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자신의 자식을 낳아 대를 이으려는 욕구는 같다. 신은 신대로 후손을 많이 두어 자신의 영역이나 영향력을 확대시키려하고, 유한한 인간은 인간대로 자신의 흔적을 길게 유지하려는 욕구가 있어서이다. 자식이 없으면 어떻게든 그 자식을 얻기 위해 삼신할미에게 빌기도 하고, 좋다는 음식이나 약재를 구하는 등, 온갖 정성을 들여 자식에 대한 애착을 부리는 것도 우리의 관습이다.
판디온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테네의 왕위에 올랐지만 숙부인 메티온의 아들들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신세가 되었다. 왕위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죽을 위기에 몰린 판디온은 이웃나라인 메가라로 피신했다. 평소 아버지와 교분이 있었던 메가라의 왕은 필라스였고, 필라스에게는 아리따운 공주 필리아가 있었다. 나라를 잃고 도망자의 신세가 된 판디온은 그나마 필리아와의 정을 쌓으면서 도망자의 서글픔을 잊고 지냈다.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서로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남몰래 만나 사랑을 속삭이곤 했지만, 그 사실을 알게 된 메가라의 왕 필라스도 기꺼이 이들의 사랑을 수용했다. 판디온의 반듯한 용모와 용기와 지략을 알고 있었던 왕은 이들을 결혼시키기로까지 했다. 도망자의 신세였지만 판디온은 아름다운 필리아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어 단란! 한 가정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권력의 중심에서 서서히 자신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에게 각별한 애정으로 친 아들처럼 대했던 메가라의 왕 팔라스가 죽자 판디온은 메가라의 왕위에 올랐다. 아름다운 왕비, 권력을 차지한 판디온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그렇게 아름다운 날들을 보냈지만 자식을 두지 못했다. 그러던 끝에 그들은 스키리오스의 아들 아이게우스를 양자로 삼아 친 아들 처럼 키웠다.
아이게우스는 자라면서 용기가 뛰어났고, 늠름한 용모를 갖추어서 이들의 사랑을 독차지 했다. 아이게우스가 이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을 때, 공교롭게도 판디온과 필리아사이에서도 사랑스러운 자녀들이 태어났다. 첫 아들이 태어나자 이름을 니소스라 지었고, 이어서 팔라스, 리코스가 태어났다.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했었지만 처가살이로 메가라의 왕위에 올라 행복한 말년을 보냈던 판디온이 죽자 그의 장남 니소스가 메가라의 왕위에 올랐다. 아이게우스를 비롯한 나머지 아들 3형제는 힘을 합해 아티카를 공격했다.
아티카는 메티온의 아들들이 차지하고 있었지만 이들 형제들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아티카를 차지하면 3형제서 사이좋게 3등분하기로 약속을 했지만 막상 아티카를 차지하자 지략이 뛰어나고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아이게우스가 재빨리 혼자 독차지하고 말았다. 이에 다른 형제들이 항의를 했지만 감히 아이게우스의 기세를 꺾을 수가 없었다.
형제들을 몰아내고 아티카를 차지한 아이게우스는 그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를 데려다가 아내로 삼았다.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갖지 못했던 그는 유난스럽게도 자식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하지만 자식이 생기지 않았다.
그러면서 점차 세력을 확대한 아이게우스는 아테네 전역을 차지했다. 아테네를 차지한 그는 자신의 아내를 내버려 두고 다시 아름다운 여자를 물색하여 다시 재혼했다. 그녀와 다시 행복한 나날을 보냈지만 그렇게 바라는 자식은 생길 기미조차 없었다. 생각다 못한 그는 자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델포이의 신탁에 묻기로 했다. 그가 델포이의 신탁에 문의하자 아테네에 도착할 때까지는 절대로 술이 담긴 부대를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된다는 신탁을 받았다. 그 신탁은 애매모호하기만 했고 시원한 대답은 아니었다.
궁금증을 못 이긴 아이게우스는 지혜가 뛰어는 친구, 트로이젠의 왕 피테우스에게 그 의미를 해석해 달라고 요청하기로 했다. 친구 피테우스를 만나기 위해 델포이에서 출발하여 트로이젠으로 행해 가다가 그는 코린토스에서 잠시 여장을 풀기로 했다. 그가 코린토스에서 쉬고 있을 때 아주 아름답고 매혹적인 여인이 찾아왔다.
