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콜] 연극 '거트루드'

"폭력은 끝낼 수 없는가" 햄릿 비틀기

연극 ‘거트루드’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햄릿’을 완전히 비틀었다. 관객은 극장에 들어서면서부터 범상치 않은 연극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것을 예상하게 된다. 공연장 입구에는 ‘클럽 엘시노어’란 간판이 걸려 있다. 공연장 안에는 화려한 조명이 쏟아지고, 붉은색 의자와 탁자가 눈에 들어온다. 관객은 마치 손님이 된 듯, 무대를 둘러싸고 있는 빨간색 긴 의자와 탁자에 앉아야 한다.

햄릿의 선친은 덴마크 왕이 아닌 클럽 엘시노어의 사장, 여왕 거트루드는 클럽의 안주인으로 바뀌었다. 형을 살해하고 거트루드와 결혼한 클로디어스는 쌍둥이로 태어나 형에 가려 살아야 했던 캐릭터로, 햄릿은 유흥업소 사장의 2세답게 단순하면서 욱하는 성격을 지닌 인물로 설정됐다.

극은 햄릿과 레어티즈의 결투 장면에서 시작한다. 표정은 진지하지만 결투용 칼은 긴 검이 아닌 단도다. 결투가 진행되면서 햄릿의 어머니 거트루드가 독배를 마실 순간이 다가온다. 하지만 그는 하품을 하며 결투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햄릿과 레어티즈, 클로디어스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정해진 대로 거트루드에게 독배를 들이키라고 강요한다. 거트루드는 그러나 “네 사람 모두 죽어야만 결론이 난다” “작은 폭력으로 큰 폭력을 막아야 한다”는 남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억지스러운지 조목조목 반박한다. 자신이 방에 쉬러 들어간 사이 레어티즈가 칼을 들고 침입하자 거트루드는 장총을 들고나와 세 남자를 진압하기에 이른다.

거트루드가 ‘피비린내 나는 게임’의 결말을 바꾸려 애쓸 때 죽은 줄 알았던 폴로니어스와 오필리어가 클럽 안으로 들어온다. 레어티즈가 더이상 아버지와 동생의 복수를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결말이 달라지지 않을까. 작품은 반전을 거듭한다. 결국 거트루드는 햄릿, 레어티즈, 폴로니어스와 함께 독배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닿게 된다. 살아 남은 건 내레이터인 호레이쇼밖에 없다. 하지만 상황은 또다시 바뀐다. 오랫동안 독에 노출돼 내성이 생긴 탓에 거트루드가 살아난 것. 거트루드는 몸을 일으켜 “이 감옥에서 빠져 나가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호레이쇼가 등 뒤에서 총을 겨눈다.

극작가 배삼식의 연출 데뷔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거트루드’는 퍽 새롭다. 관객이 익히 알고 있는 상황과 설정이 뒤바뀌면서 웃음을 자아내고, “받아들이느냐, 받아버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처럼 원작을 패러디한 대사도 재미를 안긴다. 무엇보다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운명을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던 거트루드가 강한 색깔을 가진 인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이 흥미롭다. 그런 점에서 거트루드가 끝까지 살아 남아 감옥을 빠져나가는 결말이 더 신선하지 않았을까 싶다. 결국 반복되는 폭력을 끝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려 한 것일까. 서정적인 음악과 함께 햄릿이 귀향길에 거트루드에게 보낸 편지를 낭독하며 맺어지는 결말도 선뜻 납득하기 힘들다.

이보연 기자 [e-m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