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초대 ‘EU 대통령’ 관리자형 택했다

입력 : 2009-11-20 23:35:10 수정 : 2009-11-20 23:35:1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상임의장에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
겸손한 리더십·정치적 중재력 높이 평가돼
외교대표에는 애슈턴 지명 사상·성별 안배
“국제적 인지도·경험 부족” 우려 목소리도
‘유럽연합(EU) 대통령’으로 관심을 모은 초대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에 헤르만 반 롬푸이 벨기에 총리가 선출됐다. 외교장관격인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에는 영국의 캐서린 애슈턴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이 지명됐다. 이들은 회원국 사이의 사상·성별·국력 안배 끝에 선택됐으나 일각에서는 EU를 대표하는 ‘얼굴’로서 국제적 인지도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타협 치중하다 중량감 희생=영국 BBC 방송은 19일 EU 27개 회원국이 특별정상회의를 열고 반 롬푸이 총리를 만장일치로 EU 대통령으로 선출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의회 동의를 얻어야 취임할 수 있는 애슈턴 외교대표도 무난하게 동의를 얻을 전망이다. 이로써 EU는 정치적 통합이 한층 강화된 리스본조약 체제를 내달 1일 출범시킬 수 있게 됐다. 반 롬푸이 총리는 내년 1월부터 공식 임기를 시작한다.

EU 대통령과 외교장관 선출과정은 좌·우파 정치 성향과 강대국과 약소국 안배, 성별까지 고려한 균형 찾기의 연속이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EU 대통령 후보에서 낙마한 뒤 각국 정상들 사이에서는 강대국이 아닌 소국에서 우파 성향의 ‘관리자형’ 인물을 찾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좌파에서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외교대표직을 요구했으며, 여성 지도자들은 ‘성별 안배’를 촉구했다.

회원국 간의 ‘퍼즐맞추기’식 타협 끝에 EU 대통령에는 중도우파인 기독민주당, 소국 벨기에 출신 남성 후보가, 외교장관에는 좌파인 노동당에 강대국 영국의 여성 후보가 선출됐다.

이번 결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엇갈린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선출된 두 사람이 “EU를 더 강하게 만들고 훨씬 더 강력한 미국의 협력자가 되게 할 것”이라고 환영했다.

하지만 유럽 내에서는 회의적 평가가 적지 않다. BBC 방송은 EU 인사들 사이에서 두 자리의 위상이 처음 취지보다 낮아졌으며, 두 후보 모두 국제무대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파이낸셜타임스도 두 사람이 미국·중국과 경쟁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면서 “미국과 중국이 이들의 대표성을 인정하기보다는 독일, 영국, 프랑스 등과의 양자 대화를 통해 유럽과의 협력을 모색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카리스마보단 관리형 지도자=EU 대통령에 선출된 반 롬푸이 총리는 겸손한 리더십과 정치적 중재력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야심가형 정치가가 아니었던 그가 지난해 12월 총리로 지명되자 벨기에에서는 반신반의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언어가 다른 남북부 사이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 벨기에 사회를 안정시키고 경제위기도 무난히 극복했다.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실용적·현실적 대안을 찾아 합의를 이끌어내는 그의 스타일 덕분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이처럼 현안을 해결해내는 그의 관료적 자질은 EU 회원국 정상들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고 AFP통신은 전했다.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에 능통한 그는 1990년대 예산장관으로 재직 당시 강력한 정책으로 재정적자를 감축시켜 명성을 쌓았다. 반 롬푸이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으로서 임기 동안 공동체의 단합과 행동을 최우선 덕목으로 삼아 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초 여성’ 기록 제조기=애슈턴 외교대표는 EU 고위직과 관련해 ‘최초 여성’ 기록 제조기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그는 작년 10월 돌연 공석이 된 영국 몫의 통상담당 집행위원 후임에 지명되면서 2개의 ‘최초 여성’ 수식어를 달았다. 애슈턴은 영국인으로서는 최초의 여성 EU집행위원이었으며,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을 여성이 차지한 것도 그가 사상 처음이었다.

이번에 외교대표로 지명됨으로써 애슈턴은 유럽의회의 동의를 얻어 취임할 경우 여성 최초의 EU 외교대표라는 기록을 이력서에 추가하게 된다.

작년 통상담당 집행위원 취임 당시 그는 통상 경험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했지만 신속하게 업무를 파악하고 합리적인 결정을 내려 후한 점수를 얻었다. 애슈턴은 자동차 업계의 강한 반발에도 한국·EU 자유무역협정(FTA)을 마무리짓기도 했다.

◆국제무대 EU ‘얼굴’ 역할=2년6개월 임기에 연임이 가능한 EU 대통령은 매년 4회 이상 개최되는 EU 정상회의를 주재한다. 또 국제무대에서 EU의 견해를 대표하며 EU의 정치·안보 이슈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회원국 사이 합의를 끌어내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러나 리스본조약에 포함된 EU대통령의 권한과 의무는 상당히 모호한 상태여서 ‘얼굴 마담’ 역할에 그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5년 임기의 EU 외교장관은 EU 외교부에 해당되는 대외관계청(EEAS)을 신설, 수십억 유로의 자체 예산과 5000∼7000명의 인력을 관리하는 권한을 갖는다. 이 때문에 오히려 상임의장보다 더 실권을 갖는 자리로 여겨진다. 국제무대에서는 미국, 중국 대표 등과 만나며 EU의 외교적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