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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화된 종교, 종교화된 정치권력

입력 : 2009-08-28 21:59:37 수정 : 2009-08-28 21:5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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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신정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
종교적 열정이 정치권력을 획득할 때 인류는 또 다른 비극
사산된 신―종교는 왜 정치를 욕망하는가/마크 릴라 지음/마리 오 옮김/바다출판사/1만7000원

대부분의 문명, 대부분의 시대, 대부분의 지역에서 인간은 정치적 문제를 숙고할 때 신에 의존함으로써 답을 찾아 왔다. 정치는 인간이 아닌 신의 문제였으며, 종교적 결정이 세속 정치를 좌우했다. 특히 서구 사회에서는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십자군전쟁, 이교도에 대한 잔혹한 탄압, 식민지 개척 이후의 노예제까지 모든 정치적 결정은 신의 뜻에 따른 것이었고, 따라서 그 자체로 정당한 행위였다.

◇9·11 뉴욕 테러는 어떤 종교든 원리주의에 접어들면 걷잡을 수 없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교훈을 심어줬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심지어 20세기 초 신교 목사들과 신학자들로 구성된 독일 기독교인들은 “그리스도가 아돌프 히틀러를 통해 우리에게 왔다. 그의 권력과 정직함, 신앙과 이상을 통해 구세주가 우리를 발견했다”고 선전하며 히틀러와 나치주의를 지지하고 나서 제1, 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싹틔웠다. 당시 독일 기독인들은 기독교 교리에서 유대교적 요소를 제거하고, 복음을 보다 단정적이고 민족적인 측면에서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사상적 빌미를 제공했다.

마크 릴라 지음/마리 오 옮김/바다출판사/1만7000원
정치철학자인 마크 릴리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가 집필한 ‘사산된 신’(원제 The Stillborn God)은 서구 사회의 정치화된 종교, 종교화된 정치권력의 역사를 낱낱이 파헤쳐 뉴욕타임스의 ‘올해의 책’(2007)에 선정된 책이다.

“미국이 기독교 근본주의자를 중심으로 신정국가가 되어 가고 있다”는 저자의 메시지는 도발적이었다. 특히 이라크 전쟁을 단순히 ‘이슬람 과격파’로부터 미국 본토를 지키기 위해서라고만 믿고 있던 사람들에겐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릴리는 조지 W 부시 정권의 탄생과 그의 재선으로 미국 내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의 입지는 강화되었고, 그들의 신앙과 신념이 국가 정책을 좌우하면서 미국의 정치는 종교적 열정에 휘둘리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20세기가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 계급과 사회정의, 민족해방과 국가정체성 등과 같은 세속 이데올로기 투쟁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종교적 신념에 따른 투쟁이 사회의 중심이 되었다는 것. 21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어난 9·11테러에서 미국은 물론 동유럽과 호주에서 다시 등장하고 있는 인종주의적 갈등,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의 잇단 테러와 미국의 이라크 전쟁, 제노포비아(외국인혐오)와 인종주의의 부활까지 21세기의 사회적·정치적 분쟁의 기저에는 종교적 순혈주의와 배타성이 있다는 것이다.

◇아돌프 히틀러. 독일 기독인들은 한때 그를 메시아로 추앙했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역사적으로 인간이 저지르는 악행에 대한 가장 확실한 면죄부가 되어 왔다. 종교는 전쟁에 정통성과 정당성을 부여하고, 살생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 주었다. 따라서 정치가 종교에 사로잡힐 경우 또 어떤 비극이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결국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잘못된 종교적 열정이 현실적인 정치권력을 획득할 때, 인류는 또 다른 비극의 시대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경고다.

책은 16세기 계몽주의자들로부터 시작한다. 로크와 흄, 홉스 등은 인간의 본성과 정치의 기원에 대해 탐구한 결과 종교와 정치의 명백한 분리만이 세속 정치의 안정성을 꾀할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이들은 종교를 신의 선물이 아닌 인간의 발명품으로 바라봄으로써, 정치를 신의 계시에 의지하지 않고 오로지 인간적인 관점에서만 생각하려고 했다. 이후 인류는 종교와 정치 문제를 구분하는 법을 배웠으며, 광신주의는 사라졌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그리고 9·11 테러까지…. 오늘날 인류는 다시 16세기의 투쟁을 반복해야 할 시기에 이르렀다. 종교적 열정이 다시 세계 정치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로 불렸던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루소와 칸트 역시 기독교의 계시를 부인했고, 종교와 이성의 근원으로 인간의 정신을 강조했다. 그러나 루소는 ‘에밀’에서 종교의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측면을 드러냈다. 즉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빛나는 내면의 빛과 양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행복의 조건이며, 종교가 바로 그 개인과 사회의 도덕성을 계발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칸트는 기독교의 정통 교리는 부인하면서도 종교와 인간은 떨어질 수 없으며, 바르게만 개혁된다면 기독교야말로 인간의 도덕성 향상에 가장 적합한 종교라는 결론을 내린다. 특히 칸트는 행복을 추구하는 이성적 인간은 누구나 ‘최고의 선’을 추구할 것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신의 존재와 인간 영혼의 불멸성이라는 두 가지 공리를 모두 인정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따라서 ‘최고의 선’이 개인의 목표뿐 아니라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함으로써 칸트는 종교를 통한 사회적·집단적 도덕 개혁의 필요성을 주장한 셈이었다. 결국 칸트는 종교를 인간적 현상으로 바라보면서도 종교가 바람직한 사회를 건설하는 데 공헌할 수 있다고 봄으로써 종교를 다시 정치에 접목시키고 말았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 맞선 이슬람 원리주의자 빈 라덴.
뒤이어 등장한 헤겔은 신교가 ‘절대지’라는 인간 지식의 절정에 도달했으며, 독일은 신교 중심의 도덕 생활을 통해 인류의 화합을 달성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인간 정신과 인간적 제도를 신성화함으로써 근대 부르주아 체제를 찬양하고 악을 정당화함으로써 나치주의와 공산주의에 바탕을 제공한 셈이다.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와 다비트 슈트라우스 등을 위시한 이들 자유주의 신학자는 너무 쉽게 인간 사회가 진보적이라고 가정했고, 광적인 종교심이 더 이상 근대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들은 성서에 대한 비판적 접근과 예수의 신성에 대한 부정은 유지했지만, 기독교 복음의 도덕적 메시지는 합리화했고, 이를 근대 정치와 문화에 적용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 독일의 의도와 신의 의도는 같다는 전제 아래 독일의 전쟁을 지지했다.

그 결과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의 재앙으로 자유주의 신학은 그들이 찬양하던 부르주아 사회와 함께 무너지고, 그들이 꿈꾸었던 신은 ‘사산된 신’임이 드러나며 20세기 최악의 재앙으로 이어지고 말았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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