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계은퇴 후 복귀 대권 꿈 이뤄… 퇴임 후에도 활동 활발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86년 인생은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고스란히 투영된 대서사시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두 가치가 각축하며 숨가쁘게 내달리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의 기수였다면 야당 지도자인 그는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산업화를 명분 삼은 독재 체제에서 김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이루려 저항했고, 그 때문에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는 등 고난의 세월을 보내야 했다. 모진 풍상을 이겨내고 꽃망울을 터뜨리는 ‘인동초’란 별명이 생겨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별명처럼 그는 환란이 닥친 1997년 대선에서 마침내 승리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햇볕정책으로 남북관계를 평화 분위기로 전환하는 등 일대 변화를 몰고 왔다. 그러나 보수세력의 ‘퍼주기 의혹 제기’ 등 색깔 공세는 집요했고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으면서 햇볕정책 논란은 오히려 격화했다.
◆출생과 정치입문=DJ는 1924년 1월6일 전남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에서 아버지 김운식씨와 어머니 장수금씨 사이의 4남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호인 ‘후광’도 동네 이름을 딴 것이다.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 목포상업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할 만큼 두뇌가 명석했다. 졸업 후 사업으로 큰 돈을 벌기도 했다. 첫 부인 차용애씨를 만나 결혼하게 된 것도 이 즈음이다. 1945년 해방 직후 건국준비위원회에 참여했지만 좌익계열이 주도권을 잡자 곧바로 탈퇴했다. 그러나 이는 후일 두고두고 DJ의 발목을 잡는 ‘색깔론’의 빌미가 됐다.
DJ의 정치참여는 1952년 ‘부산 정치파동’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이후 3·4·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지만 연거푸 낙선하고 말았다. 세 번의 낙선으로 가산은 탕진됐고 부인 차씨마저 1960년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났다. 시름에 빠져 있다가 ‘평생의 동지’ 이희호 여사를 만난 건 2년 뒤인 1962년이었다. DJ는 6대 총선에서 마침내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탁월한 논리와 달변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1차 대선도전=DJ는 ‘민주당 대변인’ 시절부터 박정희 정권의 눈엣가시였다. 박 대통령은 1967년 7대 총선에서 DJ의 낙선을 위해 온갖 공작을 지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69년 공화당이 3선 개헌안을 통과시키고 1970년이 되자 정치권은 7대 대통령선거 체제에 돌입했다. DJ는 ‘40대 기수론’을 내걸고 김영삼(YS), 이철승씨와 경합을 벌인 끝에 46세의 나이로 제1야당 신민당 대통령후보로 선출되는 파란을 연출했다. 활력 넘치는 선거운동과 파격적인 선거공약으로 돌풍을 일으켰으나 공화당 박정희 후보에게 94만7000표차로 석패하고 말았다.
◆고난의 시기=박 정권 최대 위협요인으로 부상한 DJ는 이후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1971년 8대 총선 지원유세 과정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해 죽을 고비를 맞기도 했다. 또 1972년 유신개헌 당시 일본 체류 중 도쿄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돼 바다에 수장될 뻔한 위기도 맞았다.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 전신)가 꾸민 일로 정권 차원의 정적 제거 기도였다.
1979년 10·26사건으로 복권돼 정치활동을 재개했지만 1980년 5월 17일 또다시 신군부에 의해 구속되면서 더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신군부는 DJ에게 내란음모죄, 반국가수괴죄로 사형을 선고했던 것. 다행히 미국 정부의 압력으로 사형을 면하고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망명생활 중 신민당 김영삼 총재와 함께 민추협을 발족했고, 1985년 입국 뒤 치러진 제12대 총선에서 ‘신민당 돌풍’을 일으키며 정국의 중심인물로 복귀했다.
