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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머리카락은 여전했다. 고음의 카랑 카랑한 목소리도 그대로다. 오랜만에 9.5집 앨범으로 팬들 곁에 돌아온 가수 김경호(38)는 변하지 않은 모습 그대로였다.
"머리카락요? 7집 때 한번 잘랐다가 팬들의 강력한 항의가 있었죠. 남자가 머리 긴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제는 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것 같아요. 늙어서 머리 빠질 때까지 고수할 겁니다.(웃음)"
노래와 함께한 15년의 세월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지만 그의 음악에 대한 고집만은 변치 않았다. "한 3,4년 활동한 것 같은데 벌써 15년이나 됐나 싶다"는 그는 "오래 활동을 하며 나무보다 숲을 보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는 자신이 밟았던 무대와 음악을 이제는 하나씩 꺼내서 줄 수 있는 여유로움이 생긴 것 같다며 말하며 웃는 그이지만 여전히 음악에 대한 욕심과 열정은 넘쳐났다. 김경호를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 그동안 건강이 악화됐다가 최근 완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얼마 만의 컴백인가
사실 컴백은 1년 만이지만, 건강 상의 이유로 활동을 거의 하지 못해서 다들 오랜만이라고들 하신다. 작년 8월 수술을 받아 지금 완쾌가 됐지만, 사실 많이 힘들었다.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은 상당히 고통스러운 병이다. 차라리 한쪽 팔이 아프면 다른 팔로 마이크를 들고 노래하면 되는데 다리에 통증을 느껴 서 있을 때 지탱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음악 활동에 소극적이 되더라. 어쩔수 없이 오른쪽 다리의 엉치 관절을 인공 관절로 대체하는 수술을 받았다.
- 성대 결절도 있었는데, 어떻게 관리했나
성대 결절은 7집 활동 때 심하게 와서 방송에서 실수도 많이 하고 그랬다. 시원하게 고음을 지르는 가수의 이미지가 있는데, 컨트롤이 안되는 경우가 생긴거다. 성대 수술을 하면 음색이 변한다고 하고 치유 방법은 무조건 쉬라고 하더라. 마침 다리까지 아파서 잠시 쉬어가라는 운명인가보다 싶었고, 정말 쉬니까 회복이 됐다. 여러가지 생각을 많이 한 휴식 기간이었다.
- 시원한 '샤우팅' 창법으로 유명한데, 음색에 변화는 없나
예전의 칼같은 고음이나 샤우팅은 아무래도 똑같지는 않을 거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고, 사실 원없이 하고 싶은 노래 다 해봤으니 표현하는데 문제는 없다. 단지 음성이 약간 굵어진 변화는 있지만 이번 앨범을 통해 회복되는 것을 느꼈다.

- 정규 앨범이 아닌 9.5집 앨범을 발매했다. 앨범 소개 좀 해달라
원래는 싱글 앨범을 생각했었다. 하지만 준비하다보니 팬들에게 나다운 음악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에 곡이 한두곡씩 늘더라.(웃음) 그래서 싱글도 아니고 정규 앨범도 아닌 미니 앨범이 됐다. 신곡은 5곡이며 반주곡과 리메이크 곡 등을 포함해 총 9곡이다. 박완규 씨와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듀엣으로 부르기도 했다.
- '부활'의 김태원은 예능 늦둥이로 활약 중이며 김종서 또한 드라마 등에서 다양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락 뮤지션들이 TV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데 어떠한 생각이 드나.
종서 형의 경우 전혀 사석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본 적이 없고 항상 진지한 모습만 봐 와서 사실 놀랐다. 하지만 태원이 형은 워낙에 재밌는 분이었다. 그래도 그렇게 예능에 적응을 잘할 줄 정말 몰랐다.(웃음) 적응 못하고 재미가 없으면 '왜 그러십니까' 하겠는데 너무 잘하시니까 그냥 잘 보고 있다.
- 요즘에는 예능 출연 등으로 락가수들의 신비감이 많이 사라지는 것 같다
태원이 형 말대로 신비로운 것보다는 유명하지 않은게 더 서럽다. 그리고 흔히들 그룹의 리더로 보컬만 생각하고 기타리스트를 생소하게 생각하고 잘 모르시잖나. 유난히 우리나라는 기타리스트가 대우받지 못하는 나라이기도 하고. 어쨌든 대중들에게 즐거움도 주고,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계기도 됐고 또한 부활이라는 그룹을 모르는 어린 학생들에게 다가설 수 있는 요소가 된 것 같다 보기 좋다.
- 한때 남자 가수들의 옥타브 논쟁이 일 때가 있었다. 실제로 어디까지 음이 올라갈 수 있나
사실 올려볼 수 있는 노래는 다 해봤다. 남자들의 경우 한 키라도 올려보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항상 내가 화제가 되곤 했는데, '김종서가 높냐 김경호가 높냐'는 식의 비교 대상으로 물망에 오를 때마다 종서 형과 같이 웃기도 했었다. 답변을 하자면 2집에 '자유인'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3옥타브, 아니 저음까지 따지면 4옥타브 라음까지 올라갔었다.
-높은 음의 노래를 부르면 에너지 소비가 상당하지 않나
사실 사람들은 잘 모를거다. 그냥 음을 올리는 것 같지만 배가 끊어질 것같이 아프고 머리도 아프다. 두성을 많이 쓰니까. 하지만 사람들이 시원함을 느끼고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시니까 그것으로 만족한다.
