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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포사이스 지음/정재겸 옮김/솔출판사/3만5000원 |
한국이 옛 소련과 수교한 지도 이미 20년이 지났다. 그동안 소련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소련의 옛 땅에는 15개의 개별 독립국들이 탄생했다. 1991년 이후 한국인들이 러시아와 시베리아 땅을 직접 방문하기 시작한 이래로 적지 않은 시간이 흐르면서 시베리아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수요가 꾸준히 늘어왔지만 국내에 소개된 관련 서적은 그다지 많지 않다.
솔에서 펴낸 ‘시베리아 원주민의 역사’는 시베리아에 대한 새로운 시각의 통사이며 서구의 연구 성과를 집성한 대표적인 저작이다. 국내 독자들이 시베리아 역사에 대한 포사이스의 견해를 접하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책은 언어학자가 쓴 역사서이며, 시베리아의 역사를 다룬 본격적인 인문학 담론이다. ‘본격적’이라는 수사를 붙인 까닭은 이 글이 취미 삼아 쓰는 기행문이나 인상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포사이스는 영국과 미국의 대학도서관에서 구할 수 있는 시베리아 관련 논저들을 섭렵하여 객관적인 서술시각을 유지하려 노력하였고, 주와 참고문헌을 통해 시베리아 관련 자료의 대부분을 소개하는 친절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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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치족 부부가 개나 오소리 털로 끝을 마무리한, 눈 오는 날 입는 뒤집어쓰는 순록가죽 옷을 입고 있다. 보통 이들은 에스키모족과 마찬가지로 두건 없는 외투를 입었다. 이들 뒤로는 순록이나 바다코끼리 가죽으로 덮은 야랑가라고 불리는 커다란 천막이 있다. |
이 책은 시베리아 지역 전문가들에게 소비에트기에 간행된 시베리아 역사서들의 단점을 보완하게 해주는 객관적인 자료이며, 일반 독자에게는 시베리아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필독 교양서라고 생각한다.
포사이스는 정치권력의 교체나 지배 이데올로기의 기술과 같은 접근에서 벗어나 ‘문화-민족지 역사서술(cultural ethnic history)’을 제안하였으며, 실제로 제목에서부터 본문의 세세한 내용에 이르기까지 일관성 있게 시베리아지역 토착민족들의 명멸사와 문화를 기술하고 있다. 시베리아 역사와 관련한 기존 연구들이 대체로 ▲제정러시아의 시베리아 진출 과정 ▲시베리아의 도시 발생사 ▲고고학 관련 보고서 ▲문화와 민속, 신화 등에 대한 지역적인 접근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포사이스와 같이 시베리아 지역의 역사를 토착민의 문화를 중심으로 통시적으로 다루는 묵직한 저서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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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바족 샤먼. 머리에 깃털 장식을 하고 외투에는 가죽 띠와 사슬을 매달아 장식했으며 큰북을 가죽 채로 두드리고 있다. 천막집은 내륙 아시아의 몽골족과 기타 유목 종족들이 살았던 전형적인 게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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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네트족(사모예드족)의 복장과 유사한 털 달린 사슴가죽 겨울옷을 입은 북부 한티족(오스티약족) 사람들. 남자는 허리띠에 칼과 작은 주머니를 달고 있으며, 여자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통을 들고 있다. |
하지만 시베리아의 역사와 토착민족들의 문화사를 객관적인 자료를 통해 공부하거나, 시베리아 지역의 역사를 다양한 시각에서 살펴보길 원하는 독자에게는 이 책의 단점이 오히려 장점으로 변한다. 시베리아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와 함께 1990년 이전 서구학계의 시베리아지역 연구 성과의 공과를 종합적으로 볼 수 있는 희귀한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소비에트 해체 이후 홍수같이 쏟아져 나온 시베리아 관련 자료들을 요령 있게 살펴볼 수 있는 비교연구의 출발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양민종 부산대 노어노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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