◆2·3차 대선 도전, 그리고 정계은퇴=1987년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은 이뤄졌지만 DJ는 그해 대선에서 YS와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했다. 호남을 기반으로 독자출마하는 승부수를 던진 것. 그러나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YS와 함께 야권분열 책임론에 시달렸다. 이듬해 1988년 13대 총선에서 평민당을 제1야당으로 만들어 여소야대 정국을 주도했지만 곧이어 민정, 민주, 공화의 3당 합당으로 거대 여당에 포위되고 말았다. 이후 야권을 재정비한 뒤 1992년 대권 3수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또다시 낙선해 참모들과 지지자들의 통곡을 뒤로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정계복귀, 그리고 대통령 당선=정계를 떠난 DJ는 1993년 1월 영국으로 출국해 케임브리지대 객원교수로서 통일문제 연구에 매진했다. 이를 토대로 귀국 후 아시아태평양평화재단을 설립했다. 이후 김영삼 정부의 실정이 되풀이되자 정계복귀를 결행하여 1995년 국민회의를 창당하고 이듬해 총선을 진두지휘했지만 79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러나 4번째 실패는 없었다. DJ는 ‘충청권 맹주’였던 자민련 김종필 명예총재와 연대해 충청과 호남을 한데 묶고 구여권 인사들과 군출신을 대거 영입해 색깔시비도 차단했다. 무엇보다 IMF 환란 속에서 ‘준비된 대통령’으로서 급부상해 결국 ‘4수’ 끝에 꿈을 이뤘다. 헌정사상 최초의 여야 정권교체였다.
◆국민의 정부 출범과 남북 정상회담=당선의 기쁨을 누릴 여유는 없었다. DJ는 당선 다음 날부터 외자유치를 위해 뛰어다니는 등 ‘6·25 이후 최대 국난’인 IMF 환란과 싸워야 했다. 국민은 자발적으로 ‘금모으기 운동’을 벌이는 등 고통분담에 동참했고, 정부 역시 금융·기업·공공부문·노사 4대 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해 1년 반 만에 외환위기를 극복해내는 기적을 이뤘다.
재임 동안 남북문제에 가장 큰 열정을 쏟았다. 평화공존·평화교류·평화통일이라는 대북 3원칙을 내걸고 임기 내내 ‘햇볕정책’을 펼쳤고, 2000년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탄생한 ‘6·15공동선언’으로 남북관계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고,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등으로 이어지며 한반도 화해·협력의 물꼬를 텄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하지만 소수정권의 한계 탓에 임기 내내 정치 불안정은 끊이지 않았다. 임기 말 터져나온 두 아들과 측근의 비리도 국정운영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한국인 최초 노벨평화상 수상=DJ는 재임 중인 2000년 생애 14번째로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랐다. 그해 노벨평화상 부문엔 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을 비롯한 115명, 35개 단체가 몰려 사상 최대 경쟁률을 기록했다. 하지만 노벨상위원회는 그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민주주의와 인권, 한반도 평화에 기여한 점이 높이 평가돼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 것이다
◆시민으로 돌아가다=2003년 2월 DJ는 ‘위대한 국민에의 헌사’라는 대국민 퇴임사를 낭독하고 청와대를 떠났다. 시민들의 환호 속에 동교동 사저로 돌아온 그는 ‘시민 김대중’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답게 전 세계를 돌며 인권과 남북관계에 대한 강연 및 연설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고, 때때로 국가 원로로서 정치권에 ‘훈수’를 두기도 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발언 수위는 점점 높아졌다. 지난해부터 정국을 ‘민주주의, 남북관계, 서민경제의 위기’로 규정하고 현 정부에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를 쏟아냈다. 민주당엔 민주평화개혁세력의 통합도 주문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DJ에게 육체적·심리적으로 커다란 충격이자 시련이었다. DJ는 “내 몸의 반쪽이 무너져내리는 심정”이라고 비통함을 전했다. 노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휠체어에 앉아 오열하던 모습은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병색이 급속히 악화된 DJ는 2009년 8월18일 결국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박진우·양원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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