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 빵 배급 줄 사라졌지만… “지금이 살기 더 팍팍해”

입력 : 2009-11-04 23:39:22 수정 : 2009-11-04 23:39:22

인쇄 메일 url 공유 - +

고도 성장 불구 빈부격차 커져 열등감 확산 “20년 전보다 지금이 더 만족스럽다. 그러나 살기는 더 팍팍해졌다.”

3일 AP통신 보도에 따르면 사회주의 몰락 전과 현재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동유럽 국민들의 대답은 모순적이었다. 지금 동유럽 국민들이 겪고 있는 혼란을 가장 잘 드러낸 답변이기도 하다.

베를린 장벽 붕괴로 촉발된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은 외적인 면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지금 체코와 헝가리, 폴란드, 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주요 국가에선 더 이상 옛 공산체제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빵 한 조각을 배급받기 위해 길게 줄을 서던 모습이나 한산한 도로를 달리는 낡은 러시아제 자동차, 진열장이 텅텅 빈 상점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대신 프라하나 부다페스트 등 동유럽의 주요 도시에선 루이뷔통이나 구찌 등 명품 매장을 흔하게 볼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동유럽 국가들이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앞다퉈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덕분이다. 경제지표만 봐도 동유럽의 경제성장은 엄청나다. 체코의 경우 1997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EU 27개국 평균 73%에서 지난해 80%까지 상승했다. 완만한 성장세를 보이는 서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의 경제 성장이다.

문제는 동유럽 국민들에게 경제성장의 열매가 골고루 나눠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성장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부동산 가격 급등, 커지는 빈부 격차, 사회안전망 축소 등은 동유럽 국민들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들썩이면서 빌딩, 주택 등을 보유한 부자들이 엄청난 부를 쌓는 동안 서민들은 오르는 물가와 정체된 퇴직연금액을 비교하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이는 빈부 격차를 나타내는 지니계수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4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헝가리의 지니계수는 0.273(1990년)에서 0.291(2005년)로 높아졌다. 체코는 0.232(1990년)에서 0.268(2005년), 폴란드는 0.316(2000년)에서 0.372(2005년)로 올라갔다. 지니계수는 보통 0.350 이상이 되면 소득분배가 매우 불평등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이 기준으로 볼 때 일부 동유럽 국가는 과거 공산주의 체제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한 셈이다.

AP통신의 설문조사에서 “현재 삶에 만족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응답한 폴란드 국민은 1991년 12%에서 올해 44%로 급등했다. 1991년 당시 삶의 만족도가 각각 4, 8%에 불과했던 불가리아와 헝가리는 올해 15%까지 상승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동유럽 국민들의 만족도가 올랐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와 현재를 비교할 때 어느 쪽이 살기 더 좋으냐”는 질문에 체코와 폴란드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 국민들이 “지금이 살기 더 힘들다”고 답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경우 “살기 힘들어졌다”는 응답자가 각각 62%, 45%에 달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먹고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됐지만 빈부 격차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어 동유럽인들이 혼란을 느끼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풍연 기자 jay24@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슈화 '깜찍한 볼하트'
  • 아이들 미연 '깜찍한 볼하트'
  • 이민정 '반가운 손인사'
  • 이즈나 정세비 '빛나는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