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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한옥 산촌으로 옮겨와 다시 짓는 이유

입력 : 2010-03-11 16:15:38 수정 : 2010-03-11 16: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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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전호상 박사는 이웃과 더불어 사는 정감 있는 마을에 관심이 많습니다. 우리의 전통마을과 오늘의 농촌마을은 물론, 국내외 생태마을과 최근에 조성된 새로운 개념을 적용한 마을들을 둘러보고 연구도 했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에게 친근감 있고, 주변 환경과도 조화가 되는 전통 한옥이 오늘날 친환경 주거에 적용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런 한옥이 여러 채 이웃하면 전통과 현대가 조화되는 새로운 농촌 마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여기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위해 올 봄부터 첫 번째 한옥을 직접 짓기 시작했습니다.
 
강원도 횡성군 청일면 유동리 애고지 마을의 머우네골에서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가능성의 미래를 꿈꾸며 의욕적으로 한옥을 짓고 있는 전호상 박사를 만나보았습니다. 

최근의 농촌은 1차 생산물의 생산지로서 뿐만 아니라, 전원생활을 위한 도시인들의 휴양 기능도 하고 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를 지원하고, 확산시키기 위하여 전원마을이나 귀농, 귀촌자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을 내어 놓고 있습니다.

특히 농촌의 경관은 도시민을 끌어들여 농가의 소득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지자체에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농촌의 경관이 아름다운 마을 형성과 관계가 있을 뿐 아니라, 잘 사는 마을이 되기 위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횡성 머우네골에서 집을 짓고 있는 전호상 박사는 이런 농촌마을에 관심을 갖고 있고, 이를 오늘의 농촌에 적용시켜 보려고 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사)생태산촌만들기 모임’에서 운영위원을 맡아오면서 앞으로의 농산촌의 변화와 새로운 공간 구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조성되는 마을은 수십 수백년을 이어오며 만들어진 전통마을과는 달리 비교적 빠른 시간에 계획되고, 조성됩니다. 또한 긴 세월을 통해 조성된 오늘날의 농촌 마을은 이농 ? 이촌으로 사람들은 빠져나가 가옥들이 허물어지고, 마을의 모습이 깨어져 예전의 모습이나 정감을 찾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전호상 박사는 이런 농촌의 현실을 고민하면서 농촌마을의 새로운 질서를 도입하기 위한 연구를 하여 ‘계획공동체마을의 공간구성’이란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불어온 환경문제를 풀기위해 생태마을이란 이름으로 만들어진 마을을 방문해보고 알게 된 것은 마을 형성에 참여한 입주자들이 생태적으로 살고자 하는 점은 강조되었을지 몰라도 자연소재의 건축 재료를 사용하여 자연경관이 좋은 농산촌 지역에 지어진 전원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커뮤니티를 중요시하는 구성원들이 새로운 마을의 공간을 계획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연구를 한 것입니다.

전호상 박사는 처음부터 전통건축을 공부한 것은 아닙니다. 현대건축을 전공하다가 1990년대 초부터 ‘초록바람’이라는 작은 환경모임에서 활동하면서 현대를 풀어갈 화두를 전통에서 찾으려고 전통건축과 마을을 공부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친환경적인 삶을 위한 생태건축, 생태마을을 우리의 전통적인 가옥과 마을 속에서 찾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의 전통한옥은 규모나 공간을 구성하는 방식에 있어 사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줍니다. 특히 구성원 수에 비해 너무 넓은 실내공간을 추구하는 현대인의 공간 활용과 달리 전통 한옥의 공간은 넓지 않지만 다양한 행위가 일어날 수 있고, 내부와 외부의 공간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는 구조입니다.

 외부에서 볼 때는 그 집의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고래등같은 기와집이라도 실제 면적을 따지면 그다지 큰 면적이 아닙니다. 그리고 마당을 중심으로 펼쳐진 배치는 사람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한옥이 가지는 규모의 적정성과 공간의 합리성은 양옥에서도 적용 가능하지만,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또한 우리의 전통마을은 이웃과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구조가 특징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부대끼면서 생기는 것이 마을의 활력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점은 외국에서 조성되는 생태마을, 공동체마을 등에서 잘 나타나는데, 정작 우리의 농촌마을에서는 사라지고 있기 때문에 한옥의 공간구성을 잘 활용하여 새로운 마을조성에 활용하려고 합니다.

