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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 삶]가야금으로 ‘렛 잇비’를…국악 세계화 '20여년 헌신'

입력 : 2008-03-26 20:25:09 수정 : 2008-03-26 20:2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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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 김일륜 교수 “나는 가야금과 사랑에 빠졌다고 말합니다. 사랑에 빠지면서 그 기쁨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커지게 된 거죠.” 대중음악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에도 가야금으로 연주한 비틀스의 ‘렛 잇비(Let it be)’, 요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은 이제 너무나 친숙한 곡이 됐다. 이처럼 가야금이 대중과 친해지게 된 데에는 김일륜 교수(48)의 공이 크다. 가야금으로 서양음악을 처음 연주하고, 이에 맞는 가야금을 개발, 수많은 가야금 곡을 대중에게 들려준 사람이 바로 그다.

23일 중앙대 안성캠퍼스에서 만난 김 교수는 “평생을 함께 해온 가야금이지만 날마다 새롭다”며 “초보자가 뜯어도, 고수가 뜯어도 예쁜 소리가 나는 가야금은 16살 소녀 같은 악기”라며 ‘가야금 예찬론’을 폈다. 그는 “제자들에게도 ‘가야금과 연애를 해라, 가야금과 사랑을 해야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좋은 연주가 나온다’고 가르친다”고 웃으며 말했다.

김 교수는 ‘타고난 재주꾼’이었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국악원을 운영하면서 어깨너머로 우리 음악을 접할 수 있었다. 재능을 알아본 국악원 선생님들은 6살도 채 안된 그를 데려다 가야금과 판소리, 장고, 춤 등을 가르쳤다.

원래 국악을 전공할 뜻이 없어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한 김 교수였지만 음악에 대한 애정을 버리지 못하고 서울대 국악과에 진학해 예술인의 길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대학교 4학년 때 미국 동포 앞에서 연주했던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982년 한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해 미국의 15개 대학 순회공연에서 가야금 독주자를 맡게 됐다. 동포들은 물론 미국인들도 자신의 연주를 듣고 환호를 보내고, 무대 뒤로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김 교수는 “우리 음악이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도 많이 좋아해 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우리 음악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고, 그 일에 일조해야겠다는 지향점을 그때 세우게 됐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 국립국악원에 들어갔고, 평생의 반려자인 임재원 교수(서울대)를 만났다. 또 현재 중앙대 총장인 박범훈 교수를 만나게 됐다. 박 교수와의 인연으로 김 교수는 26세의 나이에 중앙대 강사로 교단에 서게 된다. 
◇김일륜 중앙대 교수(국악과)가 무대 위에서 가야금 산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 그는 “가야금은 기쁨이다. 그래서 가야금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한다.

전통과 현대의 어울림을 추구한 김 교수는 박현숙(현 국립국악원 단원), 김해숙(현 한국종합예술대학 전통예술원장) 등 가야금 명인들과 함께 1989년 ‘서울 새울 가야금 3중주단’을 결성했다. 3중주단은 처음으로 가야금으로 파헬벨의 ‘캐논 변주곡’을 연주하는 시도를 하며 국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1996년에는 25현 가야금을 개발했다. 12줄인 전통 가야금을 25줄로 늘리고, 실도 명주실에서 화학섬유로 바꿨다. 서양의 음악을 가야금으로 연주하기 위해 음역이 필요했기 때문에 고안해낸 것이다. 당시 제자의 학부모 가운데 전통악기 공인이 있어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김 교수하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 ‘숙명여대 가야금 연주단’이다. 김 교수는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교수로 임용되면서 1999년 ‘숙명여대 가야금 연주단’을 만들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가야금 오케스트라의 탄생이다. 김 교수는 “가야금만 가지고, 가야금만을 위한 것이 없을까 고민을 하다 오케스트라를 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에게 가야금을 좀 더 친숙한 악기로 만들기 위해 김 교수는 터키행진곡 등 서양의 유명한 클래식과 비틀스의 팝송 등을 선택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많은 선배 음악가들이 우려를 쏟아냈다. ‘딴 짓’을 하다가 전통을 망친다는 걱정이었다. 
◇김일륜 교수가 창단한 ‘중앙대 앙코르 코리아나’ 단원들이 지난해 12월 첫 공연을 하고 있다.

김 교수는 “당시 선배 음악가들을 찾아다니며 ‘가야금 연주자들의 목마름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가야금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서는 우리 나라에서 먼저 알려져야 한다. 절대로 가야금을 망치거나 전통을 흔드는 일이 아니다. 이 시대 필요한 음악을 접목시키는 것이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현재와 전통의 조화를 위해 김 교수는 공연이나 음반작업 때 친숙한 곡뿐 아니라 반드시 전통 가야금 연주곡을 넣는다. 또 절대 ‘농현’도 잊지 않는다. 농현이란 ‘현(絃)을 희롱(戱弄)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가야금 왼손의 집는 방법이다. 현을 지긋이 눌러 물결과 같은 파동을 얻으면 음이 흔들려 한국적인 가야금의 맛이 살아난다.

김 교수는 “99년 창단하고, 그해 1회 연주회를 했다. 반응이 대단했다”며 “5개 음반을 만들었는데, 국악 음반 중 지금까지도 베트스셀러”라고 자랑했다.

2006년 중앙대로 자리를 옮긴 뒤 그는 이곳에서 두 번째 가야금 오케스트라 ‘앙상블 코리아나’를 창단했다. 잠시 교환교수로 국내에 머물고 있던 이병원 교수(미 하와이주립대 민족음악학)가 “세계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코리아나’밖에 없다”며 이 이름을 붙여줬다.

대학원생 중심인 숙명여대 가야금 연주단과는 달리 중앙대 앙상블 코리아나는 학부생이 중심이 됐다. 현재 학부생과 일부 대학원생 등을 합쳐 40명이 오케스트라를 이루고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큰 병원에 위문공연을 가는 ‘기특한’ 일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앙상블 코리아나는 첫 연주회를 열었다. 이 연주회를 위해 중앙대 출신의 작곡가들이 7곡을 헌정, 전곡 초연하면서 의미를 더했다. 김 교수는 올해 12월 2회 공연을 열 예정인데, 이번에는 친숙한 곡들과 노래, 그리고 춤까지 곁들여 한층 대중에 가까이 다가가는 공연을 기획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항상 나누고 싶어하는 김 교수의 고민이라면 욕심만큼 사람들과 나눌 수 없다는 것. 연주자로 살아가기에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현실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기업 소속 스포츠단은 있지만 기업 소속 연주단은 없다. 메세나 운동의 일환으로 후원을 해주긴 하지만 서양악기 중심”이라며 “메세나의 일환으로 기업들이 전통음악 연주단을 운영한다면 소외 받는 사람들을 위한 음악,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음악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진경 기자 l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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