그녀의 이름은 메데이아, 나중에 알게 되겠지만 메데이아는 아이게우스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여인이다. 그녀는 그를 찾아와 애절하게 간청을 했다. 그녀의 고혹적인 미모에 호감이 있었던 아이게우스는 자신을 찾아온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곳에 아테나 신전을 지어달라고는 부탁했다.
“아이게우스 님, 나는 당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아요. 만일 당신이 이 곳에 아테나 신전을 지어준다면, 나는 그 보답으로 내 마술을 사용하여 당신이 원하는 자식을 낳을 수 있도록 해드리겠어요.”
아이게우스는 그녀의 청을 따라 기꺼이 약속을 하고, 부하들을 시켜 신전을 짓게 했다. 그녀의 청을 들어준 아이게우스는 다시 길을 재촉하여 피테우스에게로 갔다. 트로이젠에 도착한 아이게우스는 친구 피테우스를 방문했다.
“여어, 아이게우스, 자네가 당당히 왕위에 올라 내 집을 방문하다니 영광일세. 그려. 그런데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기에, 여기까지 웬 일인가?”
피테우스의 환대에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면서 아이게우스는 만면의 미소를 띠며 대답한다.
“실은 내가 두 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자식이 없네. 그래서 델포이에 가서 신탁을 받았는데 말이야,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되네. 그래서 지혜로운 그대에게 그 의미를 알아보고 싶어서 온 걸세.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 신탁에서 뭐라고 하던가?”
“글쎄, 저 술 부대 말일세. 절대로 아테네에 도착할 때까지는 저 술 부대를 열지 말라는 걸세. 대체 술 부대와 자식을 낳는 거와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지, 원.”
“그래....................”
신탁의 내용을 들고 난 피테우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면서 필시 그 신탁의 내용은 아이게우스를 통해 위대한 영웅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신탁의 내용은 ‘아이게우스가 아들을 얻을 것인데, 아테네로 돌아가지 전에는 절대로 술에 취해서 다른 나라의 여인과는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를 알아차리자 피테우스는 순간적으로 자신의 후손을 아테네의 왕으로 삼고 싶었다. 피테우스는 그 의미에 대한 해석을 재촉하는 아이게우스를 향해 그 의미를 쉽게 이야기 하지 않고 말을 둘러댔다.
“음, 내 짐작하는 바는 있네, 틀림없이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네. 좀 더 정확한 해석을 해보도록 함세. 그건 그렇고 모처럼 만난 친구 간에 이게 뭔가. 일단 술이나 거하게 한 잔 나누면서 정담을 나누세.”
피테우스는 그를 이끌고 아름다운 섬 스파이리아라는 작은 섬에 데리고 갔다. 그리고는 아주 멋진 정자에 자리를 잡고 그와 마주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여행길에 지친 아이게우스는 피테우스가 주는 술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모처럼 마신 술은 가슴을 시원스럽게 씻으며 속을 훑고 내려가는 듯 한 쾌감을 주었다. 서로 권하며 마시다 보니 어느 새 거나하게 취기가 올랐다.
그러다 보니 만취한 아이게우스는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었다. 피테우스는 아이게우스를 침실로 들이도록 하인들에게 일렀다. 그리고는 자신의 딸 아이트라를 불러 일렀다.
“내 사랑하는 딸 아이트라야. 저 방에는 내 친구 아이게우스가 잠들어있다. 네가 들어가서 유혹하여 임신을 하도록 하여라. 필시 나중에 네 몸에서 지상 최고의 영웅이 태어날 것이니, 너로서도 영광이요. 우리 가문에도 최고의 영광이 될 것이니라.”
효성이 지극했던 아이트라는 아버지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또한 최고의 영웅을 낳는다는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렜다. 아이게우스의 침실로 기어들어간 아이트라는 아이게우스를 유혹했다. 잠결인지 술김인지 부드러운 살결이 그의 다리를 휘감았다. 아이게우스는 황홀감에 빠져 유쾌한 기분이 되었다. 아름다운 살결이 그의 가슴에서 녹아드는 것 같았다. 잠자고 있던 그의 남성이 불끈 살아 올랐다. 여인의 교태소리가 그의 귀를 간질였다. 격렬한 그의 몸짓이 부드러운 여인의 살결 속으로 깊이 침투하기 시작한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 이게 꿈이라면 절대로 깨지 않았으면 싶었다.
아이게우스와 아이트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다음 주에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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