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공포정서에 기댄 미스터리
영화의 형식과 내용에서 동서양의 색다른 정신세계가 뚜렷하게 구별되는 장르 중 하나는 공포물일 듯하다. 할리우드 공포물은 대개 사지절단과 피칠갑, 비명소리 가득한 호러가 대부분인 데 반해 아시아 영화는 기묘한 괴성 등으로 공포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미스터리가 일반적이다.

남자친구 미카(미카 슬롯)과 동거 중인 대학생 케이티(케이티 페더스톤)는 남모르는 고통을 겪고 있다. 밤이 되면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는 것. 케이티는 최근 부쩍 그 빈도와 강도가 심해지자 미카에게 고통을 호소한다. 미카는 동영상 사이트 등에서 화제가 될 만한 아이템이라고 여기고 홈비디오 카메라를 구입해 침실에 설치하는 등 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촬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침실문이 스스로 움직이고 벽에 걸린 액자가 저절로 깨지는 등 이상한 현상들이 카메라에 잡힌다. 커플이 도움을 요청한 심령술사는 자신이 상대하는 것은 귀신(ghost)이지 악마(devil)가 아니라며 발을 빼버린다. 정체불명의 존재를 밝히기 위한 미카의 노력이 더해질수록 그 마성은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문법과 스타일에서 할리우드 주류 호러물과는 궤를 달리하는 이 영화의 등장에 미국인들은 꽤 흥분했던 모양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2007년 완성 뒤 곧바로 DVD시장으로 갈 뻔한 이 영화의 마지막 10분을 재촬영한 뒤 극장 개봉을 밀어붙였고 평단은 “온몸을 긴장시키는 강렬하고 짜릿한 전율”(‘버라이어티’), “올해 가장 놀랍고, 숨막히는 영화”(‘할리우드 인디펜던츠’) 등으로 환호했다. 지난해 9월 단 13개 극장에서 개봉한 영화는 입소문을 타면서 상영관을 160여개까지 늘렸고 이후 석달간 무려 1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이례적인 성공이 초자연적 현상이나 청각에 주로 기댄 공포물에 익숙한 국내에서도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거친 데다 초점까지 안 맞는 화면은 눈에 거슬리고 공포적 장치만 늘어놓는 구성은 지루하며 그 흔한 반전조차 거의 없는 탓에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면 어리둥절해지기까지 한다. 14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송민섭 기자 sts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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