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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일만이천봉 끝자락 구선봉 손에 잡힐 듯

입력 : 2009-08-21 03:12:33 수정 : 2009-08-21 03:1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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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도 고성
가을을 논하기에는 때이른 감이 있다. 20일 전후로 일부 해수욕장도 폐장에 들어갈 정도로 시간은 흐르고 있지만, 햇살은 여전하다. 나그네의 몸과 마음에 여유를 불어넣는 것은 뜨거운 여름 햇살보다는 온기가 가득한 초가을 날씨다. 가을은 북녘 땅에서 먼저 알려준다. 언제부터인가 남북의 통로와 창문이 닫혀 있지만, 가을은 주저 없이 남녘으로 달려올 것이다. 가을을 재촉하는 바람과 함께 남북관계에도 변화의 기류가 스멀스멀 묻어나오길 기대해 본다.

◇지난 14일 개관한 ‘DMZ 박물관’은 분단 한국의 아픔과 교훈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침 이달 중순 강원 고성군 민통선 안에 ‘DMZ 박물관’이 개관했다. DMZ(비무장지대)는 우리에게 분단의 상처이기도 하지만, 생명 복원의 현장이기도 하다. 반세기 넘게 민간인의 발길이 끊기면서 전쟁으로 파괴된 자연이 그 특유의 생명력으로 복원 과정을 거치고 있는 곳이다. 이를 기념해 ‘분단을 넘어 평화와 통일로’ 향한다는 주제어로 개관된 게 DMZ 박물관이다. 여러 전시 중 개관식 특별기획 행사로 마련된 6·25전쟁 삐라전과 DMZ 자연생태 사진미술 공모전이 눈길을 끈다. 당시 상황을 드러내는 삐라(전단) 내용 하나다. “귀한 목숨을 구하려면 유엔 쪽으로나 후방으로 도망하라! 지금 곧! 내일이면 늦다!”

20세기 지구가 경험한 가장 처절한 냉전의 유적인 DMZ와 그 주변을 둘러보려는 발길은 아직 본격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지 않다. DMZ 박물관을 찾는 이들도 많지는 않다. DMZ 박물관 개관에 힘을 합한 강원도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생각은 남다르다. 박물관을 통해 암울한 역사를 기억하고 평화와 화합의 미래까지 기대할 수 있다고 여긴다. 민통선 내에 체험과 관광지로서 가진 매력이 크다는 생각에서다.

◇강원 고성전망대에서 바라보는 8월의 북한 땅이 맑고 시원하다. 전망대의 망원경을 버리고, 두 발과 두 눈으로 북한 땅 구석구석을 온전히 볼 날을 기대해 본다.
DMZ 박물관을 뒤로하고 고성군 최북단에 위치한 통일전망대에 올랐다. 6·25전쟁 당시 ‘351 고지 전투’에서 숨진 장병들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이곳 통일전망대는 지금 두 이미지를 겹치고 있다. 안보관광지와 금강산으로 가는 관광지로서 이미지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의 생각도 크게 대별된다. 옛 생각에 빠진 이들과 금강산 관광길이 닫힌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로.

연간 100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한다는 통일전망대 주변의 하늘이 방문하던 날 유독 맑았다. 금강산 일만이천봉 마지막 봉우리인 구선봉이 보인다. 그 아래 선녀와 나무꾼의 전설을 지닌 감호도 모습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렇게 선명하게 북한 땅이 보이는데,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발을 들여놓을 수도 없다니. 분단의 설움이나 망향의 아픔보다는 통일과 재회의 기쁨이 더 힘을 발휘할 날을 기대해 본다.

시선을 동해로 돌린다. ‘바다의 금강’이라는 해금강에 앞서 동해선 남북연결도로가 시선을 먼저 빼앗는다. 해안선과 나란히 남북으로 뻗어 있는 이 길은 2004년 12월 개통된 이래 이즈음 가장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니 무료할 정도다. 남북을 오가는 버스와 트럭이 도로를 가득 채워야 하지만, 남북연결도로는 한동안 그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통일전망대에 올라서면 해금강과 구선봉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관광객이 많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으면 어찌되었건 대한민국 최북단에서 남긴 추억과 아픔이 된다. 해금강을 바라보던 50대 관광객이 통일 염원과 여행자의 낭만을 동시에 풀어놓는다. “이곳 전망대에서 저기 저 북쪽의 감호 앞까지 낚시꾼들이 자리를 잡아야 하는데…. 사진으로도 환상적이고, 즐거움으로도 최고일 거야. 통일된 땅에서 즐기는 재미이니까.”

고성을 찾는 여행 개념은 ‘분단’이어서는 안 된다. 이보다는 ‘교류’와 ‘통일’이 돼야 하지 않을까. 한때 희망을 불어넣었던 현내면 저진리의 제진역을 찾았다. 2006년 준공돼 이듬해 북한의 감호역을 연결하는 동해선 시험열차가 운행된 곳이다. 남쪽의 제진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7㎞, 북쪽의 군사분계선에서 감호·삼일포·금강산역까지 18.5㎞ 구간이 삼천리 금수강산을 연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한때 꽤 강렬했었다.

◇오랫동안 그 기능을 잃어버린 고성 제진역의 동해선철도 남북출입사무소.
그 희망과 믿음의 출발지였던 제진역이 오랫동안 좌절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남북출입사무소의 자물쇠는 굳게 잠겨 있고 철로는 닫혀 있다. 금강산에서 운행되다 철수한 버스 등 차들은 ‘눈치 없이’ 제진역 인근 공터를 메우고 있다. 오죽했으면 14일 제진역을 방문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까지 “철로가 다 녹슬었네” 하며 안타까워했을까.

이곳에서는 ‘통일 희망’의 좌절보다도 더 절실한 게 어려워진 경제상황이다. 북한군 초병의 관광객 총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길이 1년 넘게 막혀 거리에 활기가 사라졌다. ‘통일로 가는 길’이라는 도로의 바위글은 역설의 비애감마저 풍기고 있었다. 인적이 끊기고 도로가 제 기능을 못하고 있지만,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 이 길이 남북출입사무소와 통일전망대를 배경으로 남북을 이어주는 길로 다시 제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이즈음의 상황에 ‘고성군’과 고성 주민들로서는 당황할 수 있다. 남북이 서로에게 적의를 여지없이 드러냈던 냉전 시대에는 ‘안보관광지’로 이름을 알리다가, 몇 년 전부터는 남북관광 출발지로서 자부심을 느꼈던 곳이어서다. 이제 고성군은 DMZ 관광과 청정 동해안 이미지로 관광객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그러다 보면 아직 흐릿한 남북의 창이 활짝 열릴 날도 머지않을 것이다. 8월 중순 고성 지역을 환하게 드러나게 한 날씨처럼, 남북이 서로 환하게 박장대소할 그날이 말이다.

고성=글 박종현, 사진 지차수 선임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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