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은 1000년 동안 호남에서 살았고 호남을 대표했으며 호남정신으로 이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했던 인물 150명의 삶과 정신을 모았다. 백제의 왕인박사에서부터 오늘날의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역사의 위기 때마다 한국의 '자존‘을 높였던 호남 인물의 진중한 영혼이 담겨있다.
신문사 논설주간인 저자 남성숙(47·여)은 스스로가 광주정신, 남도정신, 전라도 기질, 호남문화에 대해 거의 광적인 자긍심이 있다고 말한다. 호남정신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한국인의 전통의식과 의식의 보편성에서 호남인이 지니는 정신적 실체의 특수성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이 책은 그것을 찾기 위해 ‘사람’에 주목했다. 특히 역사 속 호남 사람의 행적을 통해서 오늘날의 좌표를 찾고 있다.
저자가 찾아낸 인물 중에는 역사 속에서 눈에 익은 인물도 있고 생소한 인물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시대와 시대,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며 거대한 인간띠를 형성하며 대물림해온 호남상의 거침없는 물결이다. 남도 땅에 퍼져있는 이 거대한 1000년 인물벨트는 참 놀랍다. 왜 그랬을까. 한번쯤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정의’라는 주제로 인물과 인물이 1000년 동안 의로움의 정신을 되물림하면서 정신무장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인간띠다.
이 위대한 정신유산을 확인하기 위해 필자가 그리고자 하는 역사적인, 시대를 넘나드는 인간띠는 하나의 거대한 인간 아카데미촌을 형성하고 있다. 서로 인근 지역에 살면서 주거니 받거니,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인물과 인물을 이으며 의와 예, 그리고 학문의 나눔을 통해 정신사의 대맥을 형성한 것이다.
다음은 저자가 심혈을 기울여 작성한 책의 서문이다. 그 어떠한 서평보다 내용을 가장 적확하게 전달하고 있어 서문 전문을 싣는다.
“13년이 지났다. 감히 ‘호남학’이란 말을 꺼내기도 겁났던 1996년에 호남인물 100여명을 모아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호남인물 100’이란 책을 낸 후 13년이나 지났다. 출간 당시 목표는, 매년 100여명을 보완해서 10년 후엔 ‘호남 역사인물 1000명’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늘 생각뿐, 참 게을러서, 이것저것 해찰하고, 또 다른데 관심 갖다가, 13년 동안 겨우 50명을 더 조명했다. 그래서 20세기에 ‘호남인물 100명’을 내고 21세기로 넘어와 ‘호남인물 150’을 내놓게 되었다. 이제부터 정신을 차리고 2010년에는 ‘호남인물 200’에 도전해보리라 작심하지만 장담을 못하겠다.
사실 1996년에 ‘우리가 알아야 할 호남인물 100’을 낼 때만 해도 한국사회에서의 호남의 위치가 지금 같지가 않아서 책을 내는 목적이 ‘호남인의 소외 극복, 자긍심 회복’이었다. 오죽했으면 책 서문을 이렇게 썼었다.
서울을 가나, 부산을 가나, 대구를 가나, 아프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자신의 고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자기 고향의 역사성에 자긍심을 느끼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정신적으로 여유가 있고 너그럽다는 사실, 그들의 삶에 그들의 탯자리가 주는 토양이 긍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하면, 그렇지 못한 우리들의 모습에 화가 나고 가슴 아프다.
서울에 가면 간혹 고향이 전라도임을 속이고 사는 이도 있다 하고, 설령 속이진 않더라도 말투를 바꿔 테가 나지 않게 하는 이도 있다고 하는데, 정말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이유를 따지자면 단순한 몇 가지가 볼가진다. 고용인들 중 전라도 사람을 써보고 기질이 좀 그렇다 싶어 꺼리니까 먹고 살기 위해 속이기도 하고, 어쩐지 모임이나 회사에서 전라도 사람이라면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아 그렇게 하고, 스스로 천대받고 낙후된 지역이라는 열등감에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필자는 이런 스스로의 좌절감과 열패감, 소외감의 실체를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우리 스스로의 게으름 탓 아닌가 생각해 본다. 파헤쳐보면, 뿌리를 캐 보면, 하등 꿀릴 것 없는 자랑스런 이 땅의 후손들이 경제논리에 허우적거리는 것은 지역을 이끄는 지도자들의 무성의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반성해본다.
