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 신분보장’ 의식 申 사퇴촉구는 안해
‘촛불재판’ 판사들도 지난주 두차례 회동 이용훈 대법원장에게도 ‘잔인한 5월’이다. 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 결정을 받아들여 신영철 대법관에게 ‘엄중경고’를 했지만 소장 판사들의 반발 기류가 좀처럼 수그러들 기세가 아니다. 일각에서 나오는 ‘대법원장 책임론’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17일 각급 법원 등에 따르면 18일 서울가정법원, 부산지법, 수원지법 등 전국 법원 7곳에서 신 대법관 재판 개입 논란을 논의하는 판사회의가 열린다. 19일에는 광주지법 회의가 예정돼 있다.
앞서 작년 촛불재판 때 서울중앙지법 형사 단독판사들이 최근 두차례 모임을 가졌고,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법관회의에 개입하려 했다는 논란도 일고 있다.
◆대법원장으로 불똥 튀나=소장 판사들의 반발이 확산된 데에는 이 대법원장 책임도 일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 초 논란이 처음 불거졌을 때 강력한 조치로 사태 장기화를 막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재판 개입’이라는 대법원 진상조사단 보고를 받고서는 법원 징계위원회 대신 윤리위 회부를 택했다. 처음부터 징계위에 넘겨 이번 사태를 어물쩍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못했다.
이제는 더 이상 대법원장이 사태를 적극 주도할 기회가 없다. 신 대법관 사태에 대한 법원의 공식적인 조치는 진상조사단 조사와 윤리위 회부, 엄중경고 조치로 모두 끝났기 때문이다. 쥐어진 카드도 없다. 소장 판사들의 반발이 사그라지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이 대법원장은 단독 판사회의나 결의문에 대한 입장 표명이나 언급을 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졌다. 소장 판사들이 신 대법관 사퇴를 촉구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결의문을 채택한 이상 언급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보는 것 같다.
판사 회의가 전국 법원으로 확산할수록 그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리더십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고 신 대법관 제청에 대한 책임론도 나온다. 당분간 대법원장의 잠 못 이루는 날은 계속될 것 같다.
◆신 대법관의 선택은=법조계 안팎에서 신 대법관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소장 판사회의가 전국으로 확산하고 간접적인 ‘사퇴’ 압박이 거세지고 있어 그의 반응이 주목되는 탓이다.
소장 판사들이 신 대법관 행위가 부적절하다고 결론내면서도 사퇴를 촉구하지 않는 것은 ‘법관 신분보장’만큼은 지켜야 한다는 암묵적 합의로 보인다.
법원조직법은 ‘탄핵이나 금고 이상 형을 받지 아니한 법관은 파면되지 않는다’고 해 법관 신분을 보장하고 있다. 특히 신 대법관에 대한 법원 징계 절차가 끝난 상황에서 대법관 진퇴를 촉구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신 대법관 거취는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법원 안팎의 따가운 시선과 대법원장의 엄중경고라는 수모까지 당하면서 징계 절차를 마친 그로서는 스스로 물러날 이유가 없다. 신 대법관이 사퇴 뜻을 갖고 있더라도 쉽게 결정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여론에 떠밀려 사퇴하는 선례를 남길 경우 장기적으로 사법부와 법관 독립에 더 큰 부담을 주게 된다.
정치·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한 개별 판결을 놓고 법관의 사퇴를 요구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법원 구성원 모두가 냉정을 되찾고 적절한 시기에 신 대법관이 물러나는 식으로 사태를 수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이우승 기자 ws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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