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라
아테네의 아고라에 있는 2000년이 넘는 석조건축물을 돌아보자. 아고라(Agroa)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도시국가)에서 사람들의 ‘만남과 회의의 장소’로 시민들의 일상생활이 함께 이루어지던 공공의 ‘광장(廣場)’을 말한다. 아고라는 시민의 일상적인 의식주 경제활동과 문화 예술 활동이 주로 이루어졌던 광장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물물거래, 상업, 경제적인 교환 등이 자연발생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정신분석학 용어에 ! 아고라포비아(Agora-phobia)가 아고라에서 유래가 된 광장공포증이라고 한다.
그 옛날 그리스의 구라(?)들이 정치, 경제, 철학, 인생, 미술, 음악, 시 등 문화에 대해서 논하던 곳이라 좀 시끄러웠으리라.
1931년 발굴되어 유명해진 아타로스 스토아(回廊)와 헤파이스토스(대장장이神) 신전 만 제대로 모습을 갖추고 있다. 나머지는 주춧돌이나 기둥, 부서진 조각상들의 편린만 남아서 옛날의 화려했던 흔적을 희미하게 전하고 있다.
아고라는 수평적( horizontal)이다. 그래서 만인이 평등한 민주주의는 아고라적이다. 아고라에서 자유인이자 땅을 가진 백성들이 모여서 자연스럽게 권력을 쟁취한 것이 「 Demos(백성)+권력(Cratos)=Democracy」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이스 직접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백성이 힘을 가지면서 나중에 수직적인 것과 대결하게 된다.
소크라테스, 풀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제논 등 수많은 현인들이 여기 모여서 토론과 논쟁을 벌였다. 그리하여 이곳 회랑(回廊;Stoa)에서 태어난 금욕주의 철학이 스토이시즘(Stoicism)이라고 한다.
이 아고라에서는 시공을 초월한 말씀이 전해져오는 것 같다. 이 문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진보된 정치와 사상과 철학을 가졌던 것 같다.
스콜레(schole)와 아케디아(acedia)
우리가 흔히 학교라고 부르는 school의 어원은 상당히 흥미롭다. school의 어원으로 schole는 '여가'란 뜻이다. 오늘날 ‘여가’는 남는 시간에 휴식을 취하거나 레저를 즐기는 개념으로 사용하지만 고대 그리스의 스콜라 철학자들은 다소 다른 의미로 사용하였다.
스콜라 철학자들은 마음에 실재(reality)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관조(觀照)'를 학문 활동의 핵심으로 본다. 우리 마음은 실재를 파악할 수 있는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고 schole(여가)를 통하여 치밀한 ‘관조’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생각하는 짐승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스콜레(schole)'의 반대어인 '아케디아(acedia)'는 영어로 work의 어원이다. 아케디아와 워크의 발음이 비스무래하다. 이는 번잡한 일로 바쁜 상태를 말하였다. 학교(school)는 아케디아의 상태에서 벗어나 실재를 관조하도록 격리한 곳을 말한다.
재미있는 것은 이 아케디아를 인간의 으뜸 죄로 여겼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이론에 의하면 오늘날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으뜸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일 속에서 허덕이다가 '여가' 시간이 주어지면 실재를 관조하지 않고 그냥 쉬고 자며 먹고 마시며 즐거움을 맛보는 것으로 보낸다. 일 속에 빠져 관조를 잊고 있다가 여가의 시간이 오면 게으르고 나태한 본능에 충실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관조를 잊고 살고 있는 것이다. 요즈음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역시 학교로 학원으로 과외로 도서실로 끌려 다니면서 인간의 으뜸 죄라는 '아케디아'를 똑 같이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도 마찬가지로 아케디아를 실천하는 으뜸 죄를 짓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렇다면 현대의 학교는 으뜸 죄를 진 사람들을 수용하는 수용소이고 심하게 말하면 감옥(Pris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 감옥은 가장 문명적인 아이콘인 사각형으로 된 감옥이기도 하다. 그래서 요즈음 아케디아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가끔씩 두부를 먹여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두부는 감옥에서 얻은 여러 가지 독을 해독하는 능력이 있다고 옛 의서는 전한다.학교의 어원(여가)을 살펴보면서 우리가 인생을 관조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크로 폴리스
아테네에 BC 5세기 후반에 세워진 아크로폴리스가 가장 유명하다. 지금까지 남아 있는 성역으로 들어가는 입구 건축물이 프로필라이움이라고 한다. 유명한 파르테논은 아테나 여신을 모신 신전이며 델로스 동맹의 보물 창고였다고 한다.