그렇다. 경상도에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500년 전의 퇴계 이황에 못지않은 선조가 광산(기대승) 장성(김인후)에 있었고, 조선 개혁을 이끈 선지자들이 이 땅에 있었다. 근대 한국을 바르게 이끈 선지자들이 수두룩하고 현대사 속의 민주화 주역도 이 지역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그들이 내려준 ‘광주정신’ ‘호남사상’을 가슴 속에 새기지 않았다. 바로 이웃에 살다간 그 선각자들의 족적을 모르기 때문에 핍박한 이 땅이 한스러웠다.
이제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잉태한 항일운동과 의병운동, 실학운동, 사림정신, 동학혁명, 개혁정신의 주체자를 되살려 우리 앞에 세우고, 그 역사인물들을 업고 기대고 보듬고 존경하며 우리의 존엄성을 회복할 시기다.
호남이 없으면 한국이 어떻게 있는가. 정말 자랑스러운 이 인물 알기에 나서서, 21세기로 가는 호남의 좌표를 가늠해 보자. 현재 진행형인 역사 속에 나와 똑같은 인물들이 100년 전, 500년, 1000년 전 이 땅에 있었음을 확인하는 즐거움처럼 큰 기쁨이 또 어디 있겠는가.
13년 전에 쓴 이 서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나 지난 13년 동안 호남에 너무 엄청난 일이 자주 일어나면서 그 지형도가 변했다. 만년 야당으로 소외와 핍박의 대상이었던 호남에서 대통령(김대중)이 나와 여당지역으로 바뀌었고, 그 여세를 몰아 경상도 사람을 데려와 다시 대통령(노무현)에 당선시키면서 ‘한의 힘’은 광주를 넘고 남도를 넘고 호남을 넘어 남북화해의 거대한 물꼬를 텄다.
물론 ‘호남인물 100’을 낼 때와 같이 ‘호남인물 150’ 역시 ‘호남의 자존심 자긍심 회복’이 목적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21세기는 지배와 복종의 사회가 아니라 개개인의 능력이 중시되고 무한한 가치창조를 이루어야 할 변혁의 시대다. 투쟁과 저항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철학의 정립이 요구되는 시대다. 과거 긴 역사의 변천과정에서 정의를 부르짖고 의리를 숭상하였던 정신은 이제 새로운 지혜로 탈바꿈하여 평화를 추구하고 인간의 가치를 숭상하는 현대정신으로 승화되어야 한다. 이제 저항을 미화하고 참여를 천시하였던 가치관으로부터 탈피하여 국가 발전의 경륜을 높이 여기고 창조의 정신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의식의 전환과 새로운 가치관의 정립이 절실한 때다. 아니,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생명에 대한 외경의식을 가지고 참다운 삶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탐구하는 철학을 다시 정립해야 할 때가 도래했다. 이런 시대 현실에서 볼 때, 호남의 사상과 문화에 대한 탐구는 이제 다시 논의해야 할 새로운 과제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필자의 자료식 인물탐구는 이 거대한 과제 해결 노정에서 호남사상 호남정신의 맥을 인물로 찾아보는 한 줄기에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적은 지식으로 ‘광주정신’ ‘남도정신’ ‘전라도 기질’ ‘호남사상’ ‘호남문화’에 대해 거의 신앙적인(광신도) 자긍심이 있다. 이순신 장군이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고 극찬했던 그 말씀 때문이 아니라, ‘호남’은 지금도 한국호를 견인하는 가장 적극적인 ‘힘’이다. 호남정신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한국인의 전통의식과 의식의 보편성에서 호남인이 지니는 정신적 실체의 특수성이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이다. 필자는 ‘그것’을 찾는데 ‘사람’에 주목한 것이고 ‘역사 속의 그 호남 사람’의 행적을 통해서 오늘날의 좌표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다.
