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착자 내년 1000명… "사고땐 어쩌나" 한숨

안산보호관찰소 베테랑 보호관찰관인 이모(44)씨는 요즘 마음 편히 쉬는 날이 없다. 퇴근 후에도 언제 휴대전화기가 울릴지 몰라 앉은 자리는 불안하기만 하다. 호출 연락이 오면 곧장 출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9월 성폭행 범죄자에 대한 전자발찌 제도가 도입되면서 이씨를 비롯한 보호관찰소 직원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보호관찰 대상자 교화지도나 소재 파악 등 기존 업무도 과중한데 전자발찌 업무까지 더해진 탓이다. 전국 보호관찰소 전 직원이 전자발찌 비상대기조에 편성돼 있다.
평일 야간과 주말·공휴일에 운영되는 전자발찌 비상대기조는 돌발상황 발생 시 발찌 착용자 동선과 행동을 현장에서 확인해 중앙센터에 보고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 24시간 마음을 놓을 수 없다.
보호관찰 대상자 1300여명을 맡고 있는 이씨는 “관제센터에서 연락이 왔는데 출동을 하지 않아 성폭행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그 책임을 누가 지겠느냐”며 “기존 업무는 계획에 맞춰 일하면 되는데 전자발찌 대기조는 무척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이씨처럼 비상대기 업무만 추가로 떠안은 관찰소 직원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보호관찰소마다 보호관찰관 1명과 직원 1, 2명을 묶어 만든 전자발찌 전담팀은 평일에도 고유 업무 외에 전자발찌 업무까지 병행해야 한다. 일과 후에라도 출동명령이 내려지면 상황에 따라 전담팀도 현장으로 뛰어나가야 한다.
성폭행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도입된 전자발찌 제도가 시행 석 달째를 맞고 있지만 전문 요원은 단 한 명도 없다. 올 들어 두 차례 추진된 인원 확보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됐다. 제도만 만들어 놓고 인원이 확충되지 않은 탓에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식 인력 운영이 이뤄져 보호관찰소 직원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연말까지 200∼300명으로 예상되는 전자발찌 착용자는 내년 1000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대상자가 이렇게 급증하는데도 인력충원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착용자 추적 실패에 따른 성폭행 재범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내년에 영월, 해남, 제천 등 7개 보호관찰소 지소가 신설되면 인력 부족은 더욱 심각해진다.
한 보호관찰관은 “올해야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내년에 착용자가 급증하면 감당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법무부 등에 따르면 지식경제부는 최근 ‘공무원 인원 동결’을 이유로 행정안전부와 직제 구성 등 협의까지 마친 전자발찌 요원 61명 배정 계획을 무기 중단한 것으로 18일 확인됐다.
올 초에도 관제·운영요원 77명 배정 계획을 세웠다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정부 슬림화’가 강조되면서 무산됐다. 이에 법무부는 관제·운영 인원을 61명으로 줄여 행안부와 합의를 끝냈으나 이마저도 무기중단된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자발찌 운영 인원 확충 계획은 사실상 전면 백지화했다”고 말했다.
현재 전자발찌 중앙관제센터에는 센터장을 포함해 12명이 근무하고 있지만, 이들도 각 지방 보호관찰소에서 파견된 인원이라 직제상에도 편성돼 있지 않다.
전자발찌 제도는 2006년 용산 초등학생 성폭행·살해 사건을 계기로 입법 논의가 이뤄져 지난 9월부터 시행됐는데, 9월 말 가석방 사범에게 처음으로 부착된 뒤 현재 70여명이 전자발찌를 찬 채 생활하고 있다.
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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