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차관보의 이번 방북은 상당히 중요한 시점에 이뤄졌다. 불능화 시설 복구를 시작한 북한은 이번 주 핵 재처리시설을 재가동하겠다고 통보한 상태다. 실제로 재처리시설을 가동해 플루토늄 추가 생산에 나선다면 북핵 협상은 존립 자체가 흔들리는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이번 수석대표 협상에 따라 북핵 협상의 운명이 좌우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은 이와 관련해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로버트 우드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북한이 힐 차관보를 초청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에 북한이 손을 내민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2006년 10월 핵실험을 벌였던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을 복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며 압박책을 펴고 있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1일 “최근 풍계리 핵실험장 주변 여러 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것이 포착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북한은 이번 북미 협의에서 만족스러운 결론이 나지 않으면 플루토늄 재생산은 물론 2년 전과 같은 핵실험까지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관건은 힐 차관보가 들고 간 ‘보따리’에 있다. 검증 계획 중 북한이 강하게 반발하고 있는 ‘샘플 채취’와 ‘미신고 시설 방문’에 대해 얼마나 유연한 협상을 벌이느냐가 핵심인데, 전망이 낙관적이진 않다. 외교 소식통은 “미국은 북한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한 형식의 양보는 몰라도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과 직결된 검증 내용에선 양보하기 힘든 상황”이라면서 “북한도 미국 대선을 고려해 고자세로 협상에 임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상민 기자 21smi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