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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날리의 봄. 현란한 붉은색이 인상적이다. |
만약 한국에 머물고 있다면 그저 에어컨 바람이나 쐬며 무더위를 견디겠지만, 이곳은 남한의 33배나 되는 거대한 대륙 인도다. 평원 지대가 최고 48도까지 치솟으며 무더위 신기록을 경신할 때, 북부의 산간지방은 25도 안팎의 시원한 날씨를 자랑한다. 바로 히말라야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흔히 히말라야라고 하면 네팔을 떠올리는데, 네팔은 단지 세계 최고봉이 많이 모여있을 뿐, 히말라야 산맥 전체로 본다면 인도 쪽에 더 넓게 분포되어 있다.
히말라야(Himalaya). 고대 산스크리트어로 ‘눈(Hima)의 거처(Alaya)’라는 뜻을 가진 세계의 지붕. 바로 그 히말라야의 초입인 히마찰 프라데시(Himachal Pradesh)주의 마날리라는 마을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찰(Chal)은 산스크리트로 언덕이라는 뜻이다. 즉 눈의 언덕쯤으로 해석되는데, 고대 인도인들이 보기에 3000m쯤은 언덕에 불과했다.
험준한 산지인 탓에 이렇다 할 공항도 없는 이곳. 절벽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놓인 2차선 차도 구간에서의 8시간을 포함해 총 16시간이나 버스로 달려야 한다. 전날 오후 6시 델리를 떠난 버스는 다음날 오전 10시나 돼야 마날리에 도착한다. 지겨울 법한 이 여행의 백미는 아침이었다. 불편한 좌석 탓에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지쳐갈 때쯤 여명이 밝아오고 버스 커튼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과 함께 거대한 설산이 여행자들의 눈에 들어온다.
넓게 펼쳐진 계곡, 벚꽃과 살구꽃이 펼치는 점묘화 같은 아름다움. 무엇보다 영롱한 아침 햇살을 반사시키며 마음을 홀리는 설산까지. 밤새 겪었던 처절했던 고통은 단 한순간, 하나의 풍경 속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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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날리 곳곳에는 우리네 불탑과 비슷한 작은 힌두사원들이 모셔져 있다. |
인도의 마을, 계곡 하나하나에 힌두교 신화가 없는 곳이 없지만, 마날리는 그중에서도 특별한 신화 속 무대이기도 하다. 아주 오랜 옛날. 인도의 평원에 살던 마누라는 사람이 있었단다. 그는 어느 날 말하는 물고기를 잡게 된다. 물고기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을 죽이지 말라고 마누에게 빌었다. 마누는 결국 물고기를 키우다, 더 이상 키울 수 없을 정도로 물고기가 커지자 강에 놓아준다. 물고기는 마누를 떠나며, 곧 세상에 홍수가 닥칠 예정이니 커다란 배를 만들어 동물의 새끼와 식물의 종자를 보존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배가 완성될 즈음 진짜 홍수가 발생한다. 마누의 배는 약 40일간 망망대해를 방황하다 지금 말하는 이 땅. 마날리 산 중턱에 정박한다. 성서에 나오는 대홍수 이야기와 비슷한 이 신화는 한때 수많은 비교종교학 학자들을 열광의 도가‘니에 빠트렸다고 한다.
마날리라는 말은 마누의 집이라는 의미다.
그저 인도의 산간 마을로 일부 열정적인 순례자들의 땅이었던 마날리가 휴양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40여년 전이다. 베트남전에 대한 대규모 반전 운동, 프랑스의 68혁명, 일본의 안보투쟁 등 1960년대 말을 뜨겁게 달궜던 변혁의 기운이 사그라지며 사랑과 미소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히피들이 등장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히피들은 전 세계, 특히 아시아 일대를 유랑하며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했고, 여행지로서의 인도가 발견되었다.
히피들은 인도 전역을 유랑하며 말 그대로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풍광 좋은 관광지를 개발해 냈다. 북부의 마날리, 남부의 고아 해변, 그리고 서부의 푸슈카르까지….
