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66% “우린 2등 시민” 감정의 골 깊어져
전문가 “한국, 독일 전철 밟지 말아야” 충고
1989년 11월9일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독일 통일의 물꼬를 튼 데 그치지 않았다. 당시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동유럽 정부를 도미노처럼 무너뜨리며 대변혁을 이끌었다. 20년 전 거대한 역사의 해일을 겪은 독일과 동유럽의 통합·변화의 성장통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동서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채 1년도 안 돼 정치 통합을 이뤘다. 45년이나 분단됐던 독일의 통일이 그렇게 빨리 진행될 거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 통일의 완성은 동독 출신 여성 총리의 탄생이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내로라하는 서독 출신 정치인을 물리치고 2005년 총리가 돼 명실상부한 통일 독일의 지도자로 자리 잡았다.
경제 통합도 활발히 진행됐다. 3일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독일 정부는 동독 기업 지원금과 사회기반시설 재건, 복리후생 비용 등 통일 비용으로 그동안 1조2000억∼1조6000억유로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 1991년 서독의 43% 수준이던 동독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현재 71%로 확대됐다. 서독 기업에 비해 20%가량 낮은 인건비를 앞세운 동독 기업들은 2002년부터는 서독 기업보다 빠른 성장세를 기록했다. 지난해 세계 경기침체 피해도 서독보다 적었다. 외견상 성공적인 경제 통합이었다.
하지만 순조로워 보이던 통합작업은 지난 수년간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동서독 간 소득격차 해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멈춰섰다. 통일 후 수년 만에 서독 1인당 GDP의 70%까지 따라잡은 동독은 더 이상 격차를 줄이지 못했다. 동독 경제는 생각처럼 뜨겁게 달아오르지 못했고 200만명에 달하는 노동자가 서독으로 넘어갔다. 통일 직후 10%대였던 동독 실업률은 2008년 14.7%까지 상승했다. 같은 기간 서독은 6.2%에서 7.2%로 1%포인트 상승에 그쳤다.
동독 지역의 독일 전체 GDP 기여도는 10%대에 불과하다고 독일 주간지 슈피겔이 밝혔다. 메르켈 총리도 “동독 실업률이 서독의 2배인 것은 돌에 새긴 것처럼 굳어간다”며 경제 통합이 요원함을 시인했다.
독일 경제 통합 실패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꼽힌다. 우선 1990년 화폐통합의 실패다. 당시 정부는 암시장 환율이 10대 1인 동서독 마르크를 2대 1로 교환해 줬다. 이는 동독지역 소비를 부양했지만 동독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동독 기업 민영화도 실패작이었다. 동독 내 투자를 부추기려던 동독 기업 민영화에 서독 자본가들이 몰려들면서 동독 경제는 서독에 휘둘렸다. 설상가상으로 서독 노조가 동독 노동자 임금을 올리면서 동독 기업의 고용 축소는 가속화했다.
동서 빈부 격차는 정치적·감정적 분절로 표출되고 있다. 최근 선거에서 동서 지역감정이 확연히 드러난다. 통일 직후 동독 주민은 자신들을 독재에서 해방해 준 중도우파 기민당에 지지를 보냈다. 하지만 해가 갈수록 ‘부의 재분배’를 내건 좌파당 지지자가 늘어 좌파당은 이미 동독 내 제2당으로 올라섰다. 총선에서 서베를린 주민은 보수적인 기민·기사당 연합을, 동베를린 주민은 좌파·녹색당을 지지한다.
동서 주민 간 마음의 장벽은 더 큰 문제다. 여론조사 결과 동독 주민 3분의 2는 스스로 ‘2등 시민’이라는 자괴감에 빠져 있다. 서독 주민은 자신들의 부가 동독에 빠져나가는 게 불만이다. 지난 9월 포자르 연구소 설문 결과 독일 주민 7명 가운데 1명은 “베를린 장벽이 다시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답할 정도로 동서 감정의 골은 깊어졌다.
독일의 통일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독일 IWH 경제연구소의 우도 루드비크 연구원은 “분단국인 한국은 독일의 경제 통일 사례를 잘 연구해서 절대로 따라하지 말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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