지중해식 기후는 여름에 비가 오지 않아 건조하므로 나무들은 수려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나무가 괴목처럼 자라고 있다. 메마른 가지에 가는 잎이 하늘거리는 올리브 숲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면 그 이름도 유명한 파르테논 신전이 등장한다. 현재 보수가 진행 중인데 뼈를 이루는 기둥이 너무 건조하고 메말랐지만 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6개의 소년상이 기둥으로 된 에크레티온도 함께 있다. 낡아서 빛 바랜 아름다움이 먼 과거의 영화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 파르테논 신전(神殿,BC438)안에 아네테 여신은 이 언덕 위에서는 자신의 이름을 한 도시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다 볼 수 있을 것 같다.
아크로폴리스는 해발150m 산이고, 도시와 상대고도 70m 언덕이다. ‘아크로폴리스는 山이다, 아니 언덕이다’는 주장이 분분하다. 그러한 주장이 아고라의 논쟁 이래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설(?)이 있다.
도시국가시절의 중심이었던 언덕으로 폴리스의 수호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성역이다. 그래서 아크로 폴리스는 신과 인간, 지배자와 피지배자, 절대권력과 인민 등 상하관계를 상징하는 곳으로 수직적(vertical)이다. 그래서 아크로폴리스는 정치적이고 종교적인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아크로폴리스(Acropolis)는 ‘높은 도시’라는 의미로 고대 그리스 도시 중심을 말한다. 정신분석학 용어에서 높은 고소공포증을 아크로포비아(Acrophobia)라고 한다.
도시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있어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종교적인 장소였다. 그래서 신전이 있었다. 종교뿐 아니라 군사적으로도 언덕 위는 가장 바람직한 요새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아크로폴리스는 유사시에 군사적인 요새 역할을 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신전이 있어서 뒤에서 지원해주는 배후(여러 신들)도 든든해서 요새로써는 손색이 없었다.
보통 요새가 되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적으로부터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인공적 자연적 시설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장기전에 버틸 수 있는 샘이 있어야 했다. 샘이 있으려면 약간 낮은 곳에 나무 숲이 있고 그 밑에 수맥이 흘러야 한다. 높은 언덕위라도 나무가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장기전이 가능한 식량창고나 무기고 등이 있어야 한다. 더 장기전을 벌이기 위해서는 지하로 뚫린 비밀통로가 있어야 하지만 아직 아크로 폴리스에서는 비밀통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희뿌연 매연이 희미하게 덮은 돔 속에 아테네가 있었다. 로마가 융성하기 전 세계사는 모두 이곳을 통했다던가! 파르테논은 지금부터 2400년 이전에 세워진 건축물이지만 지금도 당당하고 힘찬 모습을 하고 있다. 이 구조물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은 그 당시의 건축술이 얼마나 완벽했던가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예술적이고 기하학적이며 튼튼한 축조술에 경의를 표한다. 그것은 아테네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파르테논신전은 도리아 양식 건축물이다. 도시국가 아테네의 이름은 아테네神에서 유래한 것이다. 아테네神은 ‘지혜와 예술의 여신’이다.
이 신전 남면으로는 野外音樂堂(헤로데스아티에스)이 있고 디오니소스 극장이 있다. 반쯤 무너져 내린 그 원형 극장은 조금씩 복원 중인 것 같다. 이곳에서 대부분 그리이스의 비극이 공연되었다고 한다.
김규만 (한의사) transvil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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