- 오랫동안 락 음악을 고집하며 세대에 따른 변화도 많이 느낄 것 같다
내가 꾸준히 해오고 있는 음악은 80년대 메탈 음악이다. 다른 장르를 통해 가끔 변화를 주기도 해봤지만 내가 들어도 어색하다. 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후배들이 계보를 이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눈길 가는 후배들이 있다거나 가능성이 있다고 보나
사실 요즘에는 거의 펑키나 펑크에 심취하니까 전체적인 분위기가 모던한 풍으로 바뀌고 있다. 나나 서문탁, 박완규, 최재훈 그리고 부활 등 우리들의 음악이 잊혀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크다. 그래도 90년대는 댄스와 발라드 그리고 락이 어느 정도 형평성 있게 유지 됐는데 지금은 아니다.
두개 대학에 강의를 하고 있는데 실제로 학교 애들을 봐도 학생 10명이면 10명 다 R&B(알앤비)를 선호한다. 정말 대세의 흐름이라는 것을 느낀다. 락은 단 한명도 없다. 일명 '꺽기'를 구사하는 R&B는 기본 음을 익히기도 전에 흉내를 내다보니 나중에는 고치기 힘들다. 잘못된 테크닉 자제시키고 기본기를 가르친다.
- 락 음악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점도 많겠다
그렇다. 무엇보다 가수들의 음색이 다 똑같다. 개성도 없어지고, 요즘 노래들을 들어보면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예전에는 들어보면 누군지 다 알았는데 요즘에는 너무 비슷해서 구분이 안갈 정도다.
- 일본에서도 앨범을 발매했다는데 어떻게 활동을 하게 됐나
올해 4월에 출시됐다. 한국에서 발매한 앨범과 같은 것은 아니고 전혀 다른 음악이다. 2집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과 4집 '내게로 와'를 그대로 싣고 나머지는 영어로 불렀다. 현지 뮤지션이 프로듀싱을 했다. 3년 전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한류 바람 타고 간 것은 아니다. 그리고 한국에서 거의 하지 않는 헤비메탈 음악만 한다. 우리나라의 언더그라운드 활동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오는 7월에 국제 락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신종플루 때문에 공연이 미뤄진 상태다.
- 일본을 택한 이유는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은데
맞다. 미국도 락 음악이 사실 침체기이고 일본만이 유일하게 락이 건재한 편이다. 본조비나 저니 등 락 그룹들이 미국에서 안되니까 일본에서만 음반을 낼 정도다. 일본에는 팬클럽들이 활발히 아직도 활동을 하며 마니아 층이 크게 형성되어 있다. 일본만 거의 유일하게 90년대 메탈이 살아 있다. 미국에서 폐간된 락음악 잡지가 일본에서는 인기리게 출판되면서 내가 한국 가수로 소개되기도 했다. 그만큼 소비자 층이 있다는 것이다.
- 국내 활동은 대중성을 생각 안할 수 없을 듯 한데 어려움은 없었나
예전부터 '힘을 좀 빼주면 안되겠느냐', '대중들이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를 하면 안되느냐' 등의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 부드러운 음악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
- 이번 앨범의 타이틀이 '얼라이브'(Alive)인 것도 그러한 맥락인가
그렇다. 난 아직 건재하고 살아있다는 것을 알리는 동시에 예전의 내 음악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려는 시도다.
- 한결같은 팬들이 있는데, 남성팬도 많고 연령 층도 다양할 것 같다
정말 나이든 분들이 팬 분들이 많다. 어머니 뻘이신 분들도 팬들 모임에 자주 오시고, 가장 감동스러울 때는 내 정규 공연도 아닌데 먼 곳에 있는 대학 축제도 오셔서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다.
- 아직도 음악에 있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나
사실 꿈꿔본 것 중 못 이룬 것은 없다. 예전에는 꼭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고 싶었는데, 락 가수로는 처음으로 대공연장에서 공연을 하게 됐었다. 그런데 공연 후 의자가 8개 망가졌다고, 다시는 락 가수가 공연을 못하게 됐다고 하더라. (웃음)
- 술만 먹으면 영화 '라디오스타'를 얘기를 꺼낸다는 소문이 있다
하하. 그게 사실은, 내가 그 영화를 너무 좋아한다. 보고 또 보고 30번은 봤을 거다. 보면서 너무 많이 울었다. 어떻게 저렇게 캐릭터를 잘 잡았을까, 너무 감동이다. 나도 술먹으면서 맨날 매니저에게 그런다. 제발 라디오스타만 만들지 말아달라고.(웃음) 끝까지 음악만 하게 해달라고 한다. 내가 서야될 무대를 서야지, 나중에 마지막 끝이 그런 사람이 되긴 싫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
마지막으로 '여자친구는 있느냐', '결혼 계획은 없느냐'는 질문을 하려는 차에 김경호가 선수친다. "늘 인터뷰가 오늘만 같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여자친구 있느냐, 이런 질문만 하시는데…" 계획을 바꿔 '꿈이 무엇이냐' 물었다.
"이 말을 아무에게도 못했어요. '네가 퍽도 하겠다' 할까봐. 일본 최고 무대인 부도칸에서 단독 공연하는게 꿈이자 목표입니다."
'끝까지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로 남고 싶다'고 말하는 김경호. 음악은 그의 고향이자 인생 그 자체였다.
두정아 기자 violin80@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사진 허정민 기자 new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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