최근의 농촌 주택의 경우 외형이나 공간구조에 있어 이국적인 형식의 전원주택을 선호하여 대체로 박스형태의 뾰족지붕을 가진 집이 다수를 차지합니다. 그래서 대안적으로 한옥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들을 구현해 보고자 직접  지어보기로 했습니다.

경북 울진이 고향인 전호상박사는 거의 대부분 도시 생활을 했습니다. 고향에 대한 미련이 많았지만 떠난 지 오래라 아는 사람도 없었고, 서울에서 너무 멀어 자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습니다. 또 아이들을 위해 도시의 아파트가 아닌 농촌지역에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노모가 텃밭을 일구며 살고, 자녀들이 방학 때면 찾아갈 수 있는 고향을 새롭게 만들 생각을 하다가, 강원도 횡성을 택했습니다. 횡성읍내에서도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한참 들어간 곳이 청일면이며 면소재지에서 또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를 이어가며 한참 산속으로 달려야 만날 수 있는 애고지 머우네골에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곳에 자신이 생각했던 생태적이고, 전통적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한옥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농촌에 짓고 있는 집, 특히 전원주택이라고 불리는 집들은 대부분 사각형 평면을 하고 있습니다. 현관을 들어가면 거실이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방, 주방, 화장실 등이 배치됩니다. 거실 한쪽에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천편일률적인 평면이고 집짓기 편한 구조입니다. 이런 집들은 전통 한옥이 가지고 있는 아늑한 마당공간을 확보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심리적으로 편안한 안쪽 공간이 없으며 모두 바깥을 향하게 돼 집 구조가 단순한 덩어리 형태로 외부공간에 대해 내부공간이 단절되게 보입니다. 이런 경우 집을 감싸는 담장이나 정원을 만들지 않으면 사방이 외부에 그대로 노출되는 구조입니다. 결국 건물 내부로 들어와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ㄱ’자, ‘ㄷ’자 형태로 지어진 전통한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마당안쪽 모서리 공간이 생기고, 안모서리 중심으로 앞마당은 건물들로 감싸지게 되어 안정되고, 아늑한 마당공간을 얻을 수 있어 사는 사람의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전호상박사가 한옥을 통해 얻고 싶은 것은 바로 이러한 공간이었고, 그것들을 직접 만들어내고 싶어 집짓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 집의 주요 개념은 복원과 재활용 그리고 수수함과 정갈함입니다. 구옥을 헐어 새가옥을 짓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그 집의 이력이 살아 있다는 의미가 있으며, 세월의 때와 향기가 남아 수수하고, 내부는 단순하면서 정갈하게 꾸미는 것입니다.

서울에서 헐린 한옥 2채의 목재와 기와, 석재 등을 구입해 머우네골로 옮겨 썩은 부분은 도려낸 후 보강하고, 모자라는 것들은 새로 구입해 안채와 사랑채 두동의 한옥을 짓고 있습니다. 990㎡ 면적의 부지에 안마당을 중심으로 ‘ㄱ’자형 안채는 뒤쪽으로 바짝 밀어 붙이고 한쪽 변으로는 ‘一’자형 사랑채를 앉혀 전체적으로 ‘ㄷ’자형 배치로 동남향(乾坐巽向)의 아늑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ㄷ’자 형태로 집을 펼쳐놓아 규모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99.2㎡입니다. 고작 30평 밖에 안 되는 면적이지만 대청에 안방과 사랑방, 누마루 등 있을 것은 다 있습니다. 71.66㎡은 안채는 거실격인 대청을 가운데 두고 방 3개와 주방&식당, 화장실 2개가 있고, 사랑채는 방 2개, 화장실, 누마루가 있으며 그리고 콘테이너를 이용한 창고가 있습니다.

