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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돌 다시 뛰는 한국] 보릿고개·오일쇼크·IMF 딛고 선진한국 일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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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계를 놀라게 한 한강의 기적 우리나라는 건국 후 60년 동안 눈부신 경제발전을 일궈냈다. ‘우리도 잘 살아보자’는 구호 속에 경제건설이 이어지고, 그 결과 매년 되풀이되던 ‘보릿고개’라는 대물림은 70년대를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졌다. 한국경제를 이끌어온 주인공은 수출 역군들이다. 그들은 전 세계 구석구석을 누비며 ‘메이드인 코리아’를 팔았다.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140개 국가 중 경제규모 세계 13위에 오른 나라는 오직 한국뿐이다. 인구 4800만명인 우리나라의 무역규모는 9억명의 아프리카, 4억명의 라틴 아메리카보다 많다. ‘한강의 기적’, ‘압축성장의 신화’라는 말은 괜한 칭찬의 말이 아니다. 식민지배를 벗어나자마자 6·25 전쟁의 참상을 겪은 동북아의 신생독립국이 이렇게 발전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해 11월 무역협회 직원들이 수출입 규모 7000억달러 달성을 알리는 전광판 앞에서 화이팅을 외치며 자축하고 있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60년= 건국 당시 경제통계는 당시 중앙은행이었던 조선은행이 남긴 몇몇 금융관련 지표뿐이다. 1948년 화폐발행액은 고작 4000만원. 이 가운데 3000만원이 은행 예금으로 맡겨졌다. 건국 후 1년9개월 지난 1950년 5월 독자적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을 설립하기 전까지 일제 강점기하에서 발행한 조선은행권이 유통됐다. 6·25전쟁으로 인해 최초의 한국은행권은 일본에서 인쇄한 뒤 미군 수송기로 국내에 들여와야만 했다. 전후 고물가 억제와 산업자금 확보를 위해 1953년,1962년 두 차례의 긴급통화조치가 단행되기도 했다. 
◇본격적인 경제성장이 시작된 1962년 경제개발5개년 계획 모형 전시를 알리는 선전탑.

정전 직후인 1953년 국내총생산(GDP)은 13억달러, 1인당 국민소득(GNI)은 67달러였다. 아프리카의 평균에도 못미치는 최빈국이었다. 본격적인 경제발전은 박정희 대통령 집권 이후 시작된다. ‘하면 된다’, ‘잘 살아보자’는 의식개혁 운동이 시작되고, 모든 국가재원은 경제기반 만들기에 투입됐다. 1960년대 이후 정부가 주도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면서 놀라운 결과가 만들어졌다.

국민의 근검절약 속에 경제개발이 추진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GDP는 1972년 100억달러를 돌파한뒤 1986년에는 1000억달러를 뛰어넘었고 2007년 1조달러에 육박하는 9571억달러를 기록했다. 1인당 GNI도 1977년에 1000달러, 1995년에 1만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해에는 2만45달러에 달해 선진국 문턱에 올라섰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세계 49위였다. 우리나라는 60년 만에 GDP는 약 740배, 1인당 GNI는 약 300배나 늘리면서 200여개국 가운데 당당히 13위의 경제강국으로 우뚝 섰다.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를 거쳐 지식정보사회로 진화하는 데 영국은 200년, 독일과 일본은 100년이 걸렸지만 우리나라는 30년 만에 해내는 기적을 일궈냈다.

◆수출로 일궈낸 초고속 성장=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정부수립 기념축사에서 “국제통상과 공업을 우리나라의 필요에 따라 발전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이승만 정권 때 만들어진 ‘3개년 개발계획’은 후일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이어진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핵심은 수입대체산업을 일으키고 수출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수출이 경제성장의 견인차로 나선 것은 박정희 정권이 ‘수출지향형 근대화 정책’을 펴면서부터다.

정부와 기업은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구호 아래 수출과 외화획득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1948년 2200만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은 1964년 1억달러 선을 처음으로 넘었다. 강력한 수출 진흥정책이 더욱 속도를 낸 결과 수출은 1971년 10억달러를 돌파하고, 1977년 100억달러 고지에 올라섰다. 당초 목표였던 1981년보다 4년 앞당겨 거둔 실적이었다.

1986∼1988년엔 이른바 ‘3저 호황’을 바탕으로 연속 무역흑자를 냈으며 1995년 수출은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정부 수립 뒤 100억달러 달성까지 29년이 걸렸지만 100억달러 돌파부터 1000억달러까지는 18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때부터 2004년 2000억달러를 넘어설 때까지는 9년이 걸렸다. 이어 2년 만인 2006년 3000 억달러를 돌파하면서 한국은 세계 11대 수출대국 반열에 올랐다. 1948년 2200만달러에 불과했던 수출은 지난해 3714억달러로 무려 1만6881배 증가했다.

정부 수립 당시 수출품은 중석 등 광산물과 농수산물이 전부였다. 1964년에도 한국의 최대 수출품은 어패류(수출의 11.8%)였다. 공산품이라고 해봐야 합판(9.6%), 모직물(9.3%)이 주류였다. 하지만 2008년 상반기 수출을 보면 반도체, 휴대전화를 비롯한 첨단 전기·전자제품이 전체 수출에서 32.3%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다. 자동차와 자동차부품(12.4%), 석유화학 등 화공품(11.0%), 일반기계(9.1%), 선박(8.8%)도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농수산품을 포함한 1차 산품은 모두 합해야 1.8%에 불과하다.

◆“시련을 딛고 일어서다”=한국 경제가 지금에 이르기까지 탄탄대로만 걸었던 게 아니다. 건국 후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6·25전쟁이 터졌다. 하지만 정전 후 체제 대결은 오히려 압축성장을 가능하게 했다. 1975년까지만 해도 남한의 경제력은 북한에 뒤졌지만 불과 30여년이 지난 지금, 1인당 GNI는 17배, 수출은 404배로 남한이 북한을 앞서고 있다.

해방 이후 건국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사회주의 대신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택한 우리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1, 2차 오일쇼크도 우리 경제를 위기로 내몰았으며, 1997년 말에는 외환보유액이 바닥을 드러낸 외환위기로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렸다. 못 이겨낼 위기는 없었다. 위기 때마다 똘똘 뭉친 힘으로 위기를 이겨냈다.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8년 달러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국민적인 ‘금모으기’ 운동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홍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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