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설립 공장 월 매출액 1억원 이상 달성
“남들이야 뭐라든 인생에 대한 자기만의 그림이 필요합니다. 처음엔 초라하게 보이기도 하고 힘도 들 겁니다. 하지만 초지일관하다 보면 만족감은 무엇보다 큽니다. 요즘 젊은이들 처음부터 남들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것만 좇다 보니 힘든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시선을 돌리면 여전히 기회는 많아요.” 박병일(53) 카123텍 대표가 경제위기로 일자리조차 없어 힘들어하는 요즘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충고다. ‘청년백수’ 얘기만 나오면 으레 하는 “눈높이를 낮춰라”라는 말이라 청년 실업자들 입장에선 지겨울 수도 있다.

어릴 적 박 대표가 그린 인생 그림에 자동차 기술자는 없었다. 그림 솜씨가 제법 뛰어나 화가가 되고 싶었단다. 하지만 화가의 꿈은 15살이던 중학교 1학년 때 중퇴를 하면서 접어야 했다. 아버지가 하던 ‘기와장이’ 일이 산업화로 급격히 일감이 줄면서 생계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7남매의 장남이었던 박 대표는 자신이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부모님은 제가 장남이니까 공부를 시키려고 했어요. 제가 일을 하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습니다.”
세상에 첫발을 내밀었지만 어린 박 대표를 선뜻 반겨준 곳은 없었다. 첫 직장이 된 집 근처의 버스 회사 정비공장도 통사정을 한 끝에야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월급은 없었고 그저 먹고 자는 것만 해결했다. 무엇보다 기술을 배울 수 있을 거란 기대가 6개월 동안 잔심부름만 시키는 통에 완전히 깨진 것에 박 대표의 실망은 컸다. 하루빨리 기술을 익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함은 커졌고, 독학은 그렇게 시작됐다.
“청계천 헌책방을 다 뒤져 자동차 백과사전을 한 권 구해 혼자서 공부했습니다. 한동안 공부를 하니까 조금 알겠더라구요. 하지만 이론만 알아서는 곤란했죠. 기술 가진 사람들 빨래도 해주고 라면도 끓여주면서 가르쳐 달라고 계속 귀찮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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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일씨는 “젊은 시절 흘리는 땀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젊었을 때 땀을 흘리지 않았다는 걸 나이가 들어 후회하는 고통은 더욱 큽니다. 저는 아직 젊기 때문에 더 땀을 흘리려 한다”고 말했다. |
‘먹고살만 해졌지만’ 기능에 대한 박 대표의 열정은 식지 않았다.
자동차 급발진이 한창 시끄럽던 1999년에 자동차 6대를 자비로 사서 이런저런 연구 끝에 원인을 밝혀냈다. 기술 배우기에 그렇게 힘들었던 자신의 전철을 후배들이 밟지 않도록 지금까지 34권의 책을 냈다. 현장 기술자가 이만한 양의 책을 낸 건 아주 드물다. 이곳저곳에서 들어오는 무료강연 요청도 마다하지 않고 다녔다. 친분이 있는 기능인들과 뜻을 모아 ‘한국마이스터 연합회’를 만들어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자동차 정비 등의 봉사활동을 하는 것도 박 대표가 가진 열정의 산물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2002년 자동차 명장으로 선정됐고, 2006년에는 노동부가 주관하는 ‘기능한국인’에 뽑혔다. 지난해에는 자격증의 최고 등급인 ‘기술사’를 취득했다. 이를 두고 자동차 기술부문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00년 설립한 이후 직원 22명과 함께 운영하는 공장은 월매출이 1억5000만원일 정도로 탄탄하게 성장했다.
기술자로서 최고의 지위에 올랐지만 박 대표는 지금도 새로운 인생의 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했다. 하나는 세계 최고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만한 대우를 받고 있지 못한 기능인들을 위한 회관을 설립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친환경차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는 일본 도요타사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친환경차 ‘프리우스’ 3대를 2007년 들여왔다. 두 대는 공장에 두고 분해해 테스트하고 있고, 다른 한 대는 직접 몰고 다니며 특성을 파악 중이다.
젊은 시절 가장 밑바닥에서 시작해 최고의 자리에 오른 박 대표가 들려주는 성공의 비결은 특별한 게 아니다. 땀을 흘리며 꾸준히 제 갈 길을 가라는 것이다.
“젊은 시절 흘리는 땀은 고통이 따르기 마련이죠. 하지만 젊었을 때 땀을 흘리지 않았다는 걸 나이가 들어 후회하는 고통은 더욱 큽니다. 저는 아직 젊기 때문에 더 땀을 흘리려고 합니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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