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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 찾으려 TV 퀴즈쇼에 참가한 '타일공'

입력 : 2008-02-23 19:06:05 수정 : 2008-02-23 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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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철씨, IMF이후 연락끊긴 동생 보여주려 TV 출연
“TV에 출연하면 10여년간 소식이 끊긴 동생을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방법을 궁리하다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전승철(58·서울 강동구 암사동)씨는 30년 동안 타일 시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TV퀴즈쇼‘와는 거리가 멀 것 같은 그가 KBS 1 ‘퀴즈 대한민국’의 마지막 단계인 파이널 라운드에 당당히 섰다.

두툼하게 굳은살이 박인 손과 ‘퀴즈의 달인’은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지만, 한 장 한 장 꼼꼼히 타일을 맞추어가듯 전씨는 신중하고 담담하게 정답을 맞춰갔다. 그러나 안타깝게 마지막 문제를 틀리면서 ‘타일공 퀴즈 영웅’ 탄생의 꿈은 멀어지고 말았다.

 23일 기자와 만난 그는 2000만 원이라는 거액의 상금을 한 발짝 앞에서 놓친 사람답지 않게 아주 밝은 표정이었다.

“동생이 제가 TV에 나온 걸 볼 수 있도록 최대한 오랫동안 나오는 게 목표였는데, 끝까지 올라갔으니 전 목표를 초과 달성한 셈입니다.”

전씨가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퀴즈 프로그램 도전을 결심한 것은 특별한 가정사 때문. 그는 “TV에 출연하면 10여년간 소식이 끊긴 동생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씨의 동생은 IMF 금융위기 때 큰 빚을 진 뒤 형제들과 연락을 끊었다. 6년 전과 지난해 부친상과 모친상을 치르면서 동생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지만 강원도 원주로 떠났다는 어렴풋한 소문만 들었을 뿐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큰 누님이 함께 TV를 보다가 저보고 ‘퀴즈 대한민국‘에 나가서 셋째를 찾아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시더라고요. 동생은 부모님 돌아가신 것도 모를 텐데,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도전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막상 퀴즈 프로그램에 나가겠다고 하니 가족들은 ‘설마’ 하는 눈치였다. 전씨도 내심 ‘상식 박사’들만 나오는 퀴즈 프로그램에 정말 출연할 수 있을까 싶어, 준비도 안 하고 무작정 예심에 참가했다.

예상과 달리 전씨는 130여명이 참가한 예심을 가뿐히 통과하고 본선에 진출했다. 그는 우선 애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더라고 했다. 아버지의 도전을 웃어넘겼던 딸은 예심통과 소식을 듣자마자 서점으로 달려가 퀴즈에 도움이 될만한 책을 사가지고 왔다.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학업을 포기했다가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딸에게 그의  본선 진출은 각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나이 든 아버지도 도전하는데 네가 못할 게 뭐 있느냐”고 딸을 격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전씨가 이처럼 ‘퀴즈 내공’을 쌓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많은 독서량 덕분이다. 그는 한 달에 3∼4권의 책을 꾸준히 읽어왔다. 우리나라 성인 20%가 일 년에 단 한 권의 책도 읽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독서량은 보통수준을 훨씬 넘는 것이다.

 “평소 술을 즐기지 않아 일을 마친 뒤나 일이 거의 없는 겨울철에는 신문이며 책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습니다.”
 이 같은 꾸준한 독서가 전국을 누비며 타일 작업을 해 온 노련한 타일공을 퀴즈의 숨은 실력자로 키운 비결이었다.

여기에 전씨는 침착하게 문제를 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마지막 문제에서 아깝게 고배를 마신 것도 최종 단계에 이르자 긴장해 입에서 뱅뱅 도는 정답을 말하지 못했다.

 비록 퀴즈 영웅이 되진 못했지만 전씨는 방송이 나간 뒤 동생에게 연락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동생이 방송을 직접 보지 못하더라도 소식을 아는 사람이라도 보고 연락해 줄 수 있을 거라 기대하고 있어요. 동생을 만나게 되면 5남매가 모여 부모님 묘소에 찾아가는 게 소원입니다.”

전씨가 출연한 ‘퀴즈 대한민국’은 24일 KBS 1 TV에서 오전 10시에 방송된다.

신미연 기자 minerva2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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