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로마노에 로마의 모든 것이 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남쪽으로 길을 걸으면 로마시대의 생활의 중심지였던 ‘포로로마노’가 나온다.
여기에는 상거래, 재판, 정치, 종교 등의 지나간 그림자를 살펴볼 수 있다. 로마는 이곳을 중심으로 움직였었다. 이곳은 돌아보는데 족히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곳이다. 입장료가 있다. 지나간 시절의 흔적이라서 온전치 못하지만 그럴싸한 곳이 많다. 진정 중요한 곳을 주마간산하는 아쉬움을 남기고 간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凱旋門을 지나서면 그 유명한 원형경기장 ‘콜로세움’이 있다. 그 시절 인간과 인간, 인간과 맹수가 서로 싸우게 하던 지배층의 잔인한 상징물이 콜로세움이다. 로마인들은 뛰어난 백성들이었다. 로마는 충분히 유럽의 Mecca 가 될 수 있는 중심이다.

로마인들은 원형의 완벽함을 이해했다. 콜롬세움은 많이 붕괴되었지만 원형을 복원할 수 있게 부서져있다. 이들의 풍요에서 온 가학적(Sadistic) 취미를 즐겼던 극단적인 장소가 원형경기장이다.속 깊은 친구들은 이러한 ‘아이러니’를 짐작할 것이다. 마땅히 할 일이 없어서! 그러나 그것이 법이었다.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1백만의 인구를 가진 로마가 5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을 소유하였다는 것은 여러가지 시사하는 바가 많다. 흘린 침을 닦고 그 경기장에서 맹수와 맹수, 사람과 맹수,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혈투 그것이 전부였다.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의 함성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가?
이러한 합일적인 군중적 취미의 호불호, 시비, 선악을 희석시켜줄 역사의 인물들을 찾고 싶다. 이들의 안일과 풍요가 만들어낸 병적인 호사취미를 여기에서 느껴본다.
여기는 현장! 부서진 콜롬세움.
어딘가에서 온 여행객들을 향해 가이드는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과연 이들은 이런 사실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이 새디스틱(Sadistic)한 원형경기장이 아마 시어저의 갈리아 원정후 프랑스의 리용(원명 루그두눔)으로 갔다가, 다시 한번 피레네 산맥을 넘어 스페인 리베리아반도로 가면서 투우장으로 발전되었다. 그 동안 싹텄던 인본주의(人道主義)의 탓일 것이다. 옆에 관광안내원의 설명을 귀 너머로 들으며 지금 그 역사의 흔적을 돌아보고 곱씹어본다.
원형경기장 바로 남쪽에는 폭군 네로의 신전이 있다. 역사는 네로를 용서하였는가? 세월은 분노를 식히고, 먼 공간은 증오를 녹였다. 잿불위에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漫行을 되새김질하며 천천히 음미하고 있을 뿐이다. 네로를 술자리에 초대하여 그를 보면 기뻐하고 만끽(滿喫)하며, 저작(咀嚼)하고 있다. 네로는 어느새 관광 상품화 되어버렸다.
최악도 관점과 입장을 바꿔보면 완전히 헷갈리게 돼버린다. 착취와 사치에 가득 찬 로마사를 사무친 마음 없이 단지 즐기고 있을 뿐이다. 이 역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풀잎'의 김수영의 시나 한 수 읊고 가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王宮 대신에 王宮의 음탕 대신에
五十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二十원을 받으러 세번씩 네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앞에 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 중략...........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참 인간의 숨겨진 내면과 본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성찰하게 한다.
김수영 시인! 당신은 얼마나 많이 마셨습니까? 당신의 시를 읽으면 당신이 마셨던 술병의 종류와 도수를 알 것 같습니다. 본능에 대한 이성의 투정이 많이 느껴집니다. 김 시인님, 언젠가 제가 같은 피안의 세계로 갈 때 좋은 술 한 병 챙겨 가지요!
로마의 역사는 서양사의 기둥이다. 초석은 그리스 헬레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네로는 그리스 문화를 동경하고 심취해서 시를 쓰고, 작곡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래 실력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노래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음유시인처럼 詩를 읊으면서 그리스신화의 아폴론 신이 주로 가지고 연주하던 '리라'를 연주했다. 이것은 나중에 하프의 모태가 되었다.
어느 날 그에게 詩想이 떠오르지 않았다. 네로는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위대한 시를 쓰고 싶었다. 로마를 불태우면 시상이 떠오르지 않겠는가? 네로는 마침내 중대한 결심을 하였다. 그래서 불을 질렀다. 그는 불타는 로마를 보면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그 때 나온 시어가 “아! 로마는 불타고 있군!”이라는 말이라고 전해진다.
로마는 풍요와 환락의 도시였다. 로마에 환호하는 자들이여 이것을 구체화해서 생각해 보시라. 이 詩句가 가장 인류사에서 가장 비싼 대가를 치른 문장이라고 正史가 아닌 野史에서는 전한다. 로마의 화재에 네로가 방화범이라는 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사실 後世 史家들은 이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네로는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도 탓으로 돌리고 그들을 처형시켰기에 후세 기독교도들에게 복수를 당한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다. 그리고 심증이 가는 증거로 네로는 기다렸다는 듯이 화재수습을 하고 ‘새 도시 계획’을 내놓았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것일까? 네로는 젊은 나이에 황제가 되어 젊은이답게 튀는 행동으로 한편으로 인기가 좋았지만 여러가지 실정이 겹치고 국정이 문란해지면서 반란도 일어난다.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콜로세움 옆으로 가면 식료품 ‘시장’이 있다. 여기에서 쌀과 닭 그리고 감자와 양파를 샀다. 시장은 언제나 활기가 넘쳐난다. 여기에서 남서쪽으로 한참 가면 그 유명한 카라칼라 浴場이 있다. 이 욕장은 당시 한번에 1600여명이 함께 목욕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엄청난 파격, 대단한 환락의 현장을 우리는 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물에서 나온 것에 대해서 주목하고 넘어가자. 정자와 난자라는 물이 결합하여 생명이 잉태되면 인간의 양수 속에 긴 줄을 통해서 영양과 산소를 공급받는다. 인간이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모태의 고향이 물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천일생수(天一生水)는 시작을 의미하는 말이다. 물이 없었다면 모든 창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의 물이 없었다면 내가 있을 리 만무하다.
주목, 속도조절! 욕심을 너무 내지 말자. 너무 서두르면 눈으로 담을 수는 있지만 가슴에 담을 수는 없다. 등에 무거운 짊도 없으므로 홀가분하게 로마를 즐겼다. 수박 겉핥기식 맛없는 로마관광은 포기한다.
로마는 너무 거대하다. 그리고 기억하건대 로마는 모든 것이 유적지라는 사실이 나그네를 압도한다. 마음은 그만두라하고 나의 이성은 열심히 걷고 학습하라고 외친다. 지도를 들고 목표지를 향해 가는 것이 잠시 짜증스럽지만 참고 계속했다. 우리는 이런 얘기를 하면서 나름대로 로마를 풀어서 다시 내 안에 담고 있는 작업을 했다.
땀이 말라 피부에 허옇게 앙금이 그려질 때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우리는 종착역, 테르미나로 갔다. 그 종착역 가까이서 버스나 지하철을 탈 수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지만, 로마의 많은 길은 테르미나 역을 통한다.
/ 김규만 (한의사) transvill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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