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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역사·문화 배운 외국인 한국사랑이 저절로"

입력 : 2008-07-11 19:05:34 수정 : 2008-07-11 19: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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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부터 44년간 해외서 한국어 교수생활

조지워싱턴대 동아시아 어문학과장 김영기 교수
◇김영기 조지워싱턴대 동아시아어문학과장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국 관련 세미나의 90% 이상이 북한 핵, 한미 관계를 비롯한 정치 문제 아니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경제 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이렇게 적대적이고 험담을 불사하는 논쟁이나 물질적 경쟁의 주제를 다루면 한국에 대한 애정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외국인들이 한국을 사랑하고 존경하도록 하려면 한국 문화와 역사적 배경, 한국 정신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수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이 바로 한국어를 배우도록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 투자를 해야 합니다.”

1964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해 44년 동안 해외에서 한국어 교수 생활을 함으로써 최장수 한국어 교육 기록을 세운 김영기(67) 미국 조지워싱턴대 동아시아어문학과장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연구하고, 세계 속에 한국학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데 일생을 바쳐온 학자답게 한국어 보급의 필요성을 이같이 강조했다.

작고한 소설가 한무숙씨의 장녀로 한국어문학, 국제학 및 언어학을 가르치는 김 교수는 지난 3일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한 서적으로 뒤덮여 있는 조지워싱턴대 연구실에서 기자와 만나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세계화에 대해 식을 줄 모르는 열정을 쏟아냈다.

 
◇김영기 교수가 1990년 부모 금혼식 때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남편 베르트렁 르노 박사, 초대 주택은행장을 지낸 부친 고 김진흥씨, 김 박사, 모친 고 한무숙씨, 딸 경난 르노씨.
현재 미국에는 조지워싱턴대를 비롯해 85개 대학에 한국어가 정식 수강 과목으로 개설돼 있다. 김 교수에게 미국 대학에서 누가, 어떤 목적으로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지부터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요즘 학생들은 뭔가 다른 것, 뭔가 특별한 것을 해보려는 경향이 강해요. 학생들 가운데 특별한 것을 해보는 ‘지적 괴짜’, 아니 멋쟁이가 많습니다. 자신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한국학 공부에 몰두하는 한국계 학생들도 있어요. 이런 두 종류의 학생들이 결국 한국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학생들이 한국어 실력이 늘수록 한국을 사랑하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일입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지요.”

김 교수는 1963년 이화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직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로 유학을 가면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의 해외 전도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는 버클리대에서 언어학 석사를 받은 뒤 프랑스 파리 소르본대에서 프랑스어 교수법 석사급 학위를 받고 하와이대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영기 교수가 2006년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린 공로로 노무현 당시 대통령으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고 있다.
김 교수는 이후 한국어를 직접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미국에서 한국어 연구와 교육을 전문화하고, 한국어 교수들의 단체를 조직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1994년 재미한국어교수협회(AATK) 창설 이사로 참여했고, 33년 역사를 지닌 국제한국어학회(ICKL) 창립 회원일 뿐 아니라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그리고 유일하게 회장을 지냈다.

김 교수는 ICKL의 학술지 ‘한국언어학’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그는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연구지원 기관인 국립과학재단(NSF)의 언어학과 부과장을 지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2006년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린 공로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1983년부터 조지워싱턴대 강단에 서온 김 교수는 이 대학에 한국 언어 문화 프로그램을 도입한 주역이다. 그는 이 대학에 한국학 관련 5개 기금을 설치하는 데 기여했고, 어머니 이름을 딴 ‘한무숙 한국 인문 콜로퀴움(학술간담회)’을 설치해 미국인 교수 2명과 공동 운영하고 있다.

1986년 황병기 가야금 연주회로 시작돼 1995년 콜로퀴움 형식으로 정식 출범한 이 프로그램은 한국 인문학 토론의 장으로, 한국 문화를 미국에 알리는 창구로 자리 잡았다.

“남을 공부하고 이해하는 것이 자아 발견의 길이라고 강조하신 어머니의 뜻을 따라 한국의 정신, 문화, 전통을 세계 속에서 논의해 한국을 소개하고, 이를 통해 참석한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로 이 콜로퀴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유교, 불교, 무속 신앙, 기독교, 15∼20세기 역사에 기록된 여성, 김지하의 시, 음악, 건축 등의 주제가 다뤄졌다.

한국 문화와 역사, 동아시아 지역 문제에 대한 왕성한 저술 활동도 김 교수의 빼놓을 수 없는 업적으로 꼽힌다. 그는 ‘한국어 자음음운론’, ‘한글의 역사와 구조’, ‘한국 언어학의 이론적 쟁점’ 등 8권의 학술 도서와 수필집 1권, 50여편의 학술 논문과 20여편의 문화 관련 논문, 9편의 번역서 등을 냈다.

언어와 문화 분야의 권위자인 김 교수에게 한국의 심각한 사회 현안인 영어 교육 문제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다.

“한국에서 추진하는 영어 조기 교육은 나쁠 게 하나도 없어요. 말이란 어렸을 때 배울수록 잘 배우게 되니까요. 한국에 영어가 도입된다 해도 한국어가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캐나다 등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국가의 조사 결과를 보면 이중 언어 또는 복합 언어 사용자들의 언어 능력이 단일 언어 사용자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기유학은 단순히 하나를 더 배우는 게 아니라 잃는 것도 많을 것 같습니다.”

김 교수는 한국 대학의 세계화와 영어 강의 방법에 대해서도 대안을 제시했다.

“언어는 자연스런 분위기 속에서 잘 배울 수 있습니다. 한국 교수와 한국 학생들이 영어로 강의하는 시간에 어색함을 느끼면 영어가 늘지 않아요. 그러니 무조건 영어 강의 비율을 높이기보다는 외국인 교수와 외국인 학생들을 유치함으로써 강의실에서 자연스럽게 영어를 사용하는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김 교수는 버클리대에서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 도착한 다음날 외국인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에서 옆자리에 앉았던 프랑스 유학생과 뒷날 결혼했다. 세계은행 금융 고문으로 활동했던 경제학자 베르트렁 르노(68) 박사다. 그와의 사이에 안과 의사인 외동딸 니콜 경난씨를 두고 있다. 김 교수는 은퇴 계획을 묻는 질문에 “2002년부터 조지워싱턴대 동아시아어문학과장을 맡아왔고, 최근 선거에서 임기 3년 연장 결정이 내려졌다”며 미소지을 뿐이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



■김영기 교수 약력

●이화여대 영문과 졸업,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언어학 석사, 하와이대 언어학 박사

●미국 국립과학재단(NSF) 언어학과 부과장, 하워드대 교수, 조지메이슨대 교수, 국제한국어학회 회장 역임

●현재 조지워싱턴대 동아시아어문학과장, 재미한국어교수협회 이사, ‘한국언어학’ 편집장

●저서는 ‘한국어 자음음운론’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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