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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야에 묻힌 선비 계곡에 정자 짓고… 안빈낙도의 삶

입력 : 2009-07-30 17:23:17 수정 : 2009-07-30 17: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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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묵계서원 옆 만휴정, 첫손 꼽히는 ‘여름 비경’
기회만 되면 바다로, 계곡으로 떠나는 한여름이다. 이즈음에 내륙 지방은 여행 선호지에서 벗어나기 일쑤다. ‘전통’을 간직한 내륙, 경북 안동도 이런 분류에 포함되지 싶다. 외국인 블로거와 여행 마니아 일부가 안동을 찾아 ‘한국 정신 문화의 정수’를 경험한다고 해서 현지에서 이들을 만났다. 무엇인가를 접하고 배우려는 자세다. 이들에게는 ‘여행이란 길 위의 학교’라는 명제가 들어맞는다. 10명이 안 되는 외국인 블로거들이 전하는 안동 문화의 폭은 그다지 넓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는 말이 있다지 않은가. 작은 힘들도 모이면 큰 힘이 되는 법이다.

안동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고장이다. 조선 후기 양반 문화의 핵심 중 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변화가 더디다. 답답할 지경이라는 말도 나온다. 인근 영주시가 ‘선비문화의 고장’이라는 레테르로 지역 알리기에 적극 나서자, 뒤늦게 “선비가 바로 양반이고, 양반 하면 안동인데 영주가 왜?”라는 탄식음을 낼 뿐이었다. 그리고 들고 나온 게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였다.

◇경북 안동 길안면 묵계리의 만휴정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름 명소이다. 안동의 속살을 안다는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300년 고풍의 매력에 빠져든다.
‘양반가의 자손’이라는 말을 끼고 사는 안동의 보수적인 분위기에 답답함을 느낀다는 방문객도 많다. 안동 사람으로서는 억울할 노릇이지만, 이는 다른 지역에서 온 젊은 세대의 느낌이다. 그러나 1999년 방한한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반한 곳이 또한 안동이다.

길안면 묵계리의 묵계서원과 안동 김씨 종택 주변은 신구세대가 안동의 매력을 공감할 수 있는 곳이다. 묵계서원은 안동의 25개 서원 중 하나다. 조선 성종 때 부제학을 지낸 보백당 김계행 선생과 세종 시절 사헌부 장령을 지낸 응계 옥고 선생을 봉향한 서원으로 1687년(숙종 13년)에 창건됐다. 이곳도 흥선대원군이 1869년(고종 6년) 내린 ‘서원철폐령’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때부터 사당은 사라지고 강당만 남아있다가 1998년 후손들이 힘을 보태 복원했다. 서원에서 여름 과일 수박을 권하는 종손을 바라보며 외국인 블로거들이 웃음을 짓는다. 미국인과 인도네시아인은 서원의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 이럴 때는 자기 문화의 범주로 대상을 끌어와서 짐작해 이해하게 된다. 미국인은 교회를, 인도네시아인은 이슬람 학교인 ‘마드리사’를 끄집어내 비교한다.

보백당이 말년에 묵계서원 옆에 지은 만휴정은 안동 최고의 ‘여름 비경’으로 꼽을 만하다.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곳은 없다’지만, 2009년 7월 말 만휴정은 예외였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에는 음각된 글씨 ‘보백당만휴정천석(寶白堂晩休亭泉石)’이 존재를 알려주고, 뒤쪽의 절벽과 앞쪽의 계곡물은 이곳의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몇 차례 내륙지방을 적신 비로 개울의 물도 알맞을 정도로 흘러내리고, 푸른 녹음은 만휴정을 감싸안고 있다. 너무 급작스럽다는 지적을 받을지 모르지만, 만휴정을 찾으려면 지금 찾는 게 적기이다. 아직 제대로 알려지지 않아, ‘생각하는 발걸음’을 원하는 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모임 ‘문화를 가꾸는 사람들’의 원유록 실장은 “묵계서원에서 만휴정에 이르는 길은 숨겨진 ‘안동 도보 여행길 3선’ 중 최고”라고 설명한다. 다른 두 길은 풍천면 서애 유성룡 선생을 향사한 병산서원과 하회마을의 화산을 잇는 길이 그 하나요, 도산면의 도산서원에서 낙동강을 따라 청량사를 잇는 길이 대미를 장식한다.

안동댐을 가로질러 국내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로 알려진 월영교 중간에도 정자가 있다. 길이 387m, 너비 3.6m인 월영교는 한가운데에 월영정을 품고 있다. 안동이 낳은 한류스타 탤런트 류시원의 고장을 찾은 일본인들은 곧잘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연인들이 찾기에 좋겠으나, 이곳을 지나는 이들이 너무 많아 은밀한 데이트는 힘들겠다.

◇안동댐을 가로지르는 월영교는 우리 땅에서 가장 긴 목책 인도교이다. 387m에 이를 정도로 긴 다리여서인지 다리 중간에 정자를 하나 품고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일본인들이 제법 많다.
안동을 100번을 찾아도 풍천면 하회마을은 꼭 들르게 되고, 탈춤도 보게 된다. 그게 안동의 전통을 인정하는 여행자의 최소 의무일 수 있다. 유네스코 기록문화 유산 등재를 코앞에 둔 하회마을은 인근 영주시의 무섬마을과 예천군의 회룡포처럼 물돌이 마을이다. 며칠 전까지 빗줄기가 주변을 적신 탓인지, 낙동강 위의 부용대에서 바라보는 마을의 매력이 진하다. 탤런트 류시원과 정치인 유시민은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두 사람은 거슬러 올라가면 14대조 할아버지가 같은 한집안이다. 하회마을은 일본과 서양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류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고유의 문화를 평가하는 외국인들의 태도 덕택일 것이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은 안동에서도 통한다. 바로 양반 사회를 맘껏 조롱하는 탈춤 문화. 하회마을에서는 5월부터 10월까지 주말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전수관’에서 탈놀이 공연이 이뤄진다. 각시와 양반은 물론 선비, 부네, 초랭이, 할미, 이매, 중, 백정, 주지의 탈을 쓰고 펼치는 공연에 여행자들이 즐거워한다. 이곳 탈춤 전수자에게서 들은 이야기 하나. “하회는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다.” 하회마을은 고려 중기에 허씨가 터를 잡았으며, 안씨와 풍산 류씨가 차례로 들어와 살았다는 설명이다. 기록에 탈의 제작자가 허도령이라고 하니, 틀린 말은 아닌 셈이다.

이제 잠자리가 문제다. 양반의 고장에 ‘나그네’를 위한 숙소가 없을 리 없다. 많은 잠자리 중에서 ‘서원 숙박’은 이곳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매력이다. 남후면 광음리의 고산서원을 숙소로 추천한다. 낮에 머리와 눈으로 전해진 전통의 가르침이 노곤한 잠자리에서 온몸으로 전해진다. 부족한 점은 있다. 서원을 잠자리로 바꾸다 보니, 샤워장이나 화장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현대식으로 바꾸었다고 하지만, 집에서 생활하는 것만큼 편하겠는가. 그런 점에서 약간의 불편도 감수하지 않고 안동 여행을 하기는 무리일 수 있다.

안동=글·사진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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