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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사기사 옥경원씨가 말하는 '멀티플렉스 10년'

입력 : 2008-04-15 18:15:02 수정 : 2008-04-15 18: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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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상영마다 조명·사운드 체크, 온도 습도 조절까지…단관시절엔 필름만 걸어놓고 쉬었는데"
◇옥경원 실장은 “현재 영사업계는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또 한 번의 과도기를 맞고있다”고 설명했다.
“11개 상영관을 혼자 책임지니 부담감이 컸어요. 당시 ‘타이타닉’을 가장 많이 틀었는데 혹시 상영 중 사고가 나지 않을까 얼마나 마음을 졸였던지….”

국내에 멀티플렉스가 들어온 지 어느덧 10년째. 1998년 4월 4일 서울 광진구에 한국 최초 멀티플렉스인 강변CGV가 문을 열었다. 당시 이 극장 영사기에 필름을 걸었던 이가 바로 현재 전국 CGV 영사실 총괄 책임자인 옥경원(40)씨다. 그는 “그동안 단관 개봉 시절과 멀티플렉스 시대를 모두 경험했다”며 “영화산업 격변기에 영사업계의 한 축을 담당했다는 자부심이 크다”고 소감을 밝혔다.

옥 실장은 멀티플렉스 영사기사 1세대다. 80년대 말부터 역삼동 계몽아트홀(현 웅진씽크빅아트홀)에서 일하다 강변CGV 개점 멤버로 합류했다. 당시 5명을 모집했는데 현재 4명이 남았다. 지금은 200여명의 직원을 거느린 CGV영사팀의 최고참이다. 국내 영사분야 최고 권위자인 그는 멀티플렉스 10년의 산증인인 셈이다.

멀티플렉스 체제는 영사업계에도 엄청난 변화를 불러왔다. 단관 시절엔 모든 게 수동이었다. 영화를 틀기 전 영사 기사가 직접 극장 조명을 끄고 출입문도 닫았다. 멀티플렉스에선 설비 자동화로 모든 시스템이 컴퓨터로 제어된다.

하지만 업무 강도는 더 세졌다. 과거처럼 필름을 영사기에 건다고 모든 업무가 끝나는 게 아니다. 영사기사는 조명과 사운드 체크는 물론 상영관 내 온·습도 조절까지 맡는다. 특히 매 상영마다 자막 위치와 화면비, 스피커 음향 밸런스 등을 일일이 조정해야 한다. 단관 개봉 시절엔 스크린 하나만 신경 쓰면 됐지만 복합상영관에선 기사 한 명이 몇 개관을 통제해야 한다.

“단관 시절엔 필름 하나 걸어놓으면 두 시간 정도 쉴 수 있었는데 지금은 꿈도 못 꿔요. 관마다 상영 시간대가 달라 계속 체크해야 하거든요. 잠깐 한눈팔면 바로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현재 전국 CGV 영사팀은 8시간씩 3교대로 근무한다. 업무 중엔 영사실 밖으로 나갈 수 없다. 그래서 식사는 도시락으로 해결한다. 화장실도 안에 있다.

초반만 해도 웃지 못할 해프닝이 많았다. 정전이나 시스템 오작동은 그렇다치고 어이없는 ‘인재’가 종종 일어났다. 1998년 여름 할리우드 영화 ‘스폰’ 첫 상영 땐 필름 순서가 바뀌어 스토리가 뒤섞이는 사고가 났다. 보통 영화 프린트 한 벌은 20분짜리 필름 5∼6롤로 구성되는데 영사기에 걸 때 순서가 뒤바뀐 것. 직원이 스위치를 잘못 눌러 전관에서 상영이 중지된 적도 있다.

“심지어 필름을 쏟은 경우도 있었죠. 영화 한 편을 여러 관에서 상영하니까 시간표에 따라 필름통을 각 관 영사기에 바꿔 걸어야 하는데 필름통이 커서 옮기다 떨어뜨린 거죠. 혼자서 다시 감으려면 7∼8시간은 걸립니다. 그나마 낮엔 다른 직원들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새벽 근무 때 일이 터지면 조조 상영 전까지 밤새 필름을 감아야 합니다.”

그는 “평소엔 있는지 없는지 모르다가 사고만 터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이 바로 영사실”이라며 “단관에서 멀티플렉스로 넘어가던 초창기에 적응이 안 돼 실수하는 직원이 종종 있었다”고 회고했다.

강변CGV는 단관 시대가 저무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한국 영화 시장은 본격적인 멀티플렉스 시대로 접어든다. 롯데시네마 일산점(1999년)과 메가박스 코엑스점(2000년) 등이 잇달아 문을 열었다. 멀티플렉스는 영화 산업의 파이를 키우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497개였던 전국 스크린 수는 현재 2058개로 크게 늘었다. 약 5000만명이던 연간 관객 수도 1억6000만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멀티플렉스가 영화 지형을 이렇게 바꿔놓을지 아무도 몰랐다. 당시는 IMF사태 직후라 과연 대규모 자본이 투입된 물량공세가 시장에서 통할지 의문이었다.

옥 실장은 “멀티플렉스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강변CGV는 영사기사를 양성하는 보급 창고 역할을 했다”며 “침체에 빠진 극장가를 살리기 위해 영사업계도 서비스 향상에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이성대 기자 karis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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