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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입력 : 2009-07-24 17:58:55 수정 : 2009-07-24 17:5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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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의 갈림길서 대부분 이기적 결정
인간의 유전·진화에는 선악의 개념 없어
인류가 만들어 내는 다양한 문화만이 희망
“인간은 단지 포유동물의 한 종일 뿐인데 자신의 본성을 캐기 위해 2000여년 동안 노력했음에도 아직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매드 리들리 ‘붉은 여왕’)

“인간에 대한 공포와 함께 우리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외경, 희망, 심지어는 인간에 대한 의지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인간의 모습을 본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이것이 허무주의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는 인간에게 지쳐버린 것이다.” (니체 ‘도덕의 계보’)

인간 딜레마 - 인간에 대한 절망, 혹은 희망/이용범 지음/생각의나무/2만원

이용범 지음/생각의나무/2만원
인간은 누구인가. 살면서 수없이 많은 선택의 갈림길에 서는 인간. 평균 수명이 길어지고 다양한 종류의 인간관계를 경험하게 되며 인간은 새로운 직업을 찾아 나서기도 한다. 특히 장기적 불황으로 인해 사회·경제적으로 선택 폭이 좁아진 요즘은 한 번의 선택으로 지불하게 되는 기회비용의 가치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자기중심적 사고와 이기주의로 인해 주변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데에 무감각한 이들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언론을 장식하기도 한다. 이런 혼란의 시기에 인간의 본능과 이성이 가리키는 방향이 선악과 기호의 문제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하는 것은 되물어볼 만한 질문이다.

‘인간 딜레마-인간에 대한 절망, 혹은 희망’의 저자 이용범은 본래적 의미에서 딜레마를 품은 존재인 인간이 어떤 기준에서 진화하고 생존하며 판단하는지 여러 학설의 실험과 관찰과 연구를 통해 보여준다.

각종 심리학 이론과 저작물을 총동원한 책은 1부 ‘선택의 딜레마’, 2부 ‘도덕의 딜레마’, 3부 ‘섹스의 딜레마’로 나뉘어 ‘그는 왜 그랬을까’라는 심리학적 질문으로 출발해 ‘인간은 선한가’라는 사회·윤리적 물음을 거쳐, ‘인류는 어떻게 진화했는가’라는 문화인류학적 의문으로 건너간다. 인간의 존재를 딜레마의 문제로 풀어보겠다는 시도다.

이를테면 사람들은 쓰레기통이 아니더라도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인 곳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꽁초를 버린다. 걸인들은 구걸하기에 앞서 깡통에 미리 약간의 돈을 넣어두고, 홈쇼핑 쇼호스트들은 물건이 전혀 팔리고 있지 않더라도 ‘현재 주문 폭주 중’ ‘품절 임박’이라고 강조한다. 인간 본능인 남의 행동을 따라하는 ‘사회적 증거’가 있으면 사람들의 마음이 쉽게 움직이기 때문이다.

◇바티칸시티 베드로 성당 옆에 있는 시스타나 예배당 천장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일부분. 기독교 관점에서 보는 인간의 원죄와 구원 문제를 표현했다.
미국 경제학자 토머스 셸링이 제시한 ‘매트리스의 딜레마’ 이론에 의하면, 교통체증이 심한 고속도로에서 운전자들은 정체 원인이 도로 한가운데에 떨어진 매트리스라는 것을 알게 돼도 누구 하나 내려 그것을 치우려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만 그곳을 벗어나면 되기 때문이다. 다음 날이면 영락없이 그것은 없어질 것이고, 정부나 도로공사에서 할 일이라고 치부한다.

◇기독교에서 인간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아담과 이브’를 그린 그림. 인간이 뱀으로 상징화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고 있다.
저자는 인간이 이런 다양한 딜레마 앞에서 특정 선택을 하는 것은 ‘생존과 번식을 우선 가치로 삼는 인간 DNA’에서 비롯된다고 단정한다. 사람은 여러 가지 선택의 갈림길에서 대부분은 이기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것. 그렇다고 ‘반드시, 꼭’이라고 단정할 수만은 없다. 이기적인 유전자라곤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슈바이처 박사나 테레사 수녀 같은 이타적인 인간들이 간혹 출현하기 때문이다.

국가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나 사상의 차이로, 혹은 자원 등 물질적 부를 차지하기 위해 인간들은 끊임없이 전쟁을 치르지만, 한편에선 적십자를 만들어 적군까지 치료한 앙리 뒤낭 같은 인도주의자도 적잖이 존재한다.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저자가 딱히 인간의 본성이 이기적인지 이타적인지, 혹은 본성이 선한지 악한지, 나아가 인간의 본성은 유전적인지 환경의 영향을 받는 것인지를 두고 딜레마에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저자는 인간의 본성은 그 자체가 딜레마라고 말한다.

‘딜레마’ 관점에서 인간을 해석하려는 저자의 지적 유희는 인간 남녀의 ‘짝짓기’에 얽힌 딜레마에서 절정을 이룬다. 보통은 생물학적인 인류의 진화 과정을 살펴보고 나서 인간의 본성과 윤리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도덕적 딜레마를 논한 뒤에야 생물학적 진화 문제를 이야기한다. 인간의 성(性)은 동물로서의 짝짓기 공식에 ‘인간성’이라는 가장 큰 변수를 집어넣은 색다른 현장이라는 해석이다. 이른바 ‘섹스의 딜레마’다.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성은 쾌락과 행복을 주는 반면 질투와 폭력을 불러일으킨다. 동물로서의 번식 본능과 어긋나지만 유지돼온 일부일처제처럼 인간의 짝짓기 문화는 동물인 동시에 인간인 사람이 겪는 딜레마를 보여준다.

저자의 탐구 결과는 인간은 유전과 진화에는 선악의 개념이 없으며, 인간이 공들여 쌓아온 문화조차 본성을 완전히 바꾸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인간은 먼저 인간의 본성부터 철저히 이해해야 하며, 유토피아를 꿈꾸는 것은 다음 일이라는 주장이다.

저자는 의외의 곳에서 희망을 찾아낸다.

“우리의 희망은 인류가 만들어낼 수 있는 다양한 문화에 있다. 오로지 인간만이 체계적이고 고차원적인 문화를 통해 학습한다. 물론 본성을 뛰어넘어 이타주의를 배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미래는 우리의 결단에 달려 있다. 우리가 작은 지구에 모여 살면서 비교적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협력이 폭력을 몰아내고, 공격적 행위를 관용의 정신으로 대체하는 것뿐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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