방의 규모는 전통한옥의 크기 그대로 사용하여 오붓한 공간이 되게 하였고, 전화나 TV 등은 각 방마다 세간살이들을 수납할 수 있는 공간에 두어 수납공간의 문을 닫으면 단정하게 정돈된 정갈한 방만 남게 됩니다.

올 5월부터 집짓기를 시작해 7월 27일 상량을 했습니다. 현재 지붕과 벽체 등의 공사는 마무리 짓고 내부 마감 및 보일러 등 설비부분 공사, 마루공사 등을 남겨두고 있어 계획대로 진행이 된다면 입주는 한 달 후 쯤 가능하겠지만 변수는 있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기간은 늘어났고, 비용은 많이 추가되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제대로 된 기술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전호상박사는 이 집을 지으며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에 주변에 있는 기술자들을 수소문해 함께 일을 했습니다. 하지만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숙련도가 떨어졌고 집 짓기에 임하는 마음가짐도 미흡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책임감 없이 대충 마무리 하는 데 익숙한 그들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이 가장 힘든 일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약속대로 공사 진행이 되지 않아 시간은 흘러가고, 잘못된 것들을 다시 하면서 비용이 추가되었습니다.

진행 중인 한옥이 완성되고 나면 공동체와 생태적인 삶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머우네골을 ‘한옥골’로 만들어볼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다양하게 진화되고 있는 오늘에 지어지는 한옥을 자라나는 아이들이나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교육 자료로 활용하기도 하고, 농촌지역 경관과 한옥의 어우러짐을 연출해보려고 합니다. 그는 우리나라 전통 가옥이 절대 불편한 집이 아니며, 그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 집인지, 그렇게 모여 더불어 사는 마을이 얼마나 좋은 마을인지 보여주고 싶고, 그리고 확인도 해보고 싶어 합니다.

 [머우네골 한옥 창건 상량문]

집을 새로 짓거나 고쳐 지을 때 집 짓는 이유와 기원내용, 날짜, 시간 등을
적은 글을 상량문이라 합니다. 원래 상량대에 간략하게 붓글씨로 쓰지만
내용이 많을 경우에는 따로 상량문을 종이나 비단 등에 적어
장혀(한옥 지붕을 받치는 부재의 일종)에 홈을 파고 넣어 두었습니다.
상량을 올리는 날에는 성대한 상량고사를 지냈으며 이를 상량식이라고도
하였습니다. 머우네골 한옥을 지으며 집주인이 직접 지은 상량문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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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08년 7월 27일 미시(未時)에 백두대간 오대산의 지류인 태기산을
배산으로 굴이봉을 좌청룡으로 운무산과 발교산을 우백호로 수리봉을
안산으로 한 이 곳 청일면 유동리 애고지 머우네골 명당에 새롭게 정주지를 잡아 새집이 창건됨을 널리 알리옵니다.

새 가옥의 발원자는 전호상(田鎬相), 이수진(李秀珍)으로 일찍이 부모, 형제, 자녀를 위한 정주터와 가문의 새로운 고향을 만들고자 애쓴 바 그 인연이
이 곳 머우네골에 머물게 되도다.
이에 대대손손 그 뜻을 펼칠 것을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가옥은 서울에서 인연을 다한 두 채의 목재와 기와 그리고 석재를 이 곳
머우네골로 가져와 다시 말끔하게 단장하여 세우니 수 십년의 역사를 간직한 재목은 그 향과 자태가 새롭게 나타나도다.
이렇게 온고지신, 법고창신한 새 가옥은 우리 문화사에
새로운 의미가 될 지이다.

오늘 상량은 천신(天神), 지신(地神), 수신(水神) 모두의 음덕으로
이루어질 제 청명한 날씨와 무탈한 공정이 마지막까지 진행되길 바라옵니다.
또한 이 가옥은 가족간의 정감을 돋우는 살림집이 되게 하고, 행여 이 가옥에
머무는 모든 사람이 편안히 머물다 갈 수 있게 되길 바라옵니다.
이에 술과 음식을 올리나니 대자연과 더불어 삼가 흠향하길
기원 드리옵니다.
 
상향(尙饗)
 
서기 2008년 7월 27일 미시 입주상량


<제공=ok시골(www.oksigo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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