마날리의 자유분방함은 40여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히피들이 들어와 하룻밤 유숙을 하거나 농가의 방을 빌려 지내던 오래된 집들은 이제는 게스트 하우스라는 간판을 달고 있다. 전원풍으로 한국의 펜션을 방불케 하는 좋은 곳도 있지만, 아직까지도 전형적인 농가의 모습을 갖춘 채, 1층은 외양간으로 2층에만 객실을 들인 곳도 있다. 여름이면 외양간 특유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나무를 얼기설기 조립해 만든 삐거덕거리는 오래된 느낌이 좋아 많은 사람들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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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을 감싸안은 마날리 마을의 풍경. |
마을 초입을 가득 메운 거대한 삼나무 숲은 북구 노르웨이의 신화 속 풍경을 연상시키지만, 시바신을 모시는 사원의 사제들은 향을 피워올리며 이곳이 인도임을 강조한다.
인도인들에게 마날리는 사과 특산지다. 이곳에서는 푸석거리는, 목이 멜 정도로 물기가 없는 인도사과를 맛볼 수 있다. 사실 마날리에서 사과는, 맛보다는 풍경이다. 가을철 나무마다 점점이 박혀 있는 붉은색의 묘한 유혹은 여행자로 하여금 길을 떠나게끔 만드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푸른 하늘, 완벽한 설산, 거인과도 같은 삼나무 숲에서 듣는 힌두교의 웅장한 대홍수 전설. 이 가을. 장마가 끝난 인도의 하늘은 어디나 청명하기 그지없다. 마날리의 숲길을 걸으며 사과 한입 베어 먹고 싶은 날이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마날리로 들어가는 관문 도시는 델리다. 인도 국내선 항공을 타면 마날리에서 3시간 떨어진 쿨루(Kullu)라는 마을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지프를 대절해 마날리로 갈 수 있다. 문제는 이 비행기가 60인승가량의 초소형 기종이라 사람들이 탑승을 꺼린다는 사실. 이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은 델리에서 버스를 이용한다. 무려 16시간의 긴 여정. 2006년부터 냉난방이 되는 볼보(Volvo)버스가 투입돼 그나마 편리해졌다. 마날리의 특산품은 송어와 사과주스다. 송어는 빙하가 녹은 비아스 강에서 손으로 잡는데. 최근에는 수요가 급증하며 양식 송어가 점점 자연산을 대체하고 있다. 1983년 아시아 농업 특산품 전람회에서 동메달을 땄다는 사과주스는 이 일대의 자랑거리. 한국에서 사 먹는 것과 같은 노르스름한 투명의 느낌이 아니라, 집에서 갈았을 때 나타나는 탁한 느낌이다. 한 병에 700원가량인데 묘한 중독성이 있어 자꾸 찾게 된다.
마날리로 들어가는 관문 도시는 델리다. 인도 국내선 항공을 타면 마날리에서 3시간 떨어진 쿨루(Kullu)라는 마을까지 들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 지프를 대절해 마날리로 갈 수 있다. 문제는 이 비행기가 60인승가량의 초소형 기종이라 사람들이 탑승을 꺼린다는 사실. 이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은 델리에서 버스를 이용한다. 무려 16시간의 긴 여정. 2006년부터 냉난방이 되는 볼보(Volvo)버스가 투입돼 그나마 편리해졌다. 마날리의 특산품은 송어와 사과주스다. 송어는 빙하가 녹은 비아스 강에서 손으로 잡는데. 최근에는 수요가 급증하며 양식 송어가 점점 자연산을 대체하고 있다. 1983년 아시아 농업 특산품 전람회에서 동메달을 땄다는 사과주스는 이 일대의 자랑거리. 한국에서 사 먹는 것과 같은 노르스름한 투명의 느낌이 아니라, 집에서 갈았을 때 나타나는 탁한 느낌이다. 한 병에 700원가량인데 묘한 중독성이 있어 자꾸 찾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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