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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다임 전환', 한반도정세에 미칠 영향은

입력 : 2009-08-23 14:41:28 수정 : 2009-08-23 14:4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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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화적 대처'→'원칙적 대응'..北 반응 주목
관련국 공조강화.지향점 구축 과정도 병행해야
"패러다임의 전환"

이명박 대통령이 23일 북한의 특사조문단을 만난 뒤 이번 면담이 성사되기까지 남북 간에 벌인 치열한 신경전의 본질을 정부 고위소식통은 이렇게 표현했다.

남북관계가 동족개념을 바탕으로 한 특수한 관계이긴 하지만 국제적인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남북관계도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는 인식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다.

쉽게 말해 두차례의 핵실험을 한 북한이라는 상대를 과거 정권처럼 '유화적으로' 대처하기 보다는 핵을 포기할 수 있도록 '원칙적으로' 대응할 것이며, 북한도 이런 달라진 패턴에 응해야 한다는 주문인 셈이다.

정부의 달라진 모습은 북측 조문단이 청와대를 예방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드러난다.

정부는 '통민봉관'식의 접근자세를 보이며 서울에 나타난 북한 조문단에 대해 '공식절차'를 요구하며 '청와대 예방'에 대한 확답을 하지 않았고 결국 북측 조문단은 하루를 더 체류해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실세 측근인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대남 총책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김정일의 메시지'를 강조하며 청와대 예방을 요구했다는 저간의 과정을 감안할 때 과거같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일각에서 북측 조문단이 '발끈'해서 서울을 떠날 것이라고 걱정했지만 정부의 기류는 오히려 더 강경해졌다. 당초 북측 조문단은 22일 오후 2시에 서울을 떠나기로 했었다.

그런데 북측은 기다렸고 결국 23일 오전 이명박 대통령이 '다른나라 조문사절'을 접견하는 과정의 첫번째 일정으로 청와대를 방문할 수 있었다.

정부는 또 청와대 예방이 끝난 뒤에도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가 있다는 사실과 이 대통령이 북측 조문단에 '우리 정부의 일관되고 확고한 대북원칙을 설명한 뒤 이를 김 위원장에게 전달해달라'고 당부했음을 밝혔다.

'특사조문단', 나아가 남북관계를 바라보는 현 정부의 시각이 그대로 녹아있고 이는 곧 현실의 영역에서 대북 정책으로 제시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북한의 대응에 관심이 집중된다.

일단 북측 조문단장인 김기남 비서는 서울을 떠나며 "좋은 기분으로 간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북한측이 한국측이 제시한 '패러다임의 전환'을 좋은 쪽으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반대의 방향으로 반발할지 더 두고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북한측이 조문단 파견 전부터 보여준 연쇄적인 유화 제스처가 일관된 전술적 고려에서 이뤄졌다면 이번 '서울에서의 경험'에도 불구하고 대남 유화책을 앞으로도 더 구사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의 전술적 고려라면 '미국과의 담판'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봐야한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의 '담대한 승부'를 염두에 둘 때 대남 유화책을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2000년 가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조명록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의 평양-워싱턴 교차 방문과 미북 코뮈니케 발표로 이어지는 북미 관계정상화 국면에 앞선 그해 6월 북한은 '김대중-김정일 정상회담'을 선택했다.

따라서 오바마 행정부와의 담판을 추진하려는 북한측이 그에 앞선 주변 여건 정비 차원에서 남북관계의 개선을 도모하기로 했다면 형식적이나마 '패러다임의 전환'을 수용할 가능성을 배재하지 못한다는게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오히려 '김정일 메시지'에 이은 이명박 대통령의 '당부'를 적극적으로 해석해 남북 고위급 접촉이 빠른 시일내 재개되거나 '비핵화와 관련된 조치'의 일부를 실천에 옮길 가능성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북한의 태도를 결정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미국의 행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미 '비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북한측에 관계정상화와 경제.에너지 지원, 평화체제 문제를 망라하는 '포괄적 패키지'를 제공할 뜻을 공식화한 바 있다.

최근에는 '비가역적 비핵화 조치' 요구를 '정치적 약속', 말하자면 '비핵화의 의지 천명'으로 수준을 낮추는 기류가 확연해지고 있다.

게다가 평양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통해 김정일 위원장은 북한이 원하는 메시지를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달한 상태다.

현재 미국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 재개 문제를 놓고 6자회담 틀내에서 실현하기 위한 다각적인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북한의 가시적인 변화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결의에 바탕을 둔 제재와 압박을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가겠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북한측이 미국을 향한 우호적 제스처를 구체화하면서 '더 높은 수준'의 협상을 요구할 경우 대통령 취임전부터 '과감하고도 직접적인 협상'을 하겠다고 나선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과의 실질적인 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그 형식은 6자회담의 틀을 갖출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정권교체를 앞둔 일본의 변수도 감안해야 한다. 북한에 대한 강경책을 고수했던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정권교체가 이뤄질 경우 북일 관계가 급격하게 풀릴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보면 우리 정부가 패러다임의 전환을 강조하고 있는 것과 상관없이 한반도 주변 정세의 변화가 과거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문가들은 이 대목에서 정부가 강조하는 '패러다임'의 의미를 짚고 싶어한다. 제64주년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언제, 어떤 수준에서든 남북간의 모든 문제에 대해 대화와 협력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한 것에 방점이 찍혀있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와 달리진 원칙'을 강조하려는 것인지부터 분명히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칫 형식적인 변화에 치중하다 북한을 상대하는 미국과 일본, 중국 등 주변국들의 정책과 지향점 전환을 간과할 가능성은 없는지 냉철하게 성찰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번 북측 조문단 서울방문을 통해 우리의 달라진 모습을 북한에 분명히 각인시킨 것은 사실"이라면서 "하지만 냉정하게 볼 때 한반도 정세 변화라는 본질적 측면에서 보면 어쩌면 우리 정부의 대북 인식은 큰 변수가 아닐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달라진 패러다임의 원칙은 북한에만 적용되어서는 안 되며 미국을 비롯한 관련국과의 공조 강화는 물론 정부내 의견수렴 과정, 그리고 한국사회의 공통된 지향점을 도출해내는 과정에도 함께 적용돼야 진정한 의미의 전환을 실현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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