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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은인자중’ 사자성어로 돌아본 2008년

입력 : 2008-12-28 17:40:48 수정 : 2008-12-28 17: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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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식 시인·수필가
직장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은인자중’(隱忍自重)을, 구직자는 ‘난중지난’(難中之難)을 뽑았다. 올해 경제 사정이 얼마나 어려웠는지를 가늠하는 바로미터다.

얼마 전에는 교수들이 뽑은 사자성어도 발표됐다. ‘호질기의’(護疾忌醫)다. ‘호질기의’는 중국 북송시대 유학자 주돈이가 통서(通書)에서 남의 충고를 귀담아 듣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면서 “요즘 사람들은 잘못이 있어도 다른 사람들이 바로잡아 주는 것을 기뻐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병을 감싸안아 숨기면서 의원을 기피해 자신의 몸을 망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사자성어다. 충고를 싫어하는 우리 정치권의 세태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교수신문에선 2001년부터 한 해를 대표하는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해 왔다. 교수신문이 처음 사자성어를 선정했던 2001년은 ‘오리무중’(五里霧中)이 그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꼽혔다. 대통령 선거가 있었던 2002년은 ‘이합집산’(離合集散)이, 참여정부 출범 첫해인 2003년은 ‘우왕좌왕’(右往左往)이,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이 이뤄진 2004년에는 ‘당동벌이’(黨同伐異)가 뽑혔다. 같은 무리와는 똘똘 뭉치고 다른 자는 공격한다는 의미이니 그해를 이보다 잘 표현된 말은 없어 보인다.

2005년의 사자성어는 ‘상화하택’(上火下澤)이었다. 불은 위로 솟으려 하고 물은 아래로 스며들려 하니 서로 반목하고 갈라서는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그해 줄기세포 허위논문 사건이 드러나면서 온 국민이 혼돈에 빠졌다.

2006년 한국 사회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는 ‘밀운불우’(密雲不雨)가 선정됐다. 짙은 구름이 가득 끼었으나 비가 내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일이 성사될 여건이 조성됐는데도 실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답답함과 불만이 폭발할 것 같은 상황을 일컫는 말이 당시 상황과 딱 맞아떨어진다. 당시도 정치와 리더십이 실종되었던 해로 기억된다. 아파트 값은 널뛰기를 하고 서민들은 ‘바다이야기’에 빠져들고 말았으니 말이다.

2007년은 ‘자기기인’(自欺欺人),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인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사회의 신뢰가 무너진 해였다. 2007년은 수많은 유명인들의 허위 학력과 논문 표절이 끊임없이 터져나왔던 해다.

지난 8년간 사자성어를 되돌아보니 갈수록 사자성어의 표현이 어려워지고 있다. 마치 국민의 바람과는 멀찌감치 떨어진 정치권처럼 한국의 지식사회도 국민과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편 새해 소망을 나타내는 말로 직장인은 ‘만사형통’(萬事亨通)을, 구직자는 ‘고진감래’(苦盡甘來)를 가장 많이 선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적인 경제 한파가 몰아친 2008 무자년을 보내면서 민의를 외면한 채 문을 걸어 잠그고 파행을 거듭하는 여의도 국회가 국민들이 뽑은 ‘은인자중’과 상아탑의 대표들이 뽑은 ‘호질기의’ 구절을 한 번쯤 가슴속에 새겨 보아야 할 듯싶다.

박명식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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