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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분노의 역류'(왼쪽)와 '싸이렌'의 포스터. |
영화 ‘분노의 역류’(론 하워드 감독·1991)에 나오는 대사다. 화재 현장에서 곤경에 처한 소방관을 구하러 뛰어들며 동료들이 외치던 말이다. 미국 시카고의 한 소방서를 배경으로 삼은 이 영화는 화마와 싸우는 소방관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지금도 ‘소방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고전이 됐다.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는 국내에도 있다. 2000년 11월 개봉된 ‘리베라메’(양윤호 감독)와 ‘싸이렌’(이주엽 감독)이 그것이다. ‘소방의 달’ 11월에 맞춰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두 영화는 촬영 당시 소방 당국의 대대적 지원과 협조를 받았다.
제목 ‘리베라메’는 ‘나를 구원하소서’라는 뜻.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정신적 상처 때문에 연쇄 방화범이 된 남자(차승원 분)와 그를 뒤쫓는 소방관(최민수 분)이 극 전개의 두 축이다.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촬영장에서 최민수가 부상을 입는 등 숱한 에피소드를 남긴 이 영화는 관객 동원 면에선 기대에 크게 못 미쳤다.
제작 과정을 곁에서 지켜본 한 소방관은 “출연진 중 박상면씨는 항상 ‘소방관들 너무 고생하는데 근무 여건이 열악하다’면서 ‘식사 많이 하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배우였다”며 “너무 고생해서 찍었는데 흥행에 실패해 안타까웠다”고 회상했다.
‘싸이렌’은 한 열성적인 소방관(신현준 분)이 화재 현장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여성(장진영 분)을 구조하는 장면으로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하지만 한국판 ‘분노의 역류’를 표방한 원래의 포부와 달리 평단의 반응은 차가웠고 흥행 실적 또한 매우 저조했다.
안방극장의 경우 2001년 방영된 SBS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김병욱 PD)가 있다. 중견 탤런트 노주현이 화재 현장에서의 잦은 실수로 진급 때마다 물을 먹는 20년차 소방관 역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소방관들의 일상을 보여주겠다’는 목표로 출발했으나 회를 거듭할수록 소방서 관련 장면이 줄어 일부 시청자로부터 “원래의 기획 의도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는 지적을 듣기도 했다.
요즘 경찰, 의사, 검사 등 특정 직업의 세계를 심층적으로 다루는 게 영화·드라마의 한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경찰’ 하면 ‘공공의 적’, ‘의사’ 하면 ‘하얀거탑’을 바로 연상할 만큼 완성도와 흥행력을 두루 갖춘 수작도 여럿 나왔다. 그런데 소방관의 경우 딱히 떠오르는 국내 대표작이 아직 없는 상태다.
서울 시내 소방서에서 재직 중인 한 간부는 “소방관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가 나와 인기를 얻으면 조직 홍보에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도 “화재 장면 촬영 등 기술적 문제 때문에 선뜻 제작에 나설 곳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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