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미트리 메드베데프(42) 러시아 제1부총리는 푸틴 대통령에 의해 후계자로 지목된 지 하루 만인 11일 “내년 대선에서 내가 승리한 뒤 푸틴 대통령이 총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푸틴 대통령에게 차기 총리직을 제안했다. 그는 지난 8년간 푸틴 대통령이 추진해온 정책들을 칭송하며, 대통령에 당선되면 푸틴의 정책을 승계해 차질없이 진행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러시아 언론들은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푸틴의 영향력을 거부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의 차기 집권 시나리오는 지난 2일 국가두마(하원) 선거에서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이 64.3%의 득표율로 압승한 뒤 가시화됐다. 3선 연임 금지 조항 탓에 내년 3월 대선에 도전할 수 없는 푸틴 대통령은 지난 10월 전당대회에서 “총리가 되거나 여당 당수가 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는 12일 “현 상황에선 ‘메드베데프 대통령, 푸틴 총리’로 차기 정부가 꾸려진 뒤, 총리 권한 강화를 위한 헌법 개정으로 이어지는 시나리오가 가장 설득력 있다”고 전했다. 러시아에선 총리 임명권을 쥔 대통령이 총리보다 권한이 강하다. 영국 BBC방송은 “차기 정부에선 총리와 대통령이 어떻게 권력을 분점할지가 관건이며, 이 과정에서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 대통령이 내각에 대한 영향력이 전무한 젊은 메드베데프를 후계자로 지명한 것도 헌법 개정을 통한 차기 대권구도 완성을 노린 것이란 설명이다.
푸틴의 최측근으로 국영가스회사 가즈프롬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는 메드베데프는 서방의 경계 대상인 국가보안위원회(KGB) 출신이 아니어서 서방 언론도 메드베데프가 차기 대통령이 된다는 데 반감이 없다.
메드베데프가 대통령이 된 뒤 임기 도중 하야하면 그 자리를 푸틴이 차지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러시아 헌법상 대통령이 하야하면 총리가 대신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BBC방송은 “푸틴의 후계자 선정이 너무 일러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며 “메드베데프가 국민의 신임을 잃지 않고 당선되는 게 우선 과제”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메드베데프가 푸틴 대통령에게 총리직을 제안한 것은 향후 권력분쟁 요인을 없애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