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풍수지리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동아시아 역대 왕조의 흥망사를 보면 유교·불교보다 풍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곤 했다. 풍수는 도참과 결부돼 새로운 정권 창출의 이념을 제공하기도 했던 것이다. 조조는 풍수설을 믿고 천자를 핍박해 허창으로 도읍지를 옮겼을 정도다. 우리는 또 어떠한가. 조선조 흥선군은 아버지 남연군 묘를 ‘황제가 나올 자리’인 충남 예산으로 옮겨 아들은 고종이 되고, 자신은 대원군이 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도 직계조상 묘를 이장한 바 있다. ‘한국 선거는 조상의 묘도 옮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하긴 어디 정치인뿐이랴. 일부 재벌 총수 등 기업인도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참이다.
흔히 풍수를 좋은 땅 잘 골라 그 음덕 좀 보자는 술법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자생적 풍수 사상 원류인 도선풍수는 그런 이기적인 지리학이 아니다. 그것은 땅에 대한 깊은 사랑이자 자연친화다. 명당, 승지, 발복의 길지니 하는 따위는 본질에서 떨어진 개념들이다. 조선 중기 이후 묘지풍수가 풍수의 전부인 것처럼 인식됐지, 그 전에는 ‘자연과의 조화’를 추구했다. 산 사람의 거주지인 양택(陽宅), 죽은 사람의 안장지인 음택(陰宅)을 고르는 일에 고려할 일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해가 안장될 장지는 김해 봉하마을 사저 바로 옆으로 정해졌다. 지관 구영옥(78) 옹이 정한 자리다. 풍수지리적으로는 앞산에 옥녀봉이 있어 ‘국모를 볼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아늑하고 양지바른 곳이라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이여, 이 땅에서의 영욕 다 내려놓고 내세의 삶이 편안하길 기원한다.
황종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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