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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조선의 성(城)으로 추정되는 영평부(永平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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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1-06-24 17:48:23 수정 : 2011-06-24 17: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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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준비에 혈안이 되어있는 중국은 마치 비상사태와 같은 상황이다. 관광객은 일단, 테러와 관련이라도 지으려는 태세다. 

대련공항에서부터 카메라를 압수당하고 나니 손발이 잘린 셈이 되었다. 일행의 카메라로 '우리 역사 찾기'를 계속했다. 마치 도둑질을 하듯 가슴을 조이며 공식·비공식 지역을 찾아다녔다. 

그 중 기자조선의 성(城)으로 추정되는 영평부(永平府)를 소개한다.

영평부(永平府)라는 안내비석이 있다.

성문이 옹성을 연상 시킬 정도로 둥근 형태를 띄우며 평면인 성벽보다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데, 문은 둥근 아치형으로 이루어졌다.

영평부(永平府)는 난하 하류 갈석 부근에 있다. 난하 하류는 고조선 및 진시황과 깊은 관련이 있는 곳으로, 명나라 시대 '대명일통지'라는 책에는 “난하 하류에 영평부가 있고,  그곳에는 기자가 정착했다는 조선성이 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고금도서집성(古今圖書集成)' ‘지지(地誌)’에는 만리장성의 안쪽, 영평 땅에 '조선성', '조선현'의 지명이 기록되어 있다. 

'김창업이 쓴 연행록'을 보면 '조선 사람들이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것을 보았다'고 기록하였다.
영평부(永平府)는 한(漢)나라 때는 우북평(右北平), 당나라 때는 노룡새(老龍塞)라 하는 중국의 변경 도시였다. 

이 성의 벽들은 여러시대에 걸쳐 쌓여진 것이다. 높이가 10m에 달하며 표면에는 벽돌로 되어있으나 가장 안쪽 내부는 흙벽으로 되어 있다. 성벽 주변에는 시대를 판단하기 힘든 기와편들이 널려있다.

한 눈에도 방어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도록 벽이 높고 단단한 구조로 되어있다.

문을 측면에서 바라본 모습. 마치 아치의 형태처럼 앞으로 돌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후 북방 유목민족들이 정권을 세우면서 도읍지의 근교가 되어 민가와 점포들이 많아졌고 더불어 사대부들도 늘어났다고 한다. 

성의 중앙에는 조선관(朝鮮館)이라는 조선 사신들의 숙소가 있었다. 조선의 사신들이 중국으로 갈 때에 거칠 수밖에 없는 지역들이 있는데, 그 지역들은 대부분 고조선 또는 고구려의 영토였었다. 한양을 출발한 사신들은 의주에서 압록강 하구를 건너자마자 도착하는 봉성에 닿았고, 여기서부터 사행길에 올랐다. 

영평성(永平城)의 성문은 이중구조로 되어있다. 성문의 구조가 분명하게 보인다.

영평성(永平城) 안쪽에서본 모습

다양한 재질을 사용해가면서 다양한 모습으로 오랜 세월을 거치며 축성되었음을 보여준다.


서쪽으로 가면서 주부(州府)와 공참(公站)마다 조선관(朝鮮館)이라는 찰원(察院)이 있어 조선 사신의 숙소로 제공되었다. 건륭제는 영평부(永平府)에 와서 조선관이 허물어진 것을 보고, 다시 찰원을 수리하였다.


/윤석하 (사진작가) 2908y@naver.com
사진 원본은 http://www.beautia.co.kr/ (昔河사진문화연구소)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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