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들 인공·자연미 결합해 화려
다양한 종파… 70∼80%가 대처승 종교학자들은 불교의 역사를 종종 이단의 역사라고 칭하기도 한다. 그만큼 토속신앙을 배척하기보다 대승적으로 수용해 왔기 때문이다. 한국사찰의 산신각이나 칠성각이 대표적 예라 할 수 있다. 일본에서 신도(神道)와의 공존방식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일본에서 신도와 불교가 서로 배척하지 않고 수용하는 모습은 ‘신불습합(神佛習合)’이라는 말로 정의돼 왔다.
일본 사찰은 외형에서부터 일본적 색채를 물씬 풍긴다. 지난 21∼25일 한국불교 33관음성지 연수단과 함께 돌아본 규슈·시코쿠 지역의 사찰은 자연과 조상신 숭배를 기본으로 하는 일본의 토속신앙 신도의 흔적을 강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사찰 한쪽에 신사(神社)가 세워져 있고, 신사 안에 불단이 모셔져 있는 게 흔한 풍경이었다. 특히 신도에서 사용하는 하늘 천(天)자 모양의 붉은 문인 도리이(鳥居)가 사찰마다 설치된 것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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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 한쪽에 신사가 모셔져 있는 센뇨지 다이히오인. |
일본인들에겐 탄생의 순간은 신사에서 축복을 받으며, 죽음과 같은 큰 고비는 사찰에서 기원을 한다는 전통이 전해온다. 한국불교 33관음성지 연수단의 첫 방문지인 규슈 후쿠오카시에 있는 33관음성지 29번째 사찰 센뇨지 다이히오인(千如寺大悲王院). 현해탄이 내려다보이는, 후쿠오카 최북단 사찰인 이곳은 두 차례 몽골 침략(1274년, 1281년) 때 일본인들 사이에 최고 기도 사찰로 통했다. 해발 450m의 산 중턱에 300개 승방이 있었던 곳이다. 불상 수십개가 모셔진 이곳의 보물은 1000년 역사의 ‘십일면 목조 천수관음 입상’이었다. 이 관음상 앞에 모여 기도를 올렸던 일본인들은 관음보살상 덕에 손 한번 쓰지 않고 태풍을 불러와 몽골을 물리쳤다고 믿는다. 현재는 평화를 기원하는 사찰로 순례객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전쟁뿐 아니라 지진, 화산 등 일상적으로 천재지변에 노출된 일본인에게 자연은 경외의 대상, 죽음의 공포 그 자체였다. 나무, 돌 등 모든 자연에 신이 깃들여 있다고 믿는 “신도에는 800만의 신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에서 신도와 불교는 “신도의 신이라는 것도 본래는 부처님이고, 일본의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신도의 신으로 화현한 것”이며 “신도와 불교는 둘이 아니다”는 사상적 체계를 만들며 서로 습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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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코쿠 33관음성지의 사찰 다이쇼인에서 바라본 이쓰쿠시마 신사(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대처승은 일본 불교가 수행과는 거리가 멀며 신앙의 진지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한 이유다. 하지만 대처승의 역사적 기원은 “살아 있는 인간 안에서 부처가 나와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이었다. 일본에서 유학한 동화사 해월 스님은 “끝없이 권력의 주변을 맴돈 일본 불교문화의 이면에서 역사의 힘을 민중에게 돌리면서 생겨난 게 대처승 제도”라면서 “나 혼자 붓다가 된다면 의미가 없으며 내 아들을 보살을 만들겠다는 사상으로 중생 속의 부처를 적극적 제도로서 끌어안았다”고 설명했다.
시대정신에 민감한 일본 사찰은 화려한 공연장이자 전시장이기도 했다. 법회가 열리자 화려한 유색 승복을 걸친 일본 스님들은 북과 징 소리에 맞춰 반야심경을 외우는 가운데 의례가 절정에 오르면 나무벽장 문이 서서히 열리며 거대한 천수관음상이 형체를 드러냈다. 사찰 뒤쪽으로 돌아가자 수십개의 오래된 불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센뇨지의 마음 심(心)자 모양으로 조성된 연못, 히로시마의 붓쓰지(佛通寺)의 우주를 형상화한 모래 정원 등은 자연 그대로의 한국 사찰과 달리 인공과 자연미가 결합된 명상 공간이다. 일본의 절집에서는 점도 본다. 해월 스님은 “일본 불교를 자본주의화된 불교라고 폄훼하는 것은 단견이며, 일본에서도 다양한 수행체계와 방법론이 공존한다”면서 “한국불교가 자본주의 속에서 시대정신과 불교를 어떻게 융화할 것인가 고민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후쿠오카·히로시마=글·사진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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