호남이 역사적으로 어떤 땅인가. 호남 땅, 전라도 사람의 인식과 사상은 백제문화권과 또 다른 특징을 가졌다. 백제문화가 한강유역으로부터 공주 익산에 이르기까지 국가적 세력권을 형성하여 가면서 성숙하였는가 하면, 노령의 이남과 지리산의 남쪽, 영산강을 중심으로 하여 형성된 호남지역은 백제문화권과 다른 독자성을 지니면서 발전해왔다. 백제가 융성할 때도 백제 안에 있으면서도 전남지역은 백제 안에 들지 못했다.
이후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에도 전라도 지역은 신라의 지배층 귀족으로부터 소외됐으며 고려에 이르러서는 차령 이남인은 쓰지 말라는 태조의 유훈에 따라 호남인이 중앙정권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조선시대로 건너와서도 초기의 집권은 영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호남은 정권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유배지나 낙향지가 된 것이다. 조선 후기에도 호남인은 중앙정계에의 진출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조선말기 영조에서 고종까지 13년 동안 49회의 과거시험이 있었는데 합격자 총 2103명 중 경상도 출신 402명 전라도 출신 216명으로 반밖에 되지 않았다. 정치적 지도자의 지위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수적으로 열세였던 것이다.
뿐인가. 기후가 온난하고 농산물과 수산물이 풍부해서 문화적 발전이 빨랐던 반면 국가의 정치 경제 사회의 기강이 문란했을 때는 탐관오리의 집중 수탈 대상 지역으로 전락했다.
이런 소외와 홀대의 천년 연속선상에서 풍부한 자연환경을 가진 전라도 사람들이 그 의연함을 간직하면서 강인한 정신과 창조성을 발휘해 독특한 문화와 정신을 만들어낸 것이다. 그 중에 전라도인의 기질을 배태한 가장 대표적인 역사적 배경 중 하나가 ‘사림정신’(士林精神)이다. 사림이란 한자 그대로 숲 속의 나무처럼 선비들이 많았고 그들이 독특한 저항적 전라도 정신을 형성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 나타난 사림의 배경은 조선 창업 때 고려의 충신들이 조선 왕조에 참여하지 않고 고려왕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산간에 은거하면서 시작된다. 이들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자신의 지조를 지키며 학문을 닦았다. 이런 외곬 선비들은 조선 초기에 재야에서 도학의 맥을 형성하면서 엄청난 호남인재를 길러내 중앙에 보내게 되고 조선 중기 중종에 이르러 빛을 내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조성왕실 내 개혁사림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기득권을 쥐고 있는 조정 내 훈구파와 부딪치게 되고 끝내 전쟁을 불사하는 사화가 일어난다. 그것이 바로 기묘사화다.
잘 알다시피 기묘사회 때 사림의 대표는 조광조였다. 조광조를 중심으로 사림선비들은 중종을 도와 신유학을 장려하고 소학을 숭상하며 중국 요순의 도를 현실정치에 반영하고자 했다. 또 성리학을 숭상하며 미신을 타파하고 유교적 지치주의 이념에 의한 개혁을 단행했다. 그러나 이런 젊은 선비들은 조정의 훈구대신들의 시기를 받아 반대에 부딪혔다. 거기다가 중종은 젊은 선비들에게 위협을 느낀 터라 훈구대신들의 모함을 받아들여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 사림선비들을 모두 유배 보내게 된다(만약 이때 중종이 개혁을 받아들였다면 지금 대한민국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이들의 유배지가 고향인 전라도였고 전라도 정서 전라도 특질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되면서 이 지역 인물들 역시 엄청난 피해를 당하게 된다.
이런 살벌한 상황에서 기묘사회 직후 광주시 광산구 서창동 출신 박상 선생은 용기를 내어 훈구세력의 횡포에 대항해 인간의 도리를 찾고 윤리와 질서를 회복하자는 상소문을 보내 조정은 다시 훈구와 신진사류의 싸움이 거세지고 많은 호남선비들이 조정을 떠나는 계기가 된다. 이런 박상 선생 문하에서 석천 임억령, 면앙정 송순, 송강 정철, 김성원, 고경명 등 굵직한 인물이 배출돼 사림의 맥은 호남에서 다시 튼실하게 뿌리를 내린다.
