그리스다.
찬란한 문화를 자부하는 그리스가 오늘에는 말이 아니게 됐다. 경제위기가 도무지 가시질 않는다. 그리스 경제를 지탱해온 관광수입은 곤두박질하고 있다. 이렇다 할 다른 산업도 없으니 그리스 사람들은 죽을 지경이다. 돈이 없으면 빚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리스 정부 부채는 2700억유로(약 431조원)로 불어났다. 국내총생산(GDP)의 116%에 이르는 규모다. 우리나라가 진 빚보다 작지만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감당하기 힘든 액수다.
조상 덕을 적잖게 본 그리스가 위안 삼을 거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로 이웃 이탈리아다. 조상 덕에 막대한 관광수입을 올려온 이탈리아도 빚더미에 앉아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와 함께 ‘PIGS(돼지들)’이라는 묘한 약칭의 일원이 된 ‘재정불량국’ 포르투갈과 스페인도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지금은 곤경에 처했다.
그리스인들은 토론하다 날을 새우곤 한다. 철학자 선조들의 유전자가 이어져 온 탓일 게다. 그런데 최근에는 투쟁의 본능이 더 강해진 것 같다. 공공노조연맹과 민간노동자총연맹이 파업한다고 한다. 사회당 정부가 긴축정책을 들고 나왔다는 게 이유다. 힘을 합쳐도 부족할 판에 안타깝다. 이성 대신 투쟁의 유전자가 그리스를 설상가상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강호원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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