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런던 사람들에게 런던이 좋은 이유를 물으면 보통 무료로 개방된 박물관, 미술관 등이 아주 많다는 점부터 꼽습니다. 수백 곳의 문화공간이 있고 한곳 한곳마다 상당한 양의 전시물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정말 '작심'하고 저녁이나 주말에 알차게 돌아다니지 않으면 일부밖에 못 보게 됩니다.
사실 주말마다 '런던의 박물관 리스트'를 구글에서 검색해 '오늘은 어딜 갈까'를 고르는 일도 그리 만만한 건 아닙니다. 물론 가장 좋은 선택은 일단 어디든 '가고 보는 것'입니다. 오이스터 카드(교통카드) 한 장만 있으면 한 푼도 더 들지 않으니까요. 인터넷이나 게임은 좀 줄이고 박물관 구경 많이 해 보십시다.
임페리얼 전쟁 박물관(The Imperial War Museum). 국립으로 런던 말고도 맨체스터, 덕스포드, 벨파스트 등 여러 도시에도 있습니다.
1·2차 세계대전을 중심으로 20세기 전쟁들의 기록들, 그리고 그 참혹한 시간들이 우리의 현재에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담담하게 돌아보는 곳입니다.

로비에 들어서면 공중에는 비행기들이 매달려 있고 알록달록한 색깔의 전차, 대포, 로켓 등의 모형이 어지럽게 널려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박물관에 온 것 같은 첫인상이 듭니다. 하지만 한층 한층 올라가면 이 박물관이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2층에 올라가면 '1·2차 세계대전' 전시관을 보게 됩니다. 전쟁 발발 전후 오고 간 각종 문서들을 비롯해 당시의 언론 보도, 종군기자들이 찍은 사진들, 무기와 제복들, 부녀자들이 가족의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만든 공예품 등 거의 모든 공식·비공식 자료들이 빼곡합니다.
가족들이 '남편(아들)의 생사 여부를 알려달라'며 보낸 자필 편지들, 그리고 군 측이 가족들에게 회신한 '사망통지서' 수백 통이 나란히 배치되어 보는 사람들을 숙연하게 합니다.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은 3층의 '홀로코스트' 전시관입니다. 유대인 수감자들이 어떤 경로로 이동했고 어떻게 분류되어 어떻게 죽어갔는지 생생하게 재현합니다. 나치의 학살 방법과 그 후 미흡했던 전범 처벌 등에 대해서 매우 자세하게 보여줍니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증언 동영상이 곳곳에 상영되는데, 당시의 상황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 그들의 목소리와 표정은 오히려 차분하고 담담하기만 해 더 무거운 여운을 남깁니다.
4층에는 세계 곳곳에서 현재진행형인 '내전'의 참혹성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상영됩니다. 솔직히 인기는 별로 없어 보이네요.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닌 만큼 흥미로운 자료들로 좀 더 보강했으면 싶습니다.

지난 세기 세계의 전쟁사를 빽빽하게 채웠던 나라 영국은 이 박물관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쟁은 정말 참혹하고 슬픈 것이었다고.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맞는 얘기지만, 한편으로는 이 메시지는 영국이 피해자 혹은 제 3자였을 경우의 전시물들만 보여주고 있기에 가능한 것이기도 합니다. 자국민의 애국심을 높이려는 것이 전쟁박물관의 목적일테니 이해도 되지만, 보다 객관적인 역사 진술과 화끈한 반성의 메시지를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윗층을 구경하고 머리가 너무 복잡해졌다면, 퇴관하기 전 지하 1층에 들러보세요. 전쟁으로 파괴된 도시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체험관'이 있습니다. 줄서 기다렸다가 10분에 한 차례씩 직원의 인솔을 받고 단체로 들어갑니다.
폭약 냄새인지 피 냄새인지 모를 불쾌한 향이 문 밖에서부터 진동하는데다, 컴컴한 곳을 직원의 손전등에 의지해 걷기 시작하면 처음엔 겁이 좀 날 수도 있는데요. 하지만 사실은… '귀신의 집'보다도 시시한 편입니다. 굳은 표정으로 들어갔다 웃으면서들 나오는 귀여운 체험관이고 나름 인기는 좋습니다.
[찾아가는 길] ▶ 지하철 Bakerloo Line의 Lambeth North 역에서 내리면 박물관 방향 안내판이 있어 찾기 어렵지 않다. 쭉 따라 5~10분쯤 걸으면 잔디밭이 펼쳐진 작은 공원을 찾을 수 있고 그 옆에 박물관 건물이 보인다.
[요금] ▶ 특별전을 제외하고 무료. 상설전만 둘러봐도 한나절 볼거리로 충분.

임현우 whatisthis@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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