바로 이 기묘사림으로부터 전라도정신의 특징인 대의정신과 불의부정에 대한 불굴저항의 정신적 기질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런 사림정신을 살려 나중에 전라도 사람들이 대 이은 기질 중 하나가 절의정신이다. 절의란 공자의 춘추사상에서 따온 말이다. 공자는 춘추를 쓸 때 단순한 역사 사실을 기술한 것이 아니라 왕도를 옹호하고 난신적자를 응징하는 정의의 사관을 가지고 재구성했다. 공자의 이 춘추라는 책이 나온 후 인간사회는 얼마나 정의롭게 사느냐가 문제시되었고, 정의와 진리와 인간 존엄성이 불의에 짓밟힐 때는 불의를 미워하고 정의의 횃불을 밝히게 되었다.
이런 절의정신을 공부한 전라도 사림 선비들은 조선중기 임진왜란이 나자 붓을 던지고 창을 들고 나서는 용기로 발현된다. 임진왜란 때 환갑을 넘기고도 의병장으로 나선 전라도 선비 고경명을 비롯해 김천일, 김덕령 등 의병장이 쏟아져 나와 이순신 장군 왈,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도 없다’고 할 정도였다.
국가가 위기에 빠졌을 때 붓을 들었던 양반 신분으로 과감히 붓을 던지고 총칼을 든 것은 임진왜란 때뿐 아니라 병자호란에 이어 동학농민전쟁, 한말의병운동, 일제 광주학생독립운동까지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구국운동의 중심에 호남인이 있었다.
이처럼 호남인이 민족 수난의 시대 때마다 불사조처럼 일어나 절의정신이나 대의정신을 유감없이 발휘해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켜냈다. 이런 절의의 1000년 전통과 역사의 힘이 뭉쳐 한국 민주화를 견인해낸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까지 그 정신이 면면히 이어지니 것이다.
이런 독특한 전라도만의 지리 풍토 의식주 생활을 배경으로 잉태된 전라도 기질은 불의를 보면 못 참는 성격, 잘못된 부분을 알면 바른말을 하고야 마는 정직성, 정의를 위해 몸을 아끼지 않는 용기로 승화된 것이다.
호남의 독특한 지리 정치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사림정신 절의정신 대의정신으로 무장한 수많은 인물이 호남에 있었는데 15-16세기를 중심으로 특히 광주 무등산 주변에 많은 인물이 정자를 짓고 존재했다.
호남 땅에 퍼져있는 이 거대한 1000년 인물벨트는 참 놀랍다. 왜 그랬을까. 한번쯤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정의’라는 주제로 인물과 인물이 1000년 동안 의로움의 정신을 되물림하면서 정신무장을 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인간띠다.
이 위대한 정신유산을 확인하기 위해 필자가 그리고자 하는 역사적인, 시대를 넘나드는 인간띠는 하나의 거대한 인간 아카데미촌을 형성하고 있다. 서로 인근 지역에 살면서 주거니 받거니, 마을과 마을을 이으며 인물과 인물을 이으며 의와 예, 그리고 학문의 나눔을 통해 정신사의 대맥을 형성한 것이다.
바람이 있다면, 이런 인물들의 사상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가 필요함은 물론이요, 이것들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고찰에 지자체가 호남인이 많은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호남사상이 다시 현대적으로 정립되는 날, 호남의 독특한 사상과 실천적 정신은 한낱 과거의 것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민족사를 이끌어갈 미래사상이 될 것이다. 21세기 한국정신을 끌고 갈 정신으로 재창조될 수 있는 활력소를 얻게 될 것이다.
필자는 지금 우리 호남인의 피 속에 흐르는 ‘호남사상’과 ‘호남정신’의 힘이 현대사회에 발휘될 때 우리 민족의 미래는 더욱 밝게 활짝 피어날 것이라 확신한다.
한 가지 독자께 양해를 구하는 것은, 필자가 이 책에 선정해서 게재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호남인물 150명’은 객관적인 역사적 중요성이나 검증에 의해 선택한 인물이 아니라 필자가 관심을 갖고 자료를 구한 순서대로 먼저 기술한 것이다. 오해 없으시기 바란다. 앞으로 200명, 500명, 1000명 더해가면서 보다 많은 인물들이 하나의 사전처럼 축적돼 역사 속에서의 ‘호남 인물의 힘’이 응축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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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남성숙 논설위원. |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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