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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국제분쟁지역 진단] ⑥강경노선 힘 얻는 티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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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무장봉기' 50주년, 대규모 소요사태 오나 1959년 3월 10일 여명이 밝기 전 티베트의 수도 라싸(拉薩). 티베트인 2000여명이 역대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인 노부링카에 모여들었다.

이날 오후 3시 티베트에 주둔 중이던 인민해방군 병영 강당에서 상연될 연극에 초대된 정신적인 지도자 달라이 라마 14세가 납치돼 독살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이다. “티베트 독립” “한족을 몰아내자”는 구호를 외치던 시위는 결국 무장 소요로 발전하고 인민해방군의 무자비한 진압이 시작된다.

3월17일 80여명의 호위단과 함께 포탈라궁을 몰래 빠져나온 달라이 라마는 중국군의 추격을 피해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인도로 망명했다. 그는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올해는 역사적인 1959년 무장봉기 50주년이 되는 해이다. 중국에서는 반란을 평정했다는 뜻으로 ‘평반(平叛) 50주년’으로 부른다. 티베트 무장봉기 50주년이자 달라이 라마의 노벨 평화상 수상 20주년인 올해에는 중국 국내외에서 티베트 문제가 다시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무장봉기가 일어났던 3월에는 티베트 지역에서 대규모 소요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티베트에서는 무장봉기 및 달라이 라마 탈출 30주년이었던 1989년 3월에도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 이때에도 많은 사상자가 났다. 지난해 3·14 티베트 사태도 무장봉기 기념일인 3월10일에 시작돼 일파만파로 확산했다.

현재 시짱(西藏)자치구로 불리는 티베트의 인구는 277만명으로 95.5%가 티베트족(藏族)이다. 시짱자치구와 원래 티베트의 세력권이었던 인근 간쑤(甘肅), 칭하이(靑海), 쓰촨(四川), 윈난(雲南)성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에는 약 541만명의 티베트인이 거주한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가 ‘자고 이래 중국의 불가분의 영토’라고 말하지만 티베트인의 생각은 다르다.

티베트족의 과거 왕국인 토번(吐蕃)은 티베트고원을 넘어 중앙아시아까지 넘본 강성한 국가였다. 7세기 송첸감포 왕은 당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화해 조건으로 당나라 문성 공주를 왕비로 삼기도 했다.

원, 명 시기에는 중국의 영향을 받다가 18세기부터 청나라의 간섭을 받았지만 사실상 독립된 상태를 유지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후 1950년 인민해방군이 라싸에 진주했으며, 1951년 강제로 소위 ‘평화해방에 관한 협정’을 체결한 뒤 무력점령했다. 자신들의 종교와 문화에 자부심이 강한 티베트인의 반중 정서는 그만큼 뿌리깊다.

티베트인의 구심점인 달라이 라마는 1979년부터 유혈참사가 예상되는 독립노선을 포기했다. 대신 중국 정부에 현재의 시짱자치구에 과거 티베트였던 인근 성들의 일부 지역을 묶어 고도의 자치를 누리는 다짱취(大藏區) 건설을 요구한다.

지난해 라싸에서 일어난 소요사태를 중국군이 무력진압하면서 중도 노선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지난해 11월 다람살라에서 개최된 망명정부 긴급회의에서는 일단 70%의 찬성으로 중도노선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중국의 태도가 워낙 완강해 자치요구가 수용될 가능성의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이 때문에 오는 3월 티베트에서 다시 소요가 발생하고 중국이 무력진압에 나설 때 본격적으로 무장투쟁 노선이 논의될 가능성이 있다.

베이징=김청중 특파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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