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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매사냥은 점차 자취를 감춰 현재 우리나라에선 박용순 박찬유 응사 두 명만이 전통 매사냥의 명맥을 잇고 있다. 사진은 아버지 박용순 응사에게 매사냥을 전수받겠다고 나선 대학생 박상원씨. |
상원씨의 아버지는 대전 동구 이사동에 ‘고려응방’이란 한국전통매사냥보전회를 세우고 낮에는 송골매, 참매 등을 훈련시키며, 밤에는 옛 문헌속의 매사냥을 연구하는 대전시 무형문화재 제8호 박용순 응사다. 평생을 매사냥에 빠져 가정이라곤 돌볼 여력도 없었는데 아직까지 매사냥 이수자 하나 못 냈다. 매사냥에 관심이 있어도 개인이 매를 소유하거나 포획하는 것이 금지돼 배워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그런 일을 40년이나 한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라는 생각에 상원씨는 입대 영장을 받은 날 매사냥을 이수받겠다고 했다. 처음엔 매를 손등에 올리는 것조차 힘들어 쳐다만 봤다. 밤에는 함께 잠을 잔다. 매를 길들이는 응사는 밤이나 낮이나 매와 떨어져서는 안 되고, 사람 많은 곳에 매를 데리고 나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줘야 한다. 참매 똥도 치워야하고, 참매 먹이가 되는 메추라기도 키워야 한다. 조금만 소홀하게 해도 아버지의 긴 잔소리가 이어진다. 훈련의 강도는 날마다 세진다. 때때로 참매를 데리고 시내에도 데리고 나간다. 천하의 고집쟁이에 오만한 매를 길들여 꿩사냥을 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그렇게 100일이 흐른 뒤 상원씨는 야산 가장 높은 곳을 찾아 친구가 된 매를 보내준다. 그리고 상원씨의 얼굴에는 만감이 교